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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신용대출도 죈다…무차별 대출 제한에 실수요자는 '비명'

입력
2021.08.23 04: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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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가계대출 전방위 압박에
실수요자 "하루라도 빨리 받자" 불안
전문가 "부실대출 관리가 더 시급"

지난 20일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내걸린 대출 등 은행 금융상품 광고판 앞을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일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내걸린 대출 등 은행 금융상품 광고판 앞을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가계대출을 조이려는 금융당국의 강공 방침에 시중은행 등 각 금융권이 잇따라 신규 대출을 제한하고 나서면서, 소비자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은행들은 이번 대출 중단을 '한시 조치'라고 밝히고 있지만, 실수요자들 사이에선 '이러다 대출을 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퍼지며 풍선효과 조짐도 번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반적인 대출규모 관리의 당위성과 별개로, 획일적인 규제가 불러올 수 있는 실수요자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당국, 저축은행·농협에도 대출 축소 요청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9일 농협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을 전격 중단한 데 이어 우리은행, SC제일은행 등이 신규 부동산대출을 한시 중단했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이어 지난 20일 저축은행중앙회에도 "신용대출 한도를 대출자의 연소득 이내로 운영해 달라"고 요청했다. 은행권에서 막힌 대출수요가 2금융권으로 번지는 '풍선효과'를 막기 위해서다. 당국은 농협중앙회와 보험, 카드사에도 대출총량 관리목표를 준수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이 같은 연쇄 조치는 가계빚을 통제하려는 정부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총액은 지난 19일 695조7,000억 원으로 지난해 말(670조1,500억 원)보다 약 3.8% 증가했다.

특히 농협은행은 이미 지난달부터 "가계부채 급증의 원인"으로 지목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5~6% 수준으로 잡고 있는데, 농협은행은 19일 기준 증가율이 7.3%에 달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7월 이후 농협은행 여신 담당자를 수차례 불러 가계대출 관리에 나설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미 나간 대출 회수는 불가능한 터라, 농협이 쓸 수 있는 카드는 신규 대출 중단밖에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신용대출이라도 빨리 받자" 번지는 풍선효과

잇따르는 대출 중단 조치에 대출 수요자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농협은행은 오는 11월까지, 우리은행(전세대출 중단)은 오는 9월까지 한시적으로 대출을 중단한다는 방침이지만, 그 이후에도 재개한다는 보장은 없는 상태다. 다른 은행까지 대출 중단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11월 대출 재개에 대해 "현재로선 그때 가서 논의 후 다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소비자들 사이에선 "대출이 완전히 막히기 전 하루라도 빨리 대출을 받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매매(전세) 계약서 등이 필요 없는 신용대출을 중심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받자는 심리가 강해지고 있다.

11월 초 전세금 1억5,000만 원을 대출금으로 충당하려던 직장인 A(32)씨는 "계약까지는 두 달 이상이 남았지만 일단 신용대출을 최대한으로 받아두려고 한다"며 "2개월치 신용대출 이자 아끼려다가 아예 이마저도 대출이 안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실수요자까지 막는 건 곤란"

우격다짐 식의 대출 틀어막기가 시대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대출규제는 다주택자 등 '투자' 성격으로 볼 만한 대출자 외에도 전세수요자 등 무주택자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탓에, 당장 실수요자까지 대출절벽을 맞닥뜨리게 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 현재 대출 정보가 오가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2006년 당시 기사를 공유하면서 "정부 생각대로 대출을 막아 집값을 잡는 건 15년 전에도 불가능했다"는 말이 오가고 있다. 지난 2006년 11월 금융당국은 치솟는 집값을 잡는다며 대출 총량 규제에 들어갔고 은행권은 주담대 등을 한시적으로 중단하기로 했다. 하지만 "실수요자 불편을 가중시키는 관치금융"이란 비판에 당시 당국과 은행권은 하루 만에 대출을 재개했다.

전문가들도 당국의 대출 조이기 방식에 부작용을 경고하고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총량 규제보다는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대출금리가 조정되는 것이 가계빚 통제에 더 효과적일 것"이라며 "당장 대출이 꼭 필요한 실수요자의 대출을 무조건 막는 건 시장원리에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시냇가에 개구리(가계부채) 잡으려다 송사리떼(실수요자)만 죽이는 꼴"이라고 말했다.

1,700조 원대 가계대출 가운데 부실부채를 관리하는 게 급선무란 지적도 나왔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신규 대출의 경우 실수요와 투기용 대출을 구분하고, 기존 대출의 경우 연체 등 부실을 관리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라며 "다만 은행별로 자본건전성 상황이 천차만별인 만큼, 은행 내부에서 자체적인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통해 대출 규제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조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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