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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상황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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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황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조합원이 배달통 뒤쪽에 매직으로 한 자 한 자 새긴 문구다. 이 오토바이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한노아씨의 카메라에 담겼다. 한 작가는 배달노동자들을 사진으로 찍어 '오니고 On y Go'라는 전시회를 열었는데, 오니고는 불어와 영어가 합쳐진 용어로 ‘가즈아’라는 뜻이라고 한다. 앞만 보고 질주해야 하는 라이더가 자신이 처한 복잡한 상황을 설명할 길은 ‘죄송합니다’ 외에는 없다.
배달하다 보면 죄송한 일투성이다. 비가 억수처럼 내렸던 지난 주말 배달음식을 픽업하기 위해 가게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헬멧과 온몸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져 문을 열기가 죄송했다. 흠뻑 젖은 신발은 움직일 때마다 픽픽 바람 새는 소리가 났다. 다른 손님들도 싫어할 것 같았고 가게에서 일하시는 분께도 죄송했다. 소수지만 손님들이 싫어한다며 가게 밖으로 쫓아내거나 화장실도 사용 못하게 하는 사장도 있다. 다행히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본 음식가게 사장님이 다리 아픈데 의자에 앉아 기다리라고 해주셨다. 마음씩 좋은 가게 사장님을 만나다고 끝이 아니다. 내 몸에서 냄새가 날까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는 것도, 내 몸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음식포장지에 흘러 손님 기분이 상할까 신경 쓰인다. 이런 상태로는 맘 편히 밥을 먹거나 쉴 곳도 없다.
오토바이 쉴 곳도 마땅치 않다. 오토바이는 차량이기 때문에 인도에 주차하면 불법이다. 그렇다고 차도에 주차를 해도 불법이다. 오토바이는 이륜차 주차장에 주차해야 하는데 이를 목격한 시민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서울에만 45만 대의 오토바이가 있는데, 이륜차 주차장 숫자는 46개, 797대만 수용 가능하다. 배달을 제공하는 음식가게도, 배달을 시키는 손님의 집 앞에도 이륜차 주차장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사회적 비난은 라이더만 진다.
도로 위도 녹록지 않다. 오토바이는 끝 차선으로만 달려야 한다. 도로 중간으로 달리면 불법이다. 끝 차선은 택시와 버스가 손님을 태우고 내리는 곳이고, 도로로 진입하는 차량들이 튀어나오는 곳이다. 도로가에 트럭을 세워놓고 짐을 내리고 올리는 곳이기도 하다. 사고 위험이 가장 높은 차선이다. 이륜차 배달산업의 성장과 함께 정비했어야 할 도로교통법과 이륜차관리시스템이 방치되어 라이더가 홀로 책임지고 있다.
라이더의 불법적 운행 행태를 옹호하거나 변명 하는 게 아니다. 배달 오토바이 때문에 벌어지는 도로 위의 위협, 주차, 소음 등 모든 상황에 대해 나 역시 죄송하다. 미약하지만 자정 노력도 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오토바이에서 내려 끌고 가고 오토바이 출입금지가 적혀 있는 아파트에는 오토바이를 세우고 헐레벌떡 뛰어간다. 가끔은 정속으로 달리다가 위협운전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만으론 한계가 있다. ‘모든 상황 죄송합니다’라고 적었던 우리 조합원은 ‘그동안 진짜 죄송합니다’로 문구를 수정했다. 신호를 지키면서 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최근 이 문구를 다시 고쳐야 하나 고민이라고 한다. 이륜차에 맞지 않는 교통체계와 곧 다가올 비수기 수익 급감을 버틸 자신이 없기 때문이란다. 마침 제도적 해결을 위해 라이더보호법을 심상정 의원과 라이더유니온이 발의했다. 라이더들이 법을 준수하며 일할 수 있도록 배달통이 아니라 법전에 문구를 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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