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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실정이 드러낸 상처

입력
2021.08.17 16:51
수정
2021.08.17 17:59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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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상승률이 매주 역대급을 기록하고 있다. 5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8월 첫째 주 전국 주간 아파트가격 동향에 따르면 매매가격은 0.28%, 전세가격은 0.21% 각각 상승했다. 5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도심 아파트 단지의 모습.

집값 상승률이 매주 역대급을 기록하고 있다. 5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8월 첫째 주 전국 주간 아파트가격 동향에 따르면 매매가격은 0.28%, 전세가격은 0.21% 각각 상승했다. 5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도심 아파트 단지의 모습.


모 그룹 퇴사자의 입을 빌려 대기업 임직원 복지 수준을 전한 유튜브 영상이 한동안 2030세대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과장으로 재직 중 회사를 떠난 그는 영상에서 신입사원의 연봉이 대략 4,500만 원 수준이지만 각종 수당을 포함하면 원천징수 기준 8,000만 원에 육박하고, 회사가 1%대의 저리로 주택구입자금을 척척 빌려준다고 했다. 업무 스트레스가 극심하지만 과장급이면 억대 연봉을 바라볼 수 있고, 병원비와 자녀 학자금 걱정이 없으며 대출금으로 비교적 쉽게 여윳돈을 불릴 수 있어 대부분 만족하며 직장 생활을 한다는 말도 더했다. 최악의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 구직자들로부터 "무조건 대기업"이라는 반응이 나올 법한 얘기들이었다.

20여 분의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그러나 그가 누린 대기업의 복지와 급여를 상징하는 숫자가 아니었다. 이렇게 좋은 직장을 '왜 그만뒀을까'라는 물음에 "부동산 투자에 성공했고, 노동소득보다 자산으로 기대할 수 있는 소득이 커지면서 은퇴를 결정했다"고 한 답이었다. 대기업 구성원으로 보장받는 미래의 노동소득보다 아파트 가치 상승 전망을 더 신뢰한 결과가 일찌감치 회사를 나온 이유라는 얘기였다.

비록 대다수 직장인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볼 순 없지만, "부동산 투자 덕분에 은퇴했다"는 퇴직자의 말이 심상치 않게 들리는 이유는 다름 아닌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낳은 명징한 상흔이 엿보여서다. 26차례에 걸쳐 부동산 정책을 손질하며 집값 하락 전망을 끊임없이 국민의 뇌리에 각인시켰음에도 아귀가 맞지 않는 공급 계획과 사실상 무주택자를 겨냥해버린 규제 때문에 자산 소득에 대한 맹신은 이 땅에서 여느 종교보다 단단하게 자라났다. 심지어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지난달 집값이 곧 떨어질 테니 '고점매수'하지 말라고 으름장에 가까운 대국민 담화를 했음에도 시장은 수도권 집값 상승률 최고치(8월 2일 기준 전주 대비 3.7%)와 역대 최고 주택소비심리지수(7월 146.3)로 답했을 정도다. 신뢰를 잃은 정부의 하락 전망을 따르느니, 금리인상 경고등을 무시하며 영끌 대출을 이어서라도 유망한 자산소득을 준비하자는 여론이 꺾이지 않는 것이다. 노동소득보다 자본 및 자산소득이 앞서는 계층은 상위 0.1% 정도라는 토마 피케티의 진단은 한국 사회에서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는 셈이다.

서울 원룸형 아파트(전용 40㎡이하) 가격마저 주택담보대출 한계인 15억 원 이상으로 끌어올릴 만큼 '불장'에 불을 더한 것만이 실정(失政)이 남긴 상처의 전부는 아니다. 더욱 아픈 부위는 어쩌면 노동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미래를 살아야 할 청년의 몫일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영상을 본 2030세대는 어떤 생각을 할까. 열심히 공부해 좋은 회사에 취직하겠다는 의지를 다질까. 아니면 누가 뭐래도 내 집을 마련해 하루빨리 제값도 받지 못하는 노동의 굴레를 벗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할까.

땀흘리며 일하는 모습보다 과도한 투자가 미래를 더욱 확실히 보장하리란 믿음을 청년에게 심어준 실책. 결과적으로 노동의 값어치라는 이름의 건전한 동력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야말로 문재인 정부 부동산 실정이 드러낸 가장 아픈 상처가 아닐까.


양홍주 디지털기획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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