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산업혁명, 교육과 노동에 달렸다 

입력
2021.08.18 00:00
26면

영국 산업혁명에 공헌한 구빈제도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새 제도 필요
너그럽고 유연한 교육, 노동 더해져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인류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사학자 해럴드 퍼킨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류는 이때부터 환경을 통제하여 자연의 횡포와 인색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산업화에 성공한 영국은 20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처음 발생했을까? 이에 대한 유력한 가설의 하나는 이 시기 영국에서 기술혁신에 대한 보상이 높았다는 것이다. 즉 로버트 알렌과 같은 학자에 따르면 당시 영국의 임금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높았기 때문에 노동을 절약하는 기계의 발명이 가져오는 경제적 보수가 컸으며, 이것이 기술혁신의 유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영국의 산업화에 긍정적이었던 것으로 지적되는 다른 요인은 구빈제도이다. 17세기 초 엘리자베스 여왕 재임 시 만들어진 영국의 구빈제도는 18세기까지 다른 서구의 선진국에 비해 훨씬 규모가 크고 통일적인 사회안전망으로 발전하였다. 산업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시골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전근대사회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안전판이었던 토지와 가족을 떠나 도시의 공업 부문으로 이동하는 '모험'이 요구되었다. 솔라와 같은 경제사학자는 영국의 구빈제도가 실패해도 생존이 보장되는 제도적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기회를 찾아 위험을 감수하는 결정을 가능하게 했다고 보았다.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오늘날의 기술·산업구조 변화는 첫 번째 산업혁명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며, 새롭게 성장하는 부문으로 능력을 갖춘 인력을 탄력적으로 공급해야 할 필요성은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 미래 사회의 가변성이 커지면서 특정한 산업·직종의 노동수급 사정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어려워졌으며, 적지 않은 미래의 일자리들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로 나서는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만 인생이 걸린 선택에서 이러한 위험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시대가 바뀌어도 공무원이나 교사처럼 안정적인 직업이 선호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성장잠재력과 불확실성이 공존하는 분야로 인재들을 충분히 유인하기 위해서는 높은 기대보수와 함께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판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오늘날 무엇이 사회적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과거 영국의 구빈제도가 그랬던 것처럼, 개인이 도전과 경쟁에서 실패하더라도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사회보험과 복지체계를 갖추는 것으로 충분할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생존이 최우선 과제였던 18세기 영국 노동자와 달리, 21세기 한국의 청년들이 직면한 실패의 위험은 단순한 생계의 문제를 넘어선다. 양극화되고 경직적인 노동시장에서 한 번의 선택 혹은 도전의 실패는 원치 않는 일자리에 영구적으로 묶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단지 소득 감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부당한 처우와 갑질에 시달리고, 위험한 작업환경에 노출되며, 일자리 불안정성 때문에 미래를 꿈꾸기 어려운 '2등 혹은 3등 시민'으로의 전락으로 다가올 수 있다.

기본적인 복지제도에 더하여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사회적 안전판은 거듭해서 기회를 주는 유연한 교육제도와 노동시장이라고 생각한다. 첫 진로 선택이 성공적이지 못한 것으로 드러날 때 늦게라도 교육을 통해 삶의 방향을 수정할 수 있고, 첫 도전이 좌절되더라도 자신의 능력과 선호에 맞는 차선의 일자리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사회로의 전환은 우리나라가 21세기 산업혁명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안전판 역할을 해 줄 것이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