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신고 전후 '진급 불이익' 압박 있었나… 밝혀져야 할 의문들

입력
2021.08.16 04:3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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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상관에게 성추행당한 사실을 신고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해군 여성 부사관 빈소가 마련된 대전 국군대전병원에 근조화환을 운반하는 차량이 정문으로 진입하고 있다. 대전=뉴스1

13일 상관에게 성추행당한 사실을 신고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해군 여성 부사관 빈소가 마련된 대전 국군대전병원에 근조화환을 운반하는 차량이 정문으로 진입하고 있다. 대전=뉴스1

성추행 피해자 해군 부사관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가해자가 14일 구속됐다. 피해자 A 중사가 5월 27일 성추행을 당한 지 79일 만이다.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한 시점(12일)을 기준으로 하면 불과 이틀 만이어서 군 당국은 수사에 상당한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경기 평택 2함대사령부 미결수용실에 수감된 가해자 B 상사를 상대로 집중 조사가 가능해진 만큼 정확한 사건 실체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향후 수사에서 밝혀져야 할 가장 큰 의문은 가해자의 업무배제와 괴롭힘으로 A 중사가 정식 신고(9일)를 한 뒤 왜 사흘 만에 세상을 등졌냐는 점이다. 해군 측은 “A 중사는 능력을 인정받고 대인관계가 좋았던 훌륭한 부사관이었다”며 “피해자에게 심리적 타격을 줄 만한 2차 가해 여부 등을 피해자 휴대폰 포렌식 등을 통해 규명하겠다”고 했다.

신고 전후 '진급 불이익' 언급 있었나

13일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의 모습. 뉴스1

13일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의 모습. 뉴스1

올해 말 상사 진급 평가를 앞두고 있었던 A 중사는 5월 24일 인천 옹진군 인근 섬 근무를 자원했다. 격오지 근무는 인사평가에서 가점을 받기 때문이다. 부임 사흘 만에 강제추행을 당하고도 평소 친분이 있던 주임상사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으며 “상부에 보고하지 말고 주의 조치만 해 달라”고 했던 것도 혹시 모를 인사 불이익을 우려해서다. 주임상사 역시 참고인 조사에서 “피해자가 진급을 위해 도서지역 근무를 자원했고, 사건이 알려지면 본인에게 좋지 않을 것으로 판단해 보고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A 중사는 두 달이 지난 이달 초 정식 신고하기로 마음을 바꾼다. 가해자의 지속적인 업무배제와 괴롭힘이 이유였다. 신고 당일인 9일 본인 희망에 따라 육상 부대로 전출한 그는 새로 배정받은 숙소 전등 교체를 요구했고 12일 현장을 찾은 숙소 관리 간부들에게 숨진 채로 발견됐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A 중사가 가해자 외에 다른 상관에게 ‘이번 사건을 문제 삼으면 진급에서 누락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유족 측이 전했다”고 밝혔다. 성추행 신고를 전후해 인사 관련 불이익이나 중압감을 느낄 만한 상황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신고 뒤 가해자의 추가 협박, 전출 부대에서의 2차 가해 여부 등도 수사 대상이다.

軍 ‘성범죄 대응 매뉴얼’ 개정 필요성 커져

13일 해군교육사령부에서 열린 '제676기 해군병 수료식'에서 해군병들이 사령관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해군교육사령부 제공

13일 해군교육사령부에서 열린 '제676기 해군병 수료식'에서 해군병들이 사령관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해군교육사령부 제공

이번 사건을 통해 군내 성범죄 대응 매뉴얼 개정도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A 중사로부터 피해 사실을 들은 주임상사가 피해자의 강력한 요청으로 상부 보고를 하지 않은 것이 결과적으로 피해자를 방치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주임상사는 석 달 전 ‘공군 성추행 사건’에서 피해 사실 유포는 물론 공유도 2차 가해로 간주되는 걸 보면서 지휘계통으로 보고를 안 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피해 사실이 퍼질 수 있어서다. 더구나 A 중사가 근무한 도서지역은 근무 인원이 40여 명에 불과했다. 실제 피해자는 주임상사에게 성추행을 공론화하지 말아 달라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5차례나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법률과 훈령도 충돌한다. 군인의 지위복무에 관한 법은 ‘성범죄 사실을 알게 될 경우 즉시 상관에게 신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부대관리훈령은 ‘피해자가 원할 경우 상담 내용을 신고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 피해자 의사를 우선 고려한다. 정교한 매뉴얼이 없으면 현장 혼선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성추행 피해 사실을 전해 들은 뒤 상부에 보고할 경우 ‘2차 가해’가 되고 묵인하면 ‘직무유기’가 되는, 모순된 상황이 반복될 우려가 큰 셈이다. 국방부는 “각 군에서 상충되는 규정을 정리해 달라는 건의가 많아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장례 절차를 마친 A 중사는 15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해군이 보통전공사상심사위원회를 열어 피해자의 순직을 결정하면서다. 군인사법과 국방부 전공사상자 처리 훈령에 따르면 구타, 폭언, 가혹행위 또는 업무 과중 등이 직접적 원인이 돼 자해행위를 해 사망한 경우에도 순직자가 될 수 있다.

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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