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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우진을 들어보셨나요

입력
2021.08.16 04: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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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의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관련 보도.

뉴스타파의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관련 보도.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인물이 있다. 뒷조사를 좀 했더니 생각했던 것 이상이다. 흥미롭다는 수식어로 재단하기엔 스토리가 너무 풍부하다. 영화로 그의 삶을 묘사하면 ‘대박’이 날 것이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동안 몰라봐서 죄송합니다’라고 인사라도 해야 할 판이다.

이제부터 그를 소개하려고 한다. 6ㆍ25전쟁이 끝난 직후 충남 청양에서 ‘윤우진’이란 인물이 태어났다. 그 시절 많은 사람들처럼 그가 맞닥뜨린 현실은 지독한 가난이었다. 그는 2남 4녀의 장남으로 부모를 포함해 여덟 식구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그는 먹고살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미군기지 주변인 대전 문화동 빈민촌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낮에는 새마을운동 일을 하고, 밤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머리가 좋았던지 그는 충남도청, 한전, 상업은행, 국세청에서 줄줄이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어디로 갈지 고민하던 중 ‘국세청에 들어가면 금방 형편이 나아질 것’이란 이야기를 듣자 그는 주저 없이 선택했다. 안정적 삶이 보장된 도청 생활을 정리하고 국세청 9급 공무원으로 서울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서울 청량리 세무서에 발령받자, 그는 가족들을 모두 서울로 불러들여 중화동에 터전을 잡았다. 서울대 법대를 가는 게 꿈이었지만, 대학 졸업장은커녕 그에겐 고교 졸업장도 없었다. 대신 자신의 꿈을 남동생이 이루도록 물심양면 지원했다. 하지만 대학 간 남동생과 여동생이 기대와 달리 데모랑 노동운동을 하는 바람에 그는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세무 공무원으로서 그의 삶은 화려했다. 가방끈이 짧아 상사들에게 무시도 당했지만, 타고난 사교 능력과 출세욕으로 자신의 약점을 커버하고도 남았다. 국세청 핵심부서인 조사, 홍보, 세원정보 분야에서 일하면서 그의 네트워크는 비약적으로 뻗어갔다. 한 번 하기도 힘들다는 서울시내 세무서장을 세 번씩이나 했다.

권력기관 인사들과 언론인, 건달들과의 교류로 그는 날개를 달았다. 힘있는 사람들도 그를 찾아오고 두려워하게 됐다. 그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만났다는 용산의 호텔 주변은 아지트였다. 그는 호텔을 드나들며 당대 내로라하는 정치인과 국가정보원 관계자, 법조인, 경찰 간부, 건달, 언론인들을 쉼 없이 만났다. 호텔 인근 아파트에 거주하며 인맥 관리를 극대화하기도 했다.

그의 파워는 위기 때 드러났다. 경찰에서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다가 해외로 도피했는데도 검찰은 그를 무혐의 처리했다. 돈 받은 건 맞는데 사회통념상 인정된다는 해괴한 논리가 등장했다. 여기에 국세청을 상대로 파면취소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는 기적을 일궈내기도 했다.

그의 세상이 끝났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그를 다시 찾았다. 그를 잘 몰랐던 사람들도 그를 찾기 시작했다. 퇴직 후 그가 마련한 강남 사무실에는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를 통하면 안 되는 일도 해결된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원한 제국은 없다고 하지 않았나. 조만간 그를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속속 공개될 것 같다. 이미 뉴스타파 보도를 통해 일면이 드러나고 있다. 그를 비호하기 위한 움직임이 이번에도 통할지가 관전 포인트다. 떨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서초동이 시끄러워질 것 같다.


강철원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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