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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매달려 탈출" 비명과 총성 난무하는 아비규환 아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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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아프가니스탄’은 ‘어제의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다. “전쟁은 끝났다”는 승리 선언과 함께 한층 강해진 ‘탈레반의 나라 2.0’이 순식간에 막을 올렸다. 미국이 아프간 주둔 미군 철수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이자,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이달 초 주요 거점 도시를 장악한 지 고작 열흘 만이다. 하루아침에 모든 게 뒤집힌 아프간은 극심한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공항은 탈출 행렬로 아비규환이고, 수도 카불 시내는 공포에 질려 숨소리조차 얼어붙었다. 탈레반은 “생명과 재산, 명예를 보장하겠다”면서 유화적 태도를 취했으나, 20년 전 아프간을 지배했던 이슬람 근본주의가 부활하는 암울한 조짐도 보인다.
15일(현지시간) 오전 수도 카불에 입성한 탈레반은 불과 몇 시간 만에 전광석화처럼 대통령궁을 접수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심지어 “평화롭기까지 한”(CNN방송) 점령이었다. AP통신은 “게임 오버(Game Over)”라고 촌평했다. 대통령궁엔 탈레반기가 의기양양하게 올라갔고, 동시에 미국 대사관에선 성조기가 맥없이 내려왔다. 탈레반은 이날 저녁 대통령궁에 모인 무장대원들의 모습도 영상으로 공개했다. 미국 싱크탱크 우드로윌슨센터 아프간 전문가 마이클 쿠겔먼은 “수십 년 후 이 장면은 미국 패권주의의 한계와 현대 전쟁의 폐단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가 될 것”이라고 평했다.
‘탈레반의 나라’ 밑그림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수하일 샤힌 탈레반 대변인은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이슬람 정부를 구성할 것”이라며 “탈레반이 아닌 아프간인도 새 정부에 참여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외국군 철수”다. 탈레반 고위 관리는 “어떻게 통치권을 인수할지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면서도 “통치 구조 조정을 시작하기 전에 모든 외국군이 철수하기를 원한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국제사회의 감시나 개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경고다.
이미 탈레반은 국가 기반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 무장대원들을 정부 청사와 대사관, 외교 공관 등에 파견했고, 주요 도로에 검문소를 설치했다. 아프간군과 경찰에는 무기를 넘기고 탈레반에 합류하면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겠다며 투항을 요구했다. 카불 공항 주변에선 경찰차를 타고 순찰하는 탈레반 대원들이 목격되기도 했다. 또 주민들에게는 “탈레반은 싸우지 않고 도시를 점령하고 있으며 아무도 위험에 처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배포했다. 나아가 약탈과 폭력사태를 신고할 수 있는 전화번호까지 안내했다. 점령 하루 만에 사실상 정부 기능을 가동한 셈이다. 사전에 준비된 카불 장악 시나리오에 따라 정부 구성과 출범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란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탈레반은 “전 정권에서 복무한 사람들에게 보복하진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대원들에겐 “민간인을 겁주지 말고 정상적인 활동을 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하지만 카불 공항에선 16일 필사의 탈출극이 펼쳐지고 있다. 직원들마저 도망간 공항은 통제 불능 상태다. 소셜미디어에는 여객기를 향해 수천 명이 활주로를 내달리는 모습, 아이를 업은 시민이 비명을 지르며 뛰어가는 모습, 열린 탑승구 안으로 들어가려고 몸싸움을 하거나 계단 난간에 거꾸로 매달린 위험천만한 모습 등이 올라왔다. 결국 공항 당국은 모든 민항기 운항을 중단했다.
혼돈을 뚫고 수 차례 총성도 울렸다. 로이터통신은 “민간인이 군용기에까지 몰리자 미군이 혼돈을 진정시키려고 발포한 것”이라며 “공항에서 최소 5명이 숨졌는데 미군 발포 때문인지 (인파에) 깔려 죽었는지 모르겠다”는 목격자 증언을 전했다.
급기야 이륙한 여객기의 바퀴 부근에 매달렸던 사람들이 공중에서 추락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인디아TV는 “여객기 바퀴에서 두 명이 떨어지는 모습이 포착됐다”며 “세 명이 여객기 바퀴에 매달린 채 이륙한 상황에서 두 명이 추락해 사망한 것을 공항 인근 주민이 확인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아프가니스탄 군용기가 우즈베키스탄 영공에 진입했다 격추당하는 일도 발생했다.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에 보복을 두려워한 정부군 조종사가 탈출을 시도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우즈벡 국방부는 16일 성명을 발표해 “전날 밤늦게 우즈베키스탄 영공으로 진입한 아프간 군용기 한 대가 방공부대에 격추돼 추락했다”고 밝혔다. AFP통신은 현지 소식통을 인용, “전날 아프간 군복을 입은 환자 2명이 수르콘다료 병원에 입원했으며, 그중 1명은 낙하산을 매고 있었다”고 밝혔다.
반대로 카불 시내는 숨막히는 정적에 휩싸였다.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관공서와 대사관도 텅 비었다. 탈레반이 주민의 차량을 빼앗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거리엔 인파가 끊겼다. 주민들은 칩거하며 몸을 사리고 있다. 한 상점 주인은 “탈레반 점령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국민들을 이런 상황에 방치한 아프간 정부도 최악”이라고 분노했다.
아프간이 과거 무자비했던 탈레반 집권기(1996~2001)로 퇴행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카불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탈레반은 “여성들이 히잡을 쓰면 학업과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고 혼자서 집 밖에 나가는 것도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다시 생각하면 이 말은 곧 여성을 히잡 안에 도로 가두겠다는 의미다. 앞서 탈레반은 여성 프로그램을 내보냈던 지방 라디오 방송국을 폐쇄하기도 했다. 한 주민은 “탈레반 입성 뒤 아내와 딸을 위한 부르카가 집에 있는지부터 확인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에 말했다.
알카에다 같은 테러단체가 다시 득세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탈레반은 최근 아프간 최대 규모인 ‘풀 에 차르키 교도소’에 수감된 5,000여 명을 풀어줬다. 수감자 중엔 테러리스트가 다수 포함돼 있다. 주변국들은 테러리스트가 아프간 난민에 섞여 자국에 유입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상원 브리핑에서 “탈레반이 아프간을 급속도로 점령해 알카에다 같은 테러단체들이 당초 예상한 2년보다 빠른 속도로 아프간에서 재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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