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요즘 세상에 누가 성추행 때문에 죽냐고?

입력
2021.08.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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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합동수사단이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 지난달 9일 오전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고 이모 중사 추모소 모습. 연합뉴스

국방부 합동수사단이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 지난달 9일 오전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고 이모 중사 추모소 모습. 연합뉴스

왜 성추행으로 생을 마감해야만 했을까.

석 달 간격으로 공군과 해군에서 연달아 터진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든 생각이다. 3년 전 ‘미투 사태’를 겪으며 우리 사회가 성폭력 피해자들의 폭로와 신고를 응원하는 분위기로 점차 변하는 걸 목격했기 때문이다. 수치심을 느끼며 고개 숙이는 것도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몫이 됐다. 성범죄 경중을 따지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이들이 당한 피해는 소중한 삶을 등져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피해자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공군 A중사는 군사경찰이 미적대는 사이, 사건 현장이 담긴 차량 블랙박스를 스스로 확보해 제출할 정도로 나약하지 않았다. 열악한 섬 근무를 자원한 11년차 베테랑 해군 B중사 역시 상관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으면서도 자신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가해자를 주의시킬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나 두 달 넘게 버티던 이들은 결국 세상을 떠났다.

사회는 조금씩 성숙하고 있었지만 군은 오히려 거꾸로 돌아가고 있던 것이다. 군 당국이 6년 전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적용한 ‘무관용 원칙’이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가할 좋은 핑곗거리가 됐다. “너 하나 때문에 여럿 군복 벗게 생겼다”, “너만 참으면 모두가 편하다”는 식의 회유, 협박을 하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더구나 피해자들은 ‘여성’과 ‘부사관’이라는 이중차별의 굴레 속에 있는 ‘을(乙)의 지위’였다. 조직에 대한 ‘배신자’로 낙인 찍힌 이상 정상 복귀가 어렵다고 절망했을 것이다.

군 당국이 수사에 속도를 내면서 일선 부대는 대혼란을 겪고 있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고 ‘조치를 하면 2차 가해, 안 하면 직무유기’가 되기에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몰라서다. 수뇌부도 뾰족한 수는 없는 듯하다. 판에 박힌 재발방지책과 이를 논의할 각종 기구만 쏟아내기 바쁘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나 각군 총장이 여군, 특히 여성 부사관들을 만나면 해법이 나올 법도 한데 정작 그런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17일 해군 성추행 사건을 계기로 열린 민관군 합동위원회 긴급회의 직후 위원 3명이 사의를 밝혔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진정성 없는 군 수뇌부의 태도도 원인이 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민간위원들도 출범 두 달 만에 느꼈는데 여군들은 오죽할까.

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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