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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철군' 일정 집착한 美 바이든의 패착?... '제2의 베트남 패전' 뒷모습 우려했지만

입력
2021.08.15 22:3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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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바이든 긴급성명...미군 1000명 현지 증원
탈레반 겨냥 '철수 지원 미군 공격 말라' 경고
1975년 사이공 함락 철수작전 실패 되풀이되나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함락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15일 철수작전에 나선 미군 치누크 헬기가 카불 주재 미국대사관 상공을 날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함락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15일 철수작전에 나선 미군 치누크 헬기가 카불 주재 미국대사관 상공을 날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15일(현지시간)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에 사실상 항복을 선언하자 미국은 다급한 상황이 됐다. 카불 주재 미국대사관은 이날 긴급 철수에 돌입했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4일 아프간 철수를 지원할 미군을 5,000명으로 증원했지만 안전한 철수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이었다. 1975년 사이공(현 호찌민) 함락 당시 혼란 같은 제2의 베트남전쟁 패전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미국의 누적된 오판에다 9ㆍ11 철군 일정에 집착한 바이든 대통령의 패착이 현 상황을 낳았다는 비판도 점점 커지고 있다.

카불 미국인 철수 서두르며 타협도 모색

탈레반이 아프간 제4의 도시 마자르-이-샤리프를 점령하며 카불 턱밑까지 치고 들어온 주말,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휴가 중이던 바이든 대통령은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먼저 “외교ㆍ군사ㆍ정보팀 권고에 근거해 약 5,000명의 미군 배치를 승인했다”며 미국 및 다른 동맹국 요원, 미군을 도운 아프간인 철수 지원을 배치 목적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15일 오후 탈레반이 수도 카불 외곽을 완전히 포위하고 대통령궁에서 정권 이양 협상을 시작하는 등 예상보다 빨리 상황이 전개되자 민감한 자료 폐기와 헬기ㆍ비행기를 동원한 철수 작전이 긴박하게 전개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에서 “미국 요원과 임무를 위험에 빠트리는 어떤 행동도 신속하고 강력한 군사 대응에 직면할 것임을 (카타르) 도하의 탈레반 대표들에게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철수 작전을 펴는 미군에 직접 공격을 가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트럼프ㆍ바이든 조기 철군 고집도 문제

미 정보당국은 6월 말까지만 해도 카불 함락 시점을 미군 완전 철수 후 18개월 정도로 예상했다. 그러나 지난 일주일 사이 탈레반의 파죽지세에 아프간 정부는 힘을 쓰지 못했다.

결국 2001년 아프간 침공부터 시작된 미국의 그릇된 판단 누적이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비판도 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 대통령의 최고위 참모들은 카불을 위협하는 탈레반의 공격적이고 계획된 공세에 직면한 아프간군의 급속한 붕괴에 망연자실했다”고 전했다.

830억 달러(약 97조 원)를 들여 20년간 아프간 보안군 30만 명을 훈련시키고 장비를 현대화했지만 부패와 분열 등으로 아프간군은 괴멸됐다. 반면 8만 명 안팎의 전투 경험이 많고 사기가 높은 탈레반의 전력과 전략은 과소평가한 측면이 컸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남서쪽 150㎞ 지점의 거점 도시인 가즈니주 주도 가즈니를 장악한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의 한 대원이 13일 항복한 정부군 병사들을 감시하고 있다. 가즈니=A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남서쪽 150㎞ 지점의 거점 도시인 가즈니주 주도 가즈니를 장악한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의 한 대원이 13일 항복한 정부군 병사들을 감시하고 있다. 가즈니=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급한 주둔 미군 감축 및 철군 결정, ‘9ㆍ11 테러 20주년 이전 아프간 완전 철군’ 일정에 집착한 바이든 대통령의 판단도 문제였다.

NYT는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국방부가 계속해서 소규모 대테러부대나 최대 4,500명의 미군 계속 주둔을 요구했지만 관철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7월 초 바그람 공군기지 철수 등 미군이 줄어드는 시점에 맞춘 탈레반의 총공세를 제대로 계산하지 못한 군사전략 오판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1975년 베트남전쟁 당시 사이공 현지인 구출작전에 투입된 항공모함 미드웨이 선상의 베트남인들. midway.org

1975년 베트남전쟁 당시 사이공 현지인 구출작전에 투입된 항공모함 미드웨이 선상의 베트남인들. midway.org


‘1975 사이공 함락’ 패전 도주 재현 우려

바이든 행정부는 베트남전 패전 직전 최후의 탈출 작전이 재현되지 않도록 노력 중이다. 1975년 북베트남군의 사이공 공세에 쫓겨나듯 베트남을 떠났던 미국의 모습이 아프간에서 되풀이될 경우 바이든 대통령의 지도력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당시 ‘프리퀀트 윈드 작전’으로 미국인과 베트남인 7,000여 명이 탈출에 성공했지만 400여 명이 사이공을 탈출하지 못하고 남겨지는 치욕도 있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결정으로 우리는 치욕적인 ‘1975년 사이공 함락’의 속편으로 나아가게 됐고 심지어 상황이 그때보다 나쁘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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