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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고도 조기축구는 빼먹지 않는 요즘 대세 구교환

입력
2021.08.18 07: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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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여러분들이 잘 아는 배우의 덜 알려진 면모와 연기 세계를 주관적인 시선으로 전합니다.

배우 구교환은 단편영화와 독립영화에서 독특한 연기세계를 구축한 후 상업영화로 활동 폭을 넓혔다.

배우 구교환은 단편영화와 독립영화에서 독특한 연기세계를 구축한 후 상업영화로 활동 폭을 넓혔다.

5년 전이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인상적인 영화 한 편을 봤다. 극우 할아버지와 극우 청년의 기묘한 인연을 그린 ‘우리 손자 베스트’(2016)였다. 할아버지 정수는 동방우(옛 이름 명계남)가 맡았다. 여러 영화와 드라마로 익숙한 얼굴이었다. 맞은편 젊은 배우는 낯설었다.

젊은 배우는 목소리가 독특했다. 코맹맹이에 쇳소리가 섞였다. 말을 느리게 하면 비열해 보였고, 속도를 높이면 의협심이 담겼다. 거부감이 느껴지면서도 정감이 갔다. 바짝 마른 얼굴에 우뚝 솟은 코가 괜한 동정심을 불렀다. ‘헬조선’을 살아가는 불우하고도 지질한 청춘을 대변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입체적인 매력을 지닌 배우였다. 직감이 전류처럼 몸을 통과했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2005)의 하정우를 봤을 때, ‘파수꾼’(2011)의 이제훈을 마주했을 때와 비슷했다. “몇 년 내로 한국 영화계 주요 배우로 성장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반도’로 대중의 눈을 사로잡고, 올해 여름 ‘모가디슈’로 강한 인상을 남긴 구교환(39)에 대한 첫인상이다.

구교환은 독립영화 '꿈의 제인'에서 트랜스젠더를 연기하며 영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엣나인필름 제공

구교환은 독립영화 '꿈의 제인'에서 트랜스젠더를 연기하며 영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꿈의 제인'. 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꿈의 제인'. 엣나인필름 제공

예감은 금세 확신으로 바뀌었다. ‘꿈의 제인’(2017)을 보고 앞으로 구교환이 나오는 영화는 다 챙겨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꿈의 제인’에서 트랜스젠더 제인을 연기했다. 가출 청소년들의 공동체를 운영하는 인물이다. 그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난 인생이 엄청 시시하다고 생각하거든"이라고 말할 때 아이러니하게도 위안을 받았다. 달콤한 언변으로 결국 “열심히 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세상 모든 유명한 멘토의 말보다 더 울림이 컸다.

구교환의 영화 인생은 연인 이옥섭(34) 감독을 빼고 설명할 수 없다. 두 사람은 서울예술대학 영화과 선후배 사이다. 여러 단편영화 작업으로 오래전부터 독립영화 진영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독특한 아이디어로 짧은 영상에 강렬한 이미지를 담아왔다. 구교환과 이 감독은 유튜브에 ‘[2x9HD]구교환X이옥섭’이란 채널을 열어 단편 작업들을 올리고 있다.

구교환은 영화 '메기'에서 실업난 속에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청년을 연기했다. 엣나인필름 제공

구교환은 영화 '메기'에서 실업난 속에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청년을 연기했다. 엣나인필름 제공

이 감독과의 단편영화들에서 구교환의 재능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 감독과 각본ㆍ연출을 함께 담당한 14분짜리 ‘플라이 투 더 스카이’(2015)가 좋은 예다. 가죽공예 공부를 위해 이탈리아 유학을 갔다가 좌절만 안고 돌아온 청년 성환(조성환)과, 영화에 대한 꿈을 놓지 않으면서도 생계를 위해 중장비 자격증을 취득한 후배 교환(구교환)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전복적인 웃음이 청년세대의 쓸쓸한 정서를 전한다. 두 사람이 바닷가를 찾아 횟집에서 해산물을 먹는 대신 부두에 쪼그려 앉아 새우버거를 먹는 식이다. 구교환은 이 영화의 시각효과와 편집까지 담당했다. 구교환은 이 감독의 첫 장편영화 ‘메기’(2019)에도 주연으로 출연했다. 이 감독이 지난해 들꽃영화상 시상식에서 극영화 감독상을 받았을 때 구교환이 비명 같은 환호성을 질렀던 기억이 난다.

'플라이 투 더 스카이' 바로 보기

구교환은 단편영화 속에서 기이하고 엉뚱한 인물들을 연기했는데, 화면 밖 면모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한 영화제작자는 그를 “4차원”이라고 표현했다. 구교환은 ‘모가디슈’ 촬영 전까지 운전면허가 없었다고 한다. 초보운전인 그는 주소말리아 북한대사관 참사관 역할을 맡아 차량 추격 장면에서 운전대를 잡고 액션 연기를 선보였다. 북한 대사를 연기한 허준호는 최근 화상인터뷰에서 “매일 교환이가 운전하는 차를 타는 게 정말 공포였다”고 말했다.

구교환은 대작 '모가디슈'에서 주소말리아 북한대사관 참사관 태준기를 연기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구교환은 대작 '모가디슈'에서 주소말리아 북한대사관 참사관 태준기를 연기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구교환은 ‘꿈의 제인’으로 2018년 제5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신인연기상을 받고선 이런 수상 소감을 남겼다. “이 상을(받게 되어서)… 앞으로도 계속 연기할 수 있다고, 혼자 오해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무명배우로 살며 머릿속에 자리 잡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의문이 반영된 듯하다. 그의 ‘오해’는 화제작 출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27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드라마 ‘D.P.’에선 주연을 맡아 정해인 김성균 손석구와 연기 호흡을 맞췄다. 최근엔 티빙 드라마 ‘괴이’에 주연으로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구교환은 넷플릭스 드라마 'D.P.'의 공개를 앞두고 있다. 탈영병을 쫓는 사병 호열로 나온다. 넷플릭스 제공

구교환은 넷플릭스 드라마 'D.P.'의 공개를 앞두고 있다. 탈영병을 쫓는 사병 호열로 나온다. 넷플릭스 제공

일이 많아져 만나기 어려워졌다는 말이 지인들에게서 나온다. 하지만 구교환은 독립영화 쪽 배우들과 함께하는 조기축구는 빠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당신이 어느 운동장을 지나가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인물이 축구공을 드리블하고 있다면 구교환일지도 모른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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