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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언론중재법이라면 JTBC '태블릿 PC 보도'는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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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JTBC의 '태블릿 PC 보도'는 국정농단 사건의 스모킹건이 됐다.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하려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있었다면 나오기 힘든 보도였다. 보도 전반은 진실에 부합했지만 일부는 사실이 아닌 대목도 있었다. 이를 빌미로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가 기사의 열람차단과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면 어땠을까.
명백한 증거가 없는 다른 언론사 역시 징벌적 손해배상을 우려한 나머지 보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검증과 단죄가 이뤄지지 못하고 조용히 묻혔을 공산이 크다. 그 결과 집권한 더불어민주당이 비판적 보도를 크게 위축시킬 수 있는 독소조항들로 가득한 이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는 건 아이러니다.
그중에서도 위헌 소지가 높은 △징벌적 손배제 △허위·조작 보도의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 △기사 열람차단청구권을 중심으로 개정안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가장 뜨겁게 불붙었던 쟁점은 언론 보도로 인한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할 수 있게 한 징벌적 손배제다. 기존 구제책에 옥상옥 규제를 더해 언론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과잉 규제, 과잉 입법'으로 위헌 소지가 높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는 이미 민사상 손해배상뿐 아니라 형사 처벌까지 가능하며, 형법상 명예훼손죄는 사실을 표현한 경우도 그 대상으로 삼는다. 여기에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한 반론·정정·추후보도 청구도 보장하고 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우리나라는 명예훼손 피해 구제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강력한 제도를 갖추고 있다"며 "형벌적 성격을 갖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추가 입법하기 위해서는 이중 처벌이나 과잉 규제 소지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징벌적 손배제가 불러올 해악으로 권력집단에 대한 비판적 보도의 위축이 첫손에 꼽힌다. 특히 고위공직자나 정치인, 대기업 등 권력집단이 자신을 향한 비판을 봉쇄하는 수단으로 명예훼손을 악용해온 우리 역사를 볼 때 정당한 문제제기까지 막는 '전략적 봉쇄소송'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진보 성향 시민단체 오픈넷은 일찌감치 이번 개정안에 대해 '공인 보호를 위한 언론 자유 위축법'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를 의식한 더불어민주당은 막판에 공직자와 대기업 임원 등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일부 손봤지만 "법으로 규정된 공인과 기업의 범위는 매우 좁기 때문에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이승선 한국언론법학회장(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은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렸고, 구제책이 여럿 있는데 굳이 5배의 배액배상제를 만들 필요가 있느냐"며 "위자료 기준액을 설정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5배면 피해 구제에 과연 적합한가라는 근본적 문제도 제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징벌적 손배의 대상이 되는 허위·조작 보도임을 '추정'하는 고의·중과실 요건도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 △보복적·반복적인 허위·조작 보도로 피해를 가중시키는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은 경우 △정정·추후 보도에 해당하는 기사를 별도의 충분한 검증 없이 복제·인용 보도한 경우 △기사의 본질적 내용과 다르게 제목·시각자료를 조합해 새로운 사실을 구성하는 등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로 명시한 규정이 굉장히 모호하다.
허위·조작 보도가 무엇인지 법률로 명확하게 규정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성재호 방송기자연합회장은 "고의 또는 중과실, 악의가 섞인 허위 보도임을 단어 몇 개로, 법 조항 몇 개로 구분해낼 수 있느냐"며 "재판에서 하나 하나 따져보고 입증하기도 어려운 걸 법 조항에 담아 규제하려는 건 언론의 자유를 옥죄는 것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고의·중과실 입증 책임을 언론사 측에 전가한 것 역시 일반적인 언론 활동을 가로막을 위험성이 높다. 일반적인 민사 소송은 원고(피해자)가 입증 책임을 지는 게 원칙인데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배 소송의 경우 이 조항을 통해 입증 책임을 언론사에 지웠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적어도 원고가 고의·과실에 의한 위법 행위였음을 형식적으로나마 입증해야 손배 청구가 인용되고, 언론사가 방어하는 구조였는데 이 '추정' 조항으로 언론사는 보다 엄격한 입증 책임을 부담할 수밖에 없어 명백하게 불리한 지위를 갖게 됐다"며 "반면 원고는 추상적 주장만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 변호사는 "요건이 너무나 포괄적이고 추상적이어서 거의 모든 언론 소송에 고의·중과실을 추정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며 "대다수 언론이 소송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소송이 제기된 것만으로도 부담을 느끼는 언론의 자유가 크게 위협받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개정안에 신설된 인터넷기사에 대한 열람차단청구권 역시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기존 정보통신망법상 임시조치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이 꾸준한 가운데 오히려 그 대상을 더 확대하겠다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권리 침해가 발생하거나 권리 다툼이 예상되는 인터넷 게시물에 대해 포털 등 사업자는 최장 30일까지 임시로 차단하고 있는데, 이중 상당수가 공인에 대한 비판이나 소비자 불만, 종교 피해 호소글 등으로 알려져 있다. 열람차단청구권 역시 최대 수혜자는 자신에 대한 의혹 제기나 비판적 보도를 막고자 하는 공인과 기업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있는 요건 역시 폭넓게 열어 뒀다. △언론보도 등 주요한 내용이 진실하지 아니한 경우 △사생활의 핵심영역을 침해하는 경우 △인격권을 계속적으로 침해하는 경우 등이 해당한다. '주요한 내용', '진실하지 않은 경우', '핵심영역' 등 모호한 기준으로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가 과도하게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피해자 입장에선 인터넷에 올라 있는 기사이면 인격권을 계속적으로 침해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며 "적용 범위가 너무 넓어서 마음만 먹으면 일단 다 걸어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언론중재법상 절차에 대응할 의무가 있는 언론사의 보도를 위축시키는 수단으로 남용될 위험이 크다는 얘기다.
개인의 인격권과 언론의 자유가 충돌할 때 일방적으로 언론의 자유가 제한되는 결과를 낳는 것도 문제다. 손지원 변호사는 "현행법상 정정·반론·추후 보도를 통해 기사를 유지하면서 두 기본권을 조화롭게 보장하고 있는데, 열람차단청구권은 기사 유통 자체를 금지하는 조치라서 일방의 기본권만 전면 제한한다"고 말했다.
그 결과 공론장에서 충분히 논의돼야 할 공적 사안에 대한 의혹 제기와 검증의 과정이 모두 사라져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승선 교수는 "법원은 매우 엄격하게 기사 삭제 명령을 내리고 있는데 열람차단청구권의 도입으로 그 문호가 개방돼 버린다"며 "이번 개정안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사의 허위 등 여부를 두고 주장이 엇갈릴 경우 법적으로 다투기 전에 행정기관인 언론중재위가 기사 차단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타당한지도 따져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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