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뱅크런’ 부른 머지포인트 사태… "규제 빈틈 타고 커졌다"

입력
2021.08.13 21:5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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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결제플랫폼 회사 '머지포인트' 본사에 환불을 요구하는 가입자들이 건물 밖까지 줄을 서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결제플랫폼 회사 '머지포인트' 본사에 환불을 요구하는 가입자들이 건물 밖까지 줄을 서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포인트 충전 시 20% 할인이라는 파격 혜택으로 인기를 모았던 결제 플랫폼 ‘머지포인트’가 법률 리스크 해소를 핑계로 돌연 상품권 판매를 중단하고 서비스를 축소해 파문이 일고 있다. 신종 인기 서비스가 2년 넘게 각종 금융사와 손잡고 영업망을 넓히는 사이, 사실상 방관해 온 금융당국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나온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머지플러스(머지포인트 운영사)는 2018년부터 티몬·위메프 등 전자상거래(e커머스) 플랫폼에서 머지포인트 상품권인 ‘머지머니’를 20% 할인한 가격에 판매한 뒤 이를 애플리케이션(앱)에 등록하면, 대형마트와 편의점, 카페, 음식점 등 제휴업체에서 바코드로 상품을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올해 들어 입소문을 타면서 이용자가 크게 늘어 현재 월간 이용자 수는 68만 명, 월 거래 금액은 400억 원에 이른다.

사태는 지난 11일 머지플러스가 제휴업체를 대폭 줄이고 음식점업 외에는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일파만파로 번졌다. 머지플러스는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서비스가 '선불전자지급 수단'으로 볼 수 있다는 관련 당국의 가이드를 수용해, 적법 형태인 음식점업으로 서비스를 당분간 축소한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온라인 포인트를 2개 이상 업종에 사용할 수 있으면 선불전자지급 사업에 해당한다. 머지머니 구입자들은 사용처가 줄며 돈을 날릴 위기에 놓이게 됐다.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결제플랫폼 회사 '머지포인트' 본사에 가입자들이 몰려들어 환불을 요구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결제플랫폼 회사 '머지포인트' 본사에 가입자들이 몰려들어 환불을 요구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누가 사태 촉발했나? 금감원 “머지플러스 지난달 문의”

머지플러스가 밝힌 '당국의 가이드'는 금융감독원의 답변이었다. 투자 확대를 위해 당국에 자신들의 서비스가 전자금융업(전금업)에 저촉되는지를 문의했는데, 금감원이 최근 "전금업 등록을 하지 않은 채 선불전자지급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의견을 전달해 이를 반영한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전금업 등록 대상인 업체가 미등록 영업을 지속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머지플러스가 처음부터 이런 법률적 결함을 알고도 모른 척 운영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머지플러스는 현재 홈페이지 공지 외에는 일체의 연락을 끊은 상태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지난달 머지플러스가 먼저 전금업 등록 여부를 문의해왔고, 검토 결과 등록 대상이라고 통보했다”며 “등록에 필요한 자료를 요구했는데 아직 제출하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어 "서비스 중단은 머지플러스의 자체 판단일 뿐, 당국은 일체 간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패닉 빠진 이용자들 '어떻게 돌려받나'

하지만 소비자 피해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이날 머지머니를 보유한 이용자들이 환불을 요구하며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사실상 머지플러스에는 일종의 '뱅크런(예금인출 러시)'이 일어났다. 소비자들은 티몬과 위메프 등 판매업체에도 환불을 요구했지만 “머지포인트로 등록한 뒤에는 사용한 것으로 간주돼 환불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에 머지플러스와 제휴를 통해 이득을 챙긴 e커머스 업체와 카드사, 결제사 등 제휴사에 대한 책임론도 고조되고 있다. 2년 넘게 머지포인트가 각종 금융사와 제휴를 맺고 번성하는 동안 부작용을 감지하지 못한 감독당국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현실은 머지포인트 사태를 예방할 주무부처조차 없는 실정이다. 사용자 예치금 보호 장치가 담긴 전금법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발의된 후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등록 업체가 2년 넘게 영업을 지속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규제 사각지대가 넓다는 방증"이라며 "정부는 포인트 같은 전자화폐를 쉽게 생각하지만, 뱅크런이 쉽기 때문에 이용자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지연 기자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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