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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수술, 앞으로 누가 하나?

입력
2021.08.23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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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메디컬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주인공인 안정원(유연석 분) 소아외과 교수가 어린이 환자들을 상냥하고 따뜻하게 보살펴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tvN 제공

tvN 메디컬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주인공인 안정원(유연석 분) 소아외과 교수가 어린이 환자들을 상냥하고 따뜻하게 보살펴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tvN 제공

메디컬 TV 드라마나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이 소아외과 의사다. 평소에는 얼음처럼 냉철하고 빈틈없지만 아픈 아이들 앞에서는 상냥하고 따뜻한 수호천사로 변한다. 메디컬 장르에서 소아외과 전문의가 슈퍼 히어로처럼 그려지는 이유는 그들이 단지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이와 연결된 모든 사람들의 삶까지 구원하는 숭고한 사명을 수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소아외과 전문의는 서혜부 탈장ㆍ항문폐쇄ㆍ식도폐쇄, 장폐색, 총담관 낭종, 복벽 기형, 갑상설하낭종 같은 다양한 선천성 어린이 질환 수술을 담당한다. 소아외과 전문의가 되려면 외과 전문의 중에서 전임의(펠로)로 2년을 지낸 뒤 대한외과학회에서 시행하는 세부 분과 전문의 필기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소아외과 전문의는 45명에 불과하다. 일본 900명, 미국 2,400명에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게다가 최근 시행한 외과 세부 분과 전문의 시험에서 소아외과 전문의에는 단 한 명도 지원하지 않았다. 모두 60명이 응시한 7개 외과 세부 분과 전문의 시험에 유방외과(20명)ㆍ간담췌외과(16명)ㆍ내분비외과(6명) 등에 대부분 몰렸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소아외과 전문의가 10~20년 뒤에는 씨가 마르게 생겼다. 당장 몇 년 뒤부터 소아외과 전문의 부족으로 고난도 어린이 수술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어린이 환자 수술은 지난 16년간(2002~2017년) 124%나 늘어난 데 반해, 소아외과 전문의 숫자는 줄어들면서 이들에게 수술받은 어린이 환자는 10.6%에 불과했다. 오채연 고려대 안산병원 소아외과 교수는 “어린이 환자 수술을 소아외과 전문의로만 진행하려면 최소한 366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굳이 어린이 환자를 소아외과 전문의가 직접 수술해야 하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린이 환자를 소아외과 전문의가 직접 수술하면 사망률이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성인 질환은 후천적 원인이 대부분이지만 소아 질환은 선천적 원인일 경우가 많고, 이른둥이(미숙아) 등 영ㆍ유아는 해부학적 구조와 생리학적 메커니즘이 성인과 다르기 때문이다.

의료계에서는 소아외과 전문의가 점점 줄어드는 요인으로 턱없이 낮은 어린이 수술의 의료 수가(酬價)를 우선적으로 꼽고 있다. 예를 들어 직장암으로 항문을 절제하는 성인 수술의 경우 300만 원의 수가를 받는데, 항문 없이 태어난 아기에게 항문을 만들어주는 수술은 200만 원이다. 항문 조성 수술이 항문 제거 수술보다 훨씬 어려운 데도 수가는 오히려 낮은 것이다.

고된 업무도 소아외과 전문의를 기피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부윤정 고려대 안암병원 소아외과 교수가 2016년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소아외과 전문의의 54%는 진료 실적을 보충하기 위해 다른 과 진료를 병행해야 했고, 42.3%는 매일 혼자 당직 근무를 해야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처음에는 어린이 환자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소아외과를 지원했다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중도에 그만두는 이도 나오고 있다. 극악의 출산율로 아이들의 웃음소리조차 듣기 힘들어졌다고 한탄하기 전에 태어난 아이들을 살뜰히 보살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권대익 한국일보 의학전문기자

권대익 한국일보 의학전문기자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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