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물리력으로 위협하는 존재는 북한만이 아니다. 중국·러시아·일본도 한국 영공과 영해를 멋대로 드나들고 있다. 이런 지리적 숙명을 생각하면 미국과의 동맹은 북한뿐 아니라 무례한 이웃들에 대처하는 효과적 방법이다.
이번 한미연합훈련이 흐지부지 컴퓨터 게임으로 끝났다.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했다는데, 청와대가 보인 태도는 거시적 안목의 전략 폐기 내지는 국가 무력에 대한 역사적 인식의 결핍으로 비친다. 외려 한미훈련을 반대하던 중국은 러시아와 대규모 실전 훈련 ‘서부·연합-2021’을 마쳤다.
타국의 호의로 버틴 나라는 역사에 없다. 대한제국이 그런 요행을 바라다가 망했다.
“전에 이등(伊藤) 후작이 한국에 왔을 때 어리석게도 우리 인민들이 서로 말하길 ‘후작은 평소 동양 삼국의 정족(鼎足)과 안녕(安寧)을 책임지고 주선하겠다던 사람인지라 오늘 내한함이 필시 우리나라의 독립을 공고히 부식(扶植)하게 할 방략을 권고하리라’ 하여 인천항에서 경성에 이르기까지 관민 상하가 환영하여 마지않았거늘 천하 일 가운데 예측하기 어려운 일도 많도다. 천만 꿈밖에 다섯 조건이 어디부터 나와서 제출되었는가. 이 조건은 비단 우리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 삼국이 분열하는 조짐을 빚을 것인즉, 이등 후작의 애초 생각은 어디에 있었던가?”
1905년 11월 황성신문에 실린 ‘시일야방성대곡’의 전반부로, ‘이등’은 이토 히로부미이다. 그를 향한 태도와 어감이 왠지 이상하다. 후작님만 믿었는데 무슨 일이 생겼냐고 질의하는 말투이다. 까닭인즉 고종은 물론 지식인까지 일제의 ‘동양평화’라는 입발림을 믿었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은 ‘평화’를 짝사랑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로 일제는 쉬지 않고 폭력을 사용하여 조선을 ‘가스라이팅’ 했다. 그러다 돌연 일제가 ‘평화’를 말하자 대중은 환호했다. 온갖 패악질은 차치하고, 심지어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했음에도 고종까지 이토에게 매달렸다. 자신을 죽도록 때리던 납치범이 갑자기 조그만 언질을 주자 감격하는 피해자의 모습과 같다. 환영인파를 보던 이토가 떠오른다.
시간을 더 올라가 보자. 광개토태왕비에 적힌 태왕의 군사활동은 ‘선제적 원점 타격’ 전략으로 일관한다. 애민(愛民)에 관한 깨알 같은 자랑은 없다. 승리야말로 ‘애민’이기 때문이다. 패자(?者)의 서사는 이렇다.
몽골이 고려를 특별 대우하고 칸이 친딸을 시집보낼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30여 년을 줄기차게 싸웠기 때문이다. 이제 충무공의 칼을 보라. 일국의 무력은 곧 그 나라의 기백이며 그 역사에 존엄까지 부여한다.
1637년 1월 17일, 청 태종이 남한산성의 인조에게 보낸 국서에 이런 말이 있다. “너 살고 싶으냐? 싸우고 싶으냐?”
2021년 8월 1일, 북한 김여정의 담화는 이렇게 맺는다. “희망이냐 절망이냐? 선택은 우리가 하지 않는다.”
아찔한 기시감에 놀랄 틈도 없이 북한에 맞장구치는 국회의원 74명의 성명서를 보았다. 그들에게 묻는다. 전략의 역사를 아는가, 이순신이 거북선을 만들어서 전쟁이 났는가?
“적당히들 하시오! 적당히들. 대체 이 나라가 누구의 나라요? 명 황제가 그리 좋으시면 나라를 통째로 갖다 바치시든가! 부끄러운 줄 아시오. 임금이라면, 백성이 지아비라 부르는 왕이라면, 빼앗고 훔치고 빌어먹을지언정 내 그들을 살려야 하겠소. 그대들이 죽고 못 사는 사대의 예보다 내 나라 백성이 열 갑절 백 갑절은 더 소중하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한 장면이다. 슬픈 영화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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