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없으니 '성폭력'도 없다"고 여긴 軍 수뇌부... 말로만 발본색원

입력
2021.08.14 00:1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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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성추행 피해를 겪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해군 부사관의 빈소가 마련된 대전 국군대전병원으로 근조화환을 운반하는 차량이 들어가고 있다. 대전=뉴스1

13일 성추행 피해를 겪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해군 부사관의 빈소가 마련된 대전 국군대전병원으로 근조화환을 운반하는 차량이 들어가고 있다. 대전=뉴스1

“군 내부 성폭력을 발본색원하라”는 군 통수권자의 지시도, ‘특별신고기간’을 정해 사건 재발을 막겠다는 의욕도 소용없었다. 공군에 이어 석 달 만에 해군에서도 여성 부사관이 성추행 피해를 겪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특단의 대책을 약속한 군의 다짐은 공염불이 됐다.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군 수뇌부의 안이한 태도도 여전했다.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은 공군 중사 사망 사건과 관련, 6월 9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현안 보고에서 “성폭력 사건이 무능하고 해괴하게 지연된 사례를 보신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해군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고 자신 있게 답했다. 당시는 해군 A 중사가 5월 27일 상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지 2주가 지난 시점이었다. 물론 정식 신고가 늦어져 부 총장의 답변을 거짓 증언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보고가 안 올라왔으니 성폭력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 인식 자체가 군 수뇌부가 성폭력 문제를 너무 가볍게 보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국방부가 6월 한 달간 시행한 ‘성폭력 피해 특별신고기간’도 무용지물이었다. A 중사가 이 기간 성추행 피해를 신고하지 않은 이유는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피해자로부터 성추행 사실을 맨 처음 들은 주임상사는 “(A 중사가) 진급을 위해 섬 근무를 자원했고, 사건이 알려지면 본인에게 좋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와 해군 역시 일관되게 숨진 피해자가 공론화를 원치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군 일각에선 특정 현안을 앞세운 신고 제도가 오히려 불이익을 우려해 고발을 꺼리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군 관계자는 13일 “특별신고라는 취지는 좋지만, 아무래도 시선이 집중되다 보니 피해자들이 주변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3개월 간격을 두고 판박이 사건이 발생하자 수장의 사과만으론 군 성폭력을 근절할 수 없다는 비관론도 커지고 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이날 반년 사이 7번째 고개를 숙였다. “유족과 국민들께 송구하다”고 다시 사과했고, 전문수사팀을 꾸려 의혹을 남기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6월 공군 사건이 공개됐을 당시 익히 들었던 말이다. 성폭력을 초래하는 군 위계 질서의 악습을 혁신하지 않는 한 아무리 장관을 바꿔도 피해자는 계속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조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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