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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의 고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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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당근, 소주, 안경 중에서 가장 오래된 말은 무엇일까? 우리말 연구가들에 따르면 ‘소주’의 나이가 가장 많다. 감자, 당근, 안경은 모두 조선 시대에 들어온 것이나 소주는 고려 후기에 원나라로부터 온 것이다. 가위, 간장, 우유 등은 기원전부터 있었고, 심지어 반지와 수저는 더 이른 고조선 시대에 연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개념이 생기거나 새 물건이 들어오면 새 말이 생긴다. 말의 역사를 시대별로 보면, 딸기, 사과나무, 사이다, 우산 등은 개화기 신문물과 함께 들어온 말이고, 고무신, 공중전화, 만화 등은 일제강점기에 온 말이다. 감자와 설렁탕은 조선 시대에, 국수, 김치, 두부, 만두, 수박은 고려 시대부터 있었다. 통일신라 시대 이전부터 간장, 막걸리, 우유 등을 먹었고, 기원전 2세기의 사람들은 수저를 언어로 남겼다.
삶의 흔적은 반드시 말로 남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말의 연원을 알지 못하면 말이 원래 표현해 낸 현상도 왜곡할 수 있다. 동화책에서 그림은 글보다 더 많은 정보를 살뜰하게 전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몰입할 그림 중에는 틀린 내용이 많다. 우선 정월 대보름 전날에 불을 붙이고 노는 ‘쥐불놀이’는 종종 빈 깡통의 사방에 구멍을 뚫어 만든 것으로 그려져 있다. 깡통이란 캔(can)으로 된 통이다. 양동이, 양말, 양옥, 양재기 등과 같이 서양에서 온 철, 즉 양철로 만든 통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쥐불놀이는 깡통이 나오기 전에는 없었던가?
심청이가 ‘공양미 삼백 석’ 앞에 선 그림에서는 가마니를 잔뜩 쌓아놓은 장면이 나온다. 석 또는 섬은 곡식의 부피를 세는 단위다. 곡식을 담기 위해 짚으로 엮어 만든 그릇을 섬이라 하며, 한 섬은 약 180리터로 혼자서 들고 옮기기에는 어려운 정도의 부피다. 가마니는 일본어 카마스(kamasu)에서 유래된 말로, 등에 지고 옮기기 좋은 형태의 가마니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식량 수탈이 있었던 일제강점기의 일이다. 가마니는 심청의 시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일본식 자루다.
고려 시대를 그린 동화 속 어느 집에 빨간 고추가 펼쳐져 있거나, 그 집 마당에 선 할아버지가 두루마기나 조끼를 입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고추는 조선 후기에 들어온 것이고, 두루마기는 개화기에, 조끼는 양복의 구성을 보고 개량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림도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니만큼 결국 생각의 범주 안에 있다. 그 생각의 고삐가 곧 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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