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복 안 하면 죽음 뿐”…탈레반 어떻게 10일만에 카불 장악했나

입력
2021.08.19 21:55
구독

NYT, 아프간 10일만에 함락 요인 분석
4월 미군 철수 발표 이후 지역 정부군 잇따라 무너져
정부군 회유·협박 전술 통해 손쉽게 지역 거점 차지
SNS로 아프간 정부 부패 강조하며 통치 정당화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18일 수도 카불에서 M16 소총 등 미제 무기를 들고 서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18일 수도 카불에서 M16 소총 등 미제 무기를 들고 서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불과 10일만이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은 지난 6일(현지시간) 아프간 주요 거점 도시들을 점령한 뒤 열흘만인 16일 아프간 정부의 항복을 받아내고 수도 카불에 무혈입성했다. 18일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탈레반의 ‘협박 전술’이 미국도 예측하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아프간을 장악한 주요 비결이었다고 분석했다.

발단은 지난 4월 미국의 아프간 주둔 미군의 철수 발표였다.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유지돼 온 아프간 정부군 내부에서 분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NYT는 “미국의 철군 발표 이후 수세에 몰린 아프간 정부군의 사기는 저하됐고, 탈레반은 더 대담해졌다”고 평가했다.

이후 탈레반은 정부군에 대해 대대적인 회유 작전을 펼쳤다. 안토니오 기우스토치 영국 왕립연합서비스연구소의 연구원은 “탈레반은 정부군에 몰래 접촉해 돈을 포함한 인센티브를 통해 항복하거나 편을 바꿀 기회를 줬다”고 말했다. 탈레반의 한 지휘관은 지난 5월 아프간 북부 바글란주의 부족 원로에게 전화해 그 지역의 정부군에 “항복하지 않으면 우리가 죽일 것이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라고 요구했다. 지역 정부군은 대항하지 않고 기지 2곳과 전초지역 3곳을 탈레반에 넘겼다.

정부군이 잇달아 투항하면서 탈레반은 미국이 아프간 전쟁 시작 후 20년간 지원해온 막대한 양의 최첨단 군사 물품을 손쉽게 획득했다. 탈레반은 최근 칸다하르 공항에 아프간군 블랙호크가 서 있고 탈레반 대원이 그 주변을 감시하는 동영상을 소셜미디어에 공개하기도 했다.

회유책으로 승기를 잡은 탈레반은 빠르게 장악 지역을 넓혀갔다. 미국 매체 ‘롱워저널’에 따르면 탈레반은 올해 4월 13일 아프간 전역 400개 구역 중 77개 구역을 통제했고, 6월 16일에는 장악 구역이 104개로 크게 늘어났다. 이달 3일에는 두 배 이상 증가한 223개를 기록했다.

아프가니스탄 독립기념일인 19일 수도 카불에서 시민들이 총을 들고 순찰하는 탈레반 병사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독립기념일인 19일 수도 카불에서 시민들이 총을 들고 순찰하는 탈레반 병사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탈레반은 뿌리 깊은 아프간 정부의 부패도 활용했다. NYT는 “탈레반은 정부군을 항복시키기 위해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분노를 활용했다”라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부의 부패를 강조하고 탈레반이 이슬람 통치를 회복할 것이라는 메시지도 쏟아냈다”고 분석했다. 탈레반은 수년 간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을 통해 정부 부패를 고발하면서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메시지를 전파해왔다. 탈레반 공식 페이스북 계정의 팔로워 수는 5만여 명에 달한다. 아프간 모비미디어그룹의 대표 사드 모흐세니는 탈레반의 전술에 대해 “그들은 아프간인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인종, 종교, 이념적 차이 등을 총동원했다”며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최대한 활용했다”고 말했다.

강지원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