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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이나, 빨갱이 몰이나

입력
2021.08.20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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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 연합뉴스 자료사진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 연합뉴스 자료사진

맛 칼럼니스트인 황교익씨가 20일 경기관광공사 사장 후보직에서 스스로 사퇴하면서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캠프 측과 벌였던 소동이 일단락됐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의 위로와 중재 등으로 양측이 한발 물러나 마무리됐지만, 친일 프레임을 두고 양측이 주고받은 막말 공방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 황씨는 이 전 대표 캠프 측으로부터 “도쿄나 오사카 관광공사에 맞을 분”이란 지적을 받자 “이낙연 사람들은 인간도 아닌 짐승”이라고 격하게 반발했다. 그는 이 전 대표가 일본 총리에 어울린다며 맞공세를 펼치면서 “이낙연 측이 먼저 친일이라고 공격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친일이 짐승보다 더 심한 막말”이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황씨가 친일 지적에 대해 “친일이 아니다”라고 차분하게 해명을 하지 않고 격한 반응부터 드러낸 것은 여당 인사들이 흔히 구사하는 친일 프레임이 정상적인 문제 제기라기보다 마녀 사냥식 ‘정치적 낙인 찍기’라는 점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 친일 프레임은 태극기 부대의 ‘빨갱이 몰이'를 떠올리게 한다. 태극기 부대가 반대 진영을 공격하는 무기로 삼아왔던 게 빨갱이 딱지였다. 빨갱이 공세로 재미 보던 이들 역시 급기야는 자기네 진영 내부에서도 빨갱이 난타전을 벌였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지만원씨로부터 ‘빨갱이’ ‘친북카르텔’ 등의 공격을 받았다. 국민의힘이 자유한국당 시절이던 2019년 전당대회에서도 당대표 후보들을 두고 "빨갱이"라는 고성과 야유로 난장판이 벌어졌다.

□ 친일이나 빨갱이 낙인 찍기는 각각 일본 및 북한을 악마화한 뒤 이들과 닮은 구석이 있으면, 너도 역시 악마라고 몰아붙이는 방식이다. 주장이 조금만 비슷해도 친일파 또는 빨갱이로 모는 점에서 일종의 이념 사냥으로서 이성적인 접근이나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황씨가 본능적으로 격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쉬운 수단일지 모르나,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낙연 캠프 측과 황씨 간 자해적 소동이 이를 보여주는 셈이다.

송용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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