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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마저 조롱하는 괴물이 되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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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현재 지구촌을 가장 뜨겁게 달구는 ‘최신 이슈’는 아프가니스탄 사태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자국 역사상 최장기인 20년간 천문학적 규모의 돈과 인력을 퍼붓고도, 전력에선 비교조차 안 되는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에 밀려 사실상 패퇴한 꼴이니 그럴 만도 하다.
게다가 아프간전(戰)은 영국과 독일 등 미국의 동맹들이 총출동한 데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등 다른 여러 나라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 전쟁이었다. 이제 ‘아프간 난민 수용’ 문제는 전 세계의 숙제가 됐다. 미군 기지가 있고, 인도주의 외교 노선을 추구하는 한국도 예외가 되긴 힘들 듯하다. 아프간 사태가 글로벌 현안일 수밖에 없는 건 이 때문이다.
다만 이런 결과가 놀랍진 않다. 올해 5월 미군 철수가 시작되자마자 파죽지세처럼 점령 지역을 늘려 가던 탈레반의 기세에 비춰 친미 아프간 정권의 몰락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더 일찍 수도 카불이 탈레반 손아귀에 넘어갔을 뿐이다. 오히려 충격은 다른 대목에서 느껴졌다.
아프간의 끔찍한 비극을 담은 티셔츠가 등장했다는 소식에 말문이 막혔다. 카불을 탈출하려 미군 수송기에 매달렸던 10대 소년 2명이 공중에서 추락사하는 순간을 형상화한 옷이었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미국의 한 온라인 쇼핑몰이 내놓은 문제의 티셔츠엔 ‘카불 스카이다이빙 클럽’이라는 문구가 있다. 목숨을 건 탈출과 비참한 죽음은 ‘스카이다이빙’으로 조롱되고, 희화화됐다. “최신 트렌드를 좇는다”고 스스로를 소개한 이 쇼핑몰은 그저 돈벌이 목적으로 아프간인의 고통과 절망이라는 ‘최신 이슈’를 이용했다. 비난 여론에 홍보영상은 삭제됐으나, 티셔츠는 지금도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아프간의 실제 혼란상에 비하면 지엽적이지만, 모든 걸 상품화하고 이윤을 최우선시하는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까지 야만적이고 천박해질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일화다.
돌이켜보면 죽음에 대한 조롱은 한국에서도 비일비재했다.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노회찬 전 의원, 배우 설리 등에게 온라인 악플이 쏟아졌고, 안전 수칙을 무시한 근무 현장에서 어이없게 숨진 김용균 등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유족에도 온갖 능멸이 가해졌다. 집회 현장에서 공권력에 의해 사망한 백남기 농민과 유족은 정치인들의 모욕까지 감내해야 했다. 세월호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패륜적 막말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특히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하던 유족들의 옆에서 피자와 치킨 등을 게걸스레 먹던 ‘폭식 투쟁’의 섬뜩한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무심코 내던진 조롱의 말 한마디가 아니라, 아예 작정하고 기획한 조롱의 ‘행위’였던 탓이다. 난 지금껏 이보다 더 악랄한 ‘죽음에 대한 조롱’을 본 적이 없다. ‘카불 스카이다이빙 클럽’ 티셔츠 논란을 보며 즉각 이 사건이 떠오른 이유다.
강자나 권력자를 조롱하는 건 풍자나 해학, 때론 촌철살인이 된다. 그러나 약자나 피해자를, 심지어 그들의 죽음을 비웃는 건 다르다. 여기엔 인간을 인간일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조건, 곧 ‘타인의 비극을 공감하는 능력’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인간성의 실종’이라는 얘기다. 어느 한 영화의 대사처럼, “사람은 되기 힘들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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