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군 후회 없다"는 무책임... 美 바이든 아프간전 망신 3대 패착 따져보니

입력
2021.08.17 17:00
수정
2021.08.17 21:02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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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국방ㆍ정보당국의 무책임... 총체적 실패?
① 아프간군 전력 과신ㆍ탈레반 역량 과소평가
② 9·11 철군 일정 고집에 전술 유연성 꼬였다
③ 친미파 가니 전 대통령 해외 도피 배신 뒤통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군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마친 뒤 퇴장하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군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마친 뒤 퇴장하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빼낸다는) 철군 결정이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러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아프간 정권 붕괴 후 첫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항변했다. 수도 카불을 손쉽게 포기한 아프간 정부도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아프간 정부군의 역량을 과신하고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은 과소평가했다는 판단 실책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이어졌다.

철군 결정에 후회가 없다며 '미국 책임론'에 정면돌파 의지를 밝혔지만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는 그의 취임 일성을 무색하게 하는 아프간 포기가 무책임하다는 지적도 많다.

그는 특히 "미국의 국익이 아닌, 다른 나라 분쟁에서 주둔하며 싸우는 과거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한국을 비롯한 동맹·우방에 경계심도 일으켰다. '국익'을 우선하는 철군 전략 자체는 불가피했겠지만 전술적 유연성이 부족해 국제사회 혼돈을 초래했다는 평가도 있다.

①아프간군ㆍ탈레반 역량 잘못 평가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휴가 중이던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후 워싱턴 백악관으로 급히 돌아와 기자회견을 가졌다. 하루 전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에 항복하고 카불 주재 미국대사관이 폐쇄되는 등 상황이 급박해지자 나선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은 아프간군이 스스로 싸우려 하지 않는 전쟁에서 싸울 수도 없고 싸워서도 안 된다”라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 탈레반 조직원들이 15일 제2대 도시 칸다하르 시내를 순찰하고 있다. 칸다하르=A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 탈레반 조직원들이 15일 제2대 도시 칸다하르 시내를 순찰하고 있다. 칸다하르=AP 연합뉴스


실제로 30만 명에 이른다던 아프간 정부군은 총 한 번 제대로 쏘지 못한 채 궤멸됐다. 최대 1년 6개월 걸릴 것이라던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은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고 2주도 걸리지 않았다. 미국 국방ㆍ정보당국의 총체적 실패였다.

미국은 2001년 아프간 침공 직후 탈레반을 몰아낸 뒤 아프간군 무기, 장비, 훈련 등에 20년간 830억 달러(약 97조 원) 이상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열악한 훈련 환경, 부패한 지휘체계, 병사들의 높은 문맹률 같은 요인으로 아프간 정부군의 전투 역량은 오합지졸 상태였다.

그나마 정부군 숫자마저도 조작됐다. “아프간 정부군의 실제 병력은 장부상 30만명의 6분의 1(5만 명) 수준”(미 일간 뉴욕타임스)이라는 것이었다.

② 부족했던 미군 철군 전술 유연성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진실은 (아프간 함락이) 예상보다 빨리 전개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아프간 주둔 미군 철군 일정을 확정한 6월만 해도 미 정보당국은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의 공세를 1년 이상 버틸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지난달 초 실제 미군 병력이 아프간을 떠나기 시작하자 탈레반 세력은 감췄던 전투 역량을 최대치로 발휘했다.

여기에 아프간 전쟁 원인이었던 2001년 9ㆍ11테러 20주년에 맞춰 미군 철수를 마치겠다는 바이든식 형식주의가 화를 불렀다. 미 국방부와 의회 독립위원회가 4,000명 안팎의 병력이나 테러전 수행 특수부대 계속 주둔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이를 무시한 고집도 문제였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8일 기자회견에선 “탈레반은 월맹군이 아니다. 역량이 그에 훨씬 못 미친다”고 얕잡아봤다. 우군과 적군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도 못 했다는 얘기다.

16일 수도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활주로를 따라 이동하는 미 공군 C-17 수송기에 몰려들고 있다.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아프간 시민 수천 명이 이날 공항 활주로에 몰려들어 일부는 필사적으로 미군 항공기에 매달리다가 추락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불=AP 뉴시스

16일 수도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활주로를 따라 이동하는 미 공군 C-17 수송기에 몰려들고 있다.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아프간 시민 수천 명이 이날 공항 활주로에 몰려들어 일부는 필사적으로 미군 항공기에 매달리다가 추락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불=AP 뉴시스


바이든 대통령은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지난해 2월 탈레반과 2021년 5월 철군을 결정했기 때문에 자신은 선택지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상황 오판이라는 지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③ 아프간 가니 전 대통령 너무 믿었나

바이든 대통령은 회견에서 “아프간 정치 지도자들은 (싸움을) 포기하고 해외로 도망쳤고 아프간군은 붕괴했다”라고 지적했다. “아프가니스탄 상황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gut-wrenching)”고도 했다.

그의 지적은 카불 함락 직전 해외로 도피한 아슈라프 가니 전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지난 6월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아프간 철군 후에도 확고한 지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정상회담 후 2개월도 안 되는 시간에 아프간 정부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6월 25일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아프간에서 미군이 철수하더라도 군사·경제적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6월 25일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아프간에서 미군이 철수하더라도 군사·경제적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도 “부패를 청산하고 지도자들이 정치적으로 단결해야 한다고 충고했지만 아프간 정부는 그 어느 것도 하지 못했다”며 “가니 대통령은 아프간 군대가 탈레반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분명히 그가 틀렸다”라고 설명했다. 아프간 정부의 무능에 책임을 돌린 것이다.

특히 탈레반이 카불 외곽에서 정부군을 압박하던 14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가니 전 대통령과 통화하고 상황 유지를 기대했지만 몇 시간 만에 그는 돈을 챙겨 급히 해외로 도피했다. 카타르 도하에서 2주간 휴전안이 논의되는 상황에서 가니의 배신이 상황을 망쳤다. 친미파 가니 전 대통령을 전적으로 믿었던 바이든 행정부가 또 한 번의 판단 오류를 범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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