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못 받아” vs “책임 분담해야”… 아프간 난민 수용, 전 세계서 해법 고심

입력
2021.08.23 19: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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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파키스탄·터키 "난민 수용 불가" 선언
그리스·오스트리아도 난민 관문 될까 우려
美·英 압박 가중… 동맹국 난민 문제 고심

21일 독일 람슈타인의 미국 공군 기지에 도착한 아프가니스탄 피란민들이 입국 절차를 밟기 위해 줄을 지어 서 있다. 람슈타인=AP 연합뉴스

21일 독일 람슈타인의 미국 공군 기지에 도착한 아프가니스탄 피란민들이 입국 절차를 밟기 위해 줄을 지어 서 있다. 람슈타인=AP 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독일 람슈타인 미국 공군 기지. C-17 수송기가 굉음을 내며 착륙했다. 군인 대신 아프가니스탄 전통 의상을 입은 남성과 히잡을 두른 여성, 깜찍한 옷을 입은 아이 등이 우르르 내렸다. 소지품 보안 검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열 검사가 이뤄졌고, 난민을 가득 채운 버스가 기지 내 수용시설로 향했다. 긴장과 피로로 얼룩진 얼굴에 설핏 안도감이 스쳤다.

람슈타인 기지는 미국 외 지역에서 가장 큰 미 공군 기지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간을 탈출해 미국으로 향하는 난민들이 이곳에서 최대 10일간 임시로 머문다. 수송기는 90분마다 난민을 내려놓고 있다. 수용 가능 인원은 5,000명이지만, 기지는 이미 포화 상태다. 스타샤 재커리 미 공군 공보 담당 상사는 22일 “2,500명 추가 수용을 위해 텐트를 긴급 설치 중”이라고 CNN방송에 말했다.

카불발(發) 군용기가 도착하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와 카타르 도하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다급해진 미국은 알바니아, 코소보, 마케도니아를 비롯해 20여 개국과 아프간 현지인의 비자 심사 기간 일시 수용 및 비행기 환승에 합의했다. 하지만 해당 국가들 대부분에선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내부 여론도 만만치 않다.

다른 나라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특히 2015년 시리아 내전 당시 난민 대거 유입으로 극심한 사회 혼란을 겪은 중동 및 유럽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이 주요국에 책임 분담을 압박하고 있어 고민이 더 깊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이미 지난해 말 기준, 인접국으로 피난한 아프간인은 무려 220만 명에 달한다. 국내 실향민은 350만 명, 올해에만 55만 명이 고향을 등졌다. 탈레반 점령 후 ‘아프간 엑소더스(대탈출)’는 가속화하고 있다. 난민을 어떻게 수용하고 재정착시킬지, 만만치 않은 난제가 지구촌에 던져졌지만 뾰족한 해법은 없는 상태다.

21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아프간 대피 작전 중인 미 해병대 병사가 한 아프간 아이를 안아 달래고 있다. 카불=AP 뉴시스

21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아프간 대피 작전 중인 미 해병대 병사가 한 아프간 아이를 안아 달래고 있다. 카불=AP 뉴시스

일단 오랫동안 아프간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썩은 인접국은 빗장을 거는 분위기다. 영국 BBC방송 보도를 보면, 아프간 난민 350만 명을 수용한 이란은 접경 지역 3개 주(州)에 난민촌을 운영 중이나 “아프간 상황 개선 후 난민들을 송환할 것”이라며 ‘수용 불가’를 못 박았다. 파키스탄도 경제 사정상 현재 체류 중인 300만 명 이상은 감당할 수 없다며 이미 6월 “국경 봉쇄”를 선언했다. 터키 역시 이란을 경유해 난민이 유입될 가능성에 대비, 이란과의 국경 지역에 군 병력을 증강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터키는 이미 500만 명을 수용하고 있다. 추가 부담을 질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러시아도 거들었다. 테러리스트가 난민들 틈에 섞여 들어오면 자국 및 중앙아시아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여당 지도부와의 면담 자리에서 “서방국이 난민을 자국으로 데려가진 않고 미국이나 다른 나라 비자를 받을 때까지 중앙아시아 국가로 보내려 한다”며 “모욕적인 문제 해결 태도”라고 맹비난했다.

유럽도 쇄국 정책을 잇따라 꺼내 들었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는 “지난 몇 년간 아프간인 4만 명 이상을 받아들였다”며 “추가 수용은 내 임기 중 일어나진 않을 것”이라고 선포했다. 독일의 수용 인원(14만8,000명)이 3배 많지만, 오스트리아 인구가 독일의 9분의 1 수준임을 감안하면 “불균형적으로 큰 기여”라는 것이다. 터키와 인접한 그리스도 국경 지역에 40㎞짜리 장벽을 세우고, 아프간 난민을 송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동맹 일부는 ‘인도적 수용’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영국은 장기적으로 2만 명을 재정착시키는 계획을 내놓았고, 캐나다도 아프간 내 협력자 등 2만 명을 수용할 예정이다. 다만 유럽연합(EU) 좌장 격인 독일은 “아프간 인근 국가에 안전하게 머물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사실상 ‘인접국 지원’에 무게를 뒀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유럽은 “시리아 난민 사태 때도 EU는 터키 등에 난민 수용 자금을 지원하는 대가로 유럽 유입을 막는 ‘아웃소싱’ 전략을 썼다”며 이번에도 같은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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