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탈레반의 아프간’ 인정할까...'인권 보호'·'테러 방지' 전제돼야

입력
2021.08.17 17:52
수정
2021.08.17 18:29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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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탈레반 정권 인정 가능성 배제 안 해
탈레반 평화정권 창출에는 회의적 시각
미국 내 아프간 외환보유고, 탈레반 접근 거부
국제사회 연대 ‘아프간 문제 해결’ 모색할 듯
NYT "탈레반 지지 얻으려면 해외원조·투자 필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아프가니스탄 상황에 관해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아프가니스탄 상황에 관해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의 정권 인정 가능성을 슬슬 내비치고 있다. 다만 ‘인권 보호’와 ‘테러 방지’를 약속하는 조건에 한해서다. 탈레반은 앞서 “(아프간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 명예를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탈레반에 대해 해외 자산 동결 등 국제사회 압박을 통한 강경책도 마련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16일(현지시간) “앞으로 아프간 정부에 관한 우리의 태도는 궁극적으로 그 정부의 행동에 달려 있다”며 “여성 권리를 존중하고 알카에다와 같은 극단주의 운동을 피할 경우에만 탈레반 정부를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불과 두 달 전 ‘미군 철수 후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할 수 있다’는 유엔의 경고에도 “세계는 아프간에서 무력에 의한 정부 수립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정치 상황이 매우 빨리 변하고 있다”라며 “구체적으로 테러리스트를 숨기지 않고, 인구 절반인 여성의 기본권을 보장한다면 함께 협력할 수 있는 정부”라고 한 발 물러난 입장을 언급했다. 해외로 도피한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에 대해선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가니 대통령이 아프간을 떠남에 따라 미국 외교의 초점은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간 평화 협상 지원에서 ‘폭력 사태 방지’로 전환했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조건을 단 기조 변화를 거론했지만, 탈레반이 미국의 기대에 부응해 평화적인 정권을 창출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탈레반이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정부를 구성하겠다"며 국내외 유화적인 메시지를 잇달아 내놓긴 했지만 이는 국제사회 시선을 의식한 것일 뿐, 탈레반이 당장 달라지길 기대하는 건 무리라는 평가가 중론이다.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16일 안전보장이사회가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대한 긴급회의를 열고 있다. 뉴욕=EPA 연합뉴스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16일 안전보장이사회가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대한 긴급회의를 열고 있다. 뉴욕=EPA 연합뉴스

오히려 미국이 해외 자산 동결 등 국제사회 압박을 통한 강경책으로 탈레반을 통제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당장 미국은 이날 탈레반의 미국 내 계좌에 있는 아프간 중앙은행 외환보유고로의 접근을 거부했다. 미국 내 아프간 정부나 중앙은행의 자산 활용을 막아 탈레반의 돈줄을 옥죄겠다는 의도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아프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는 올해 4월 말 기준 94억 달러(약 11조620억 원)에 이른다. 미국이 IMF나 세계은행(WB) 등을 고리로 아프간 자금지원을 차단할 수도 있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 파키스탄, 인도 등 주변국과도 탈레반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중국과 러시아, 파키스탄, 인도 등의 외교 수장과 줄줄이 양자 통화를 해 아프간 문제를 논의했다. 이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도 긴급 회의를 소집, 탈레반에 즉각적인 적대행위 중단과 통합정부 수립을 촉구했다. 유럽도 아프간 문제 논의에 착수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날 아프간 사태를 논의할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소집을 요구했고, 유럽연합(EU) 회원국 외무장관들도 17일 임시 화상회의를 연다.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이날 “탈레반은 아프간 사람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 등을 제공해야 하는 높은 압력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 등 미국의 영향력이 높은 국가의 해외원조와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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