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인디오 문화의 혼재… 볼리비아 ‘작은 것들’ 순례길

입력
2021.08.21 10:00
<170> 세계문화유산 치키토스 예수회 선교단 마을

볼리비아 치키토스 예수회 선교단 개척지의 첫 발, 산호세데치키토스 성당. 원하지 않던 장기 투숙의 은혜로 만난 햇살이다. ⓒ강미승

볼리비아 중부 산타크루즈(Santa Cruz)에서 산호세데치키토스(San Jose de Chiqitos)행 버스를 탔다. 5시간 걸린다고 했는데 1시간 ‘일찍’ 닿았다. 남미에선 기적 같은 일이라 좋은 징조로 여겼다. 치키토스 예수회 선교단(Misiones jesuiticas de Chiquitos)의 흔적을 따라가는 순례길에 오를 참이었다.

어떤 결핍이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기대했던 것도 아니다. 종교적인 힘에 이끌려? 자신도 잘 못 믿는 무교다. 깡촌이라 뜻밖의 스토리가 있을 거란 기대와 섬처럼 한 바퀴 도는 여행 방식에 끌렸다. 결정적으로 든든한 담보가 있었다. 이 후미진 순례길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있기 때문이다. 행선지를 정할 때 유네스코란 명패는 적어도 배신하지 않았다. 더러 예상이 빗나가는 경우가 있지만, 경험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예수회는 가톨릭 남자 수도자 집단이다. 스페인에 뿌리를 두고, 봉사를 평생의 사명감으로 삼는다. 참사랑이 넘치는 선교단은 17세기경 볼리비아에 닿았다. 눈앞엔 땟국물이 흐르는 원주민과 정글이 있었다. 의아한 건 짚으로 올린 집의 크기에 비해 너무나도 작은 문이었다. 현지 환경상 문은 있어야 했다. 정글의 친구인 벌레와 바람, 적의 습격을 막기 위함이다. 강력한 첫인상이 개척지의 이름이 되었다. 치키토스(Chiquitos)는 ‘작은 것들’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선교단은 우선 교회를 지어 마을의 중심을 잡았다. 포교 활동을 벌이는 것은 물론 교육과 문화, 사업 등을 통해 주민과 협동생활을 이어갔다. 덕분에 거친 정글에 좀 더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마을 형태가 잡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산타아나(Santa Ana), 산라파엘(San Rafael), 산이그나시오(San Ignacio) 등 10여 개 개척지에 십자가가 박혔다. 이 중 6개의 성당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한 가이드북은 대형버스가 몰려드는 관광지가 되기 전에 서둘러 가보라고 보채기도 했다. 안달이 났다. 대체 그곳이 어떻길래.

① 산호세데치키토스 - ② 산라파엘(산타아나는 선택) - ③ 산이그나시오 - ④ 콘셉시온- ⑤ 산하비에르가 대장정의 애초 목적지였다. 위키피디아


언뜻 쿠바의 트리니다드가 연상된다. 길을 돌면 어디선가 봤던 길인데 싶은 길의 연속. ⓒ강미승


성당 내부에 발을 딛는 순간, 마음의 잡음도 일시 멈춤이다. ⓒ강미승


입장객은 아치형 복도를 따라 예수회 선교단의 숨은 이야기를 탐험한다. 문 사이의 디테일에서 조차도. ⓒ강미승


예배당 안, 특히 벽 장식과 패턴에 인디오 문화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강미승


건물 곳곳에 장식된 프레스코화의 역사와 뜻, 안료의 성분 등을 설명한다. 스페인어만으로 설명해 언어 학습의 동기 부여한다. ⓒ강미승

산타크루즈를 출발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가는 노선을 택했다. 목적지는 볼리비아의 동쪽, 브라질과 뺨을 맞대는 지역이다. 여러 강줄기가 사방으로 뻗은, 산기슭 어딘가에 점처럼 찍혀 있는 곳이다. 이 순례길엔 불변의 여행법이 하나가 추가됐다. 한 마을에 정거하면 가장 먼저 빛의 속도로 다음 교통편을 물어보는 것. 산호세데치키토스에 도착하자마자 다음 날 오전 7시 교통편을 확인했다.

마을은 음, 그냥 마을이었다. 키 높은 나무가 리듬을 줄 뿐, 거기서 거기인 주황빛 지붕의 집들이 샴쌍둥이처럼 낮게 이어졌다. 길을 잃지 않는 건 높이 솟은 랜드마크 덕이었다. 바로 저기, 순례길의 첫 번째 보물인 산호세데치키토스 성당이 있었다.

정글 도시로의 입장은 요란스러웠다. 모기의 습격과 비가 선물한 진흙 땅을 헤쳐 성당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일시에 고요가 찾아왔다. 1697년 두 명의 선교사가 터를 잡은 뒤 1706년에야 제법 형태를 갖췄다는 역사가 오히려 의아했다. 박물관을 겸해 치키토스 예수회 선교단의 역사가 낱낱이 기록돼 있고, 성당의 벽화와 유물이 훌륭하게 보존돼 있었다.

건축학적으로도 다른 성당과 차별점을 둔다. 짚을 섞어 벽돌로 짓는 대신 유일하게 돌로 단단히 올렸다. 빛 바랜 프레스코화에 홀려 걸었다. 안뜰을 중심으로 아치형 복도를 따라 들어갔다가 나오는 숨바꼭질의 재미도 있었다. 유럽과 인디오 문화의 혼재, 그 안에서 절제된 예술적 기품을 보란 듯이 선보였다. 현재 예배당은 물론 성직자의 집과 종탑, 납골당 모두 건재하다. 세기에 걸쳐 지속적으로 보존의 손길이 미친 덕이다.

피케마쵸는 이런 것을 가르쳐 준다. 보기 나쁜 떡이, 기막힌 맛일 수 있다. 반전의 음식이다. ⓒ강미승


흙탕물로 범벅된 버스. 고된 비포장도로를 주행한 증거다. ⓒ강미승


“산라파엘로 우리를 좀 데려가 주세요.”라고 애걸복걸하는 문체. 곧 장대비에 떠내려갔다. ⓒ강미승

그날 밤, 선택의 여지 없이 숙소 앞 식당을 찾았다. 이 작은 식당에 메뉴판 대신 주인이 열거하는 메뉴가 천만 가지였다. 그 중 강력 추천하는 메뉴는 ‘피케마쵸(pique macho)’. 모양은 조금 흉측했다. 대충 봐도 냉장고의 잔반 처리용 음식 같았다. 고기와 치즈, 계란, 감자튀김 위에 케첩, 마요네즈 등을 과하게 뿌린 음식이다. 딱 봐도 다이어트의 적이다. 비볐다. 그리고 맛봤다. 아니 이것은! "맛이 그릇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어!" 만화 ‘미스터 초밥왕’에 나올 법한 주인공이 나였다. 이걸 단 한 번으로 끝낸다고? 그렇다면 하루 더 머물자.

이틀 후 오전 7시, 129㎞ 떨어진 산라파엘(San Rafael de Velasco)행 버스를 찾았다. 서부 영화에서 볼 법한 모래바람이 모기 물린 다리 사이를 지나갔다. 휑했다. 이날은 화요일. 버스 사무소는 문이 닫혔고, 시간표는 월·수·금·토요일에 버스가 있다고 알리고 있었다.

이제껏 남미를 경험한 바, 확실한 건 없었다. 다른 버스 사무소를 찾았다. 강아지 훈련이 시작됐다. 여기 가면 반대편으로 가라 하고, 반대편으로 가면 다시 처음 자리로 돌아가라는 식이다. 행인1은 오후 12시에 있다 하고, 행인2는 자정에 있다고 한다. 행인3은 새벽 3시라고 했다. 온라인도 범접할 수 없는 정보의 홍수로구나!

포기는 이르다. 히치하이크가 있지 않는가! ‘산라파엘’이라 쓴 용지를 벽에 붙이고 구세주를 기다렸다. 그러나 구세주 대신 2시간 후 장대비가 퍼부었고, 동네 강아지만 우릴 가엾게 여겼다. 불길한 징조다. 순례길 따위는 포기하고 산타크루즈로 돌아가자고 신경질을 부렸다. 탕탕은 계속하자고 고집을 피웠다. 그야말로 순례자였다. 고행길을 기어이 가고 싶단다. 5시간이 흘렀을까. 우리 손엔 어찌어찌 금요일 오전 티켓이 쥐어졌다. 이때까지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께 식당에서 피케마쵸를 먹으며 보았던 홍수 재난 뉴스와 우리가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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