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너지 효과 못내고 내홍 키운 '당돌한 30대 김종인'과 '부실한 후보들'

입력
2021.08.23 17:00

편집자주

‘송용창의 정치행간’은 의회와 정당, 청와대 등에서 현안으로 떠오른 이슈를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정치적 갈등과 타협, 새로운 현상 뒤에 숨은 의미와 맥락을 훑으며 행간 채우기를 시도합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한 뒤 물을 마시고 있다. 뉴시스

“이준석 대표가 김종인처럼 하려다 사달이 난 것 같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과 갈등을 빚은 것을 두고 최병천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던진 논평이다. 카리스마적 당 운영으로 4·7 재·보궐선거를 승리로 이끈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성공 사례를 따라하다가 충돌이 커졌다는 것이다. 외부자의 시선이지만 이준석 리더십이 부른 난국의 성격을 짚고 있는 얘기다.

당의 자체 후보들을 키우려 했던 김종인의 자력갱생론은 ‘이준석 버전’에선 윤석열 후보 깎아내리기로 비쳐 불신을 낳았고, 후보들의 체력을 키우려 했던 김종인의 훈장 역할을 이 대표가 하자 ‘당돌한 자기 정치’로 인식된 셈이다.

그때는 맞았으나 지금은 틀린 것일까? 분명 이준석 체제는 몰락한 집안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강력한 군주 역할을 해야 했던 김종인 체제 시절과는 다르다. 재보선보다 대선은 후보의 역할과 존재감이 최우선이다. 어찌보면 군웅들이 할거하는 무대를 만들어야 하는 국면에서 ‘당돌한 30대 김종인’이 마찰 요인이 된 셈이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후보들이 이슈를 진두 지휘하는, 발광체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이 대표에게 과도한 기대가 쏠려 억울하게 책임을 뒤집어쓴 측면도 없지 않다. 이 대표가 23일 경선 준비 과정의 논란에 대해 사과하며 한발 물러났으나 당내 상호 불신이 여전하고 후보들의 난맥상도 계속돼 갈등은 언제든 재점화할 수 있다.

“의도가 아니라, 공정성에 대한 시각 차”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윤석열 대선 예비후보가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만나 인사하는 모습. 뉴스1

그간 갈등의 핵심 축은 이 대표가 특정 후보, 그러니까 오랜 인연의 유승민 후보를 밀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다. 이 대표가 윤석열 후보에 대해 “아마추어 같다” “미숙하다”며 대놓고 부족한 점을 지적하거나 사석에서도 그의 한계를 우려하는 얘기를 많이 하다 보니 윤 후보 캠프 측의 불만과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대표가 되고 나서 (유승민 전 의원과) 통화 한 번 한 적 없다”는 이 대표의 항변처럼, 특정 후보를 민다는 것은 전적으로 오해라는 게 주변인들 얘기다. 한 관계자는 “이대로 무난하게 경선이 치러지면 본선에서 어렵다는 게 이 대표 생각이다. 다른 후보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해 경선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의도가 선두 주자에겐 불편하게 다가간 셈이다”라고 말했다.

누가 최종 승자가 되든 공정하고 치열한 경선이 보장돼야 국민의 주목도를 높여 대선에서 이길 수 있고, 그러자면 토론회가 좋은 방식이라는 이 대표의 시각이 잘못됐다고 볼 수 없다. 이 대표 입장에선 당이 선두주자에게 끌려 가는 것이 아니라 당 전체 파이를 넓히는 공정 경쟁을 보장하는 게 최선이다. 김종인의 자강론을 이준석식으로 계승한 셈이다.

하지만 경선준비위의 이례적인 역할에다 평소 불신까지 겹치면서 잡음이 지속됐다. 결국 경선준비위가 제안한 두 차례의 토론회는 무산되고 25일 ‘비전발표회’를 여는 것으로 대체됐으나 이 과정에서 윤석열 후보가 ‘토론을 기피하는 구태 후보’라는 인상을 남긴 것은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는 마이너스 요소다. 코로나19 시국에서 대중 유세보다 TV 토론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스타일이 문제, 킹 메이커 욕심 버려야”

문제는 이 대표의 의도보다는 스타일이다. 당대표 경선 때 나왔던 “때리면 두 배 반격하겠다”는 언급을 실천이라도 하듯 캠프 측과의 기싸움에서 지지 않으려 즉각 반응하고 물밑 조율보다 공개 논쟁을 즐기는 듯한 모습이 분란을 부채질했기 때문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책분석실장은 “이 대표의 스타일이 기존 정치 문법을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됐는데 오히려 갈등 요인이 돼 답답하다”며 “마치 게임을 하듯이 정치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디지털로 즉각 반응하고 어떤 현안에도 막힘 없는 이 대표의 소통 스타일이 대중과의 교류에선 ‘쾌도난마’식으로 찬사를 받았으나 후보 측과의 대응에선 전혀 다른 효과를 낳은 것이다. "두 배 반격"도 당대표 경선주자의 대응 방식이지 대표와는 걸맞지 않다. 방송 출연으로 정치 논평을 즐겼던 경험 등으로 이 대표가 주자, 논평가, 대표 간 역할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0선 의원’의 도전자처럼 하다가 혼란을 불렀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같은 스타일 논란이 김종인 전 위원장과 같은 킹 메이커가 되려는 욕망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대선 후보 선출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높이려는 욕심이 없지 않을 텐데 그게 사심으로 의심받는다”며 “킹 메이커가 되려는 욕심을 버리고 대선 후보들이 경선 기간 하기 어려운 악역을 맡아 당의 저변을 넓히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선 주자들이 지지층 표심 경쟁을 벌이는 동안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강성 지지자들의 쓴소리를 감수하고 중도 공략에 나서는 모습이 참고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6월 당 대표 선출 뒤 따릉이를 타고 여의도 국회로 출근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후보들 실언과 정책 부실이 더 큰 문제”

이 대표의 스타일 문제가 과도하게 부각된 것은 역설적으로 후보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윤석열 후보가 각종 실언으로 ‘1일 1망언’이란 비판이 나올 정도였고, 의제와 정책 측면에서도 별다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해 지지율 하락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최재형 후보 역시 정책 대안이나 개혁성은 보여 주지 못한 채 ‘반(反)문재인’만 외쳐 당의 보수 이미지만 강화시켰고 원희룡 후보는 아예 이 대표와의 싸움으로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이 대표가 공개적으로 실언을 한 게 뭐가 있나. 오히려 이슈를 주도하지 못하는 후보 측이 자신들의 부실을 이 대표에게 덮어씌운 것이다”고 말했다. 후보들이 이 대표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되레 역성을 내면서 악순환이 거듭됐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당돌한 30대 김종인’이 '부실 후보들'을 만나 시너지 효과는커녕 서로를 갉아먹는 형국이 된 셈이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갈등은 늘 있는 일이지만, 싸우는 수준이 너무 낮아서 관심도 갖기 싫을 정도다”며 “정권교체 여론이 아직은 높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이면 그 여론이 계속 지속될지 의문이다”고 한탄했다.

"20대 표심 흔들…향후 경선 룰 갈등 관리가 숙제”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캠프 인사들이 당대표를 흔들고 있다며 윤 후보에게 직접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뉴스1

이로 인해 이 대표를 통해 2030세대를 견인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크게 흔들리는 상황이다. 이 대표가 2030세대 일각의 남성 지지를 받는다 하더라도 그 관계가 견고하다고 볼 수 없다. 이 대표의 위상이 떨어지고 보수 개혁과는 거리가 먼 진흙탕 싸움이 반복되면 2030세대가 언제든지 등을 돌릴 수 있다. 8월 3주차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20대 지지율은 23%로 민주당(21%)을 간신히 앞섰으나 20대 무당층이 42%로 모든 세대에서 비율이 가장 높다. 20대 표심이 그만큼 떠돌고 있다는 뜻이다.

가뜩이나 2030 지지율이 취약한 윤석열 후보가 이 대표와의 갈등을 지속하면 젊은 세대의 표심을 얻기는 더 어렵다. 최근 홍준표 후보가 20대 남성층에서 의외의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주목해볼 대목이다. 보수 개혁의 원조인 유승민 후보 역시 2030세대 표심을 통해 부상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유 후보는 이날 “당대표를 흔들고 경선위원장을 바꾸고 경선룰을 바꾸겠다는 게 윤석열식 공정과 상식인가”라며 윤 후보를 정면 비판하고 나서 이번 갈등이 본격적으로 캠프 간 대립으로 전환되는 모습이다.

이 대표로선 이날 사과하고 선관위원장에 정홍원 전 총리를 임명해 캠프 간 대립에선 한발 빠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선 여론조사에서 역선택 방지조항을 넣을지 등 경선룰을 두고 각 캠프와 최고위, 선관위 등이 한바탕 대논쟁을 벌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조만간 다시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송용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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