“탈레반 제재 말라”… 中, G7 압박에 ‘보복 카드’ 만지작

입력
2021.08.24 15:45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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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7 정상회의, 탈레반 제재 논의에 中 반발]
①구리, 인프라, 유전까지...중국의 입도선매
②“아프간 재건과정에서 中 역할 부각될 것”
③“제재와 간섭에는 강력히 맞서야” 으름장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대부분을 장악한 가운데 23일 탈레반에 맞서는 저항군이 마지막 거점인 북부 판지시르주의 초소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판지시르=AFP 연합뉴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대부분을 장악한 가운데 23일 탈레반에 맞서는 저항군이 마지막 거점인 북부 판지시르주의 초소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판지시르=AFP 연합뉴스

#1. 탈레반 정권 시절인 2001년 9월 11일, 중국 대표단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광업산업부 장관과 만났다. 양측은 경제·기술협력을 강화하는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미국의 심장이 테러 공격을 받는 순간 지구 반대편에서 중국은 탈레반과 손을 잡고 있었다.

#2. 20년이 지난 올해 7월 28일, 탈레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중국 톈진에서 왕이 외교부장을 만났다. 그는 “아프간에 적합한 투자환경을 조성할 것”이라며 “중국이 더 많이 참여해 아프간의 평화와 미래 경제 발전에 큰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처럼 중국과 탈레반은 협력의 역사가 길다.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추진하는 탈레반 제재에 중국이 반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급기야 가장 강력한 보복 조치로 불리는 ‘반(反)외국제재법’을 거론하며 G7의 압박에 맞섰다.

①구리, 인프라, 유전까지... 중국의 입도선매

아프가니스탄 해외 직접투자(FDI) 추이. 아프간에 투자한 해외자본 규모. 정세 변화에 따라 들쭉날쭉으로 변동이 심하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아프가니스탄 해외 직접투자(FDI) 추이. 아프간에 투자한 해외자본 규모. 정세 변화에 따라 들쭉날쭉으로 변동이 심하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중국 광산업체인 야금과공집단(MCC)은 2007년 아프간 아이낙 구리광산의 30년 채굴권을 따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구리가 묻힌 곳으로 수도 카불과 30㎞ 떨어져 있다. 중국 페트로차이나는 2011년 아프간 북부 파르야브 유전의 25년간 시추권을 4억 달러(약 4,681억 원)에 낙찰받았다.

다만 두 곳 모두 정세 불안에 따른 안전문제로 작업이 중단됐다. 그럼에도 중국 기업들은 아프간에서 전력발전, 도로건설을 비롯한 대규모 인프라사업 참여에 적극적이다. 지난해 중국의 프로젝트 수주액은 1억1,000만 달러(약 1,287억 원)로 전년보다 158% 증가했다.

②”아프간 재건 과정서 中 역할 부각될 것”

아프간과 중국 간 교역 규모. 그래픽=강준구 기자

아프간과 중국 간 교역 규모.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렇다고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에서 중국이 당장 대박을 터뜨릴 것이라고 들뜬 건 아니다. 아프간 전문가인 주융뱌오 란저우대 정치국제관계학원 교수는 24일 “탈레반의 최우선 관심사는 경제가 아니라, 정권 안정과 내부 권력 균형”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기대하는 건 아프간 재건 과정에서 맡게 될 핵심 파트너로서의 역할이다. 류종이 상하이국제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국제원조에 의존해 온 아프간이 지난 20년간 높은 실업률 등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와 발전을 추구하려면 중국의 투자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심지어 “아프간에 있는 미국 기업들과도 협력할 수 있다”며 자신하고 있다.

③中 “제재와 간섭에는 강력히 맞서야” 으름장

왕이(오른쪽)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달 28일 중국 톈진으로 탈레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초청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톈진=AFP 연합뉴스

왕이(오른쪽)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달 28일 중국 톈진으로 탈레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초청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톈진=AFP 연합뉴스

중국이 아프간의 지분을 넓히려는 상황에서 탈레반을 겨냥한 G7 정상들의 공조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에 중국은 지난 6월 시행한 반외국제재법 카드를 꺼냈다. 외국의 조치가 중국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차별적이라고 판단되는 경우 폭넓게 보복 제재를 가하는 내용을 담았다. 문어발식 대응 카드인 셈이다.

환구시보는 “서구의 탈레반 제재와 간섭에 맞서 중국 기업의 정당한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법적 수단을 가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군 철수 이후 빈자리를 파고들려는 중국과 아프간의 협력을 가로막지 말라는 엄포나 다름없다. 첸펑 칭화대 국제전략연구소 교수는 “미국과 서방 동맹국들은 중국 기업들이 아프간의 경제적 공백을 메우는 것을 두려워하며 질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중국의 바람대로 아프간에서 잇속을 챙기는 건 어렵다는 관측도 있다. 탈레반 득세 이후에도 아프간 정세는 여전히 불안하고 중국이 준비해 온 대형 사업들이 빛을 보기까지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싱가포르 라자라트남 국제연구원 라파엘로 판투치 연구원은 “아프간의 자원은 매력적이지만 중국이 기업들을 떠밀어 들여보낼 수는 없는 일”이라며 “온갖 기대와 달리 중국이 인상적인 성과를 낸 건 아직 없다”고 평가했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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