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기저귀 살 돈인데" 머지포인트 본사 찾은 피해자들 발 동동

입력
2021.08.13 16:25
수정
2021.08.13 18:35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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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 사용처 축소에 환불 요구 피해자 장사진?
회사 측, 직원 1명만 남겨둔 채 모두 자리 떠 분통
방역 우려 속 공기청정기·청소기 들고 떠나기도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머지플러스 본사에 환불을 요청하고 있는 피해자들이 몰렸다. 사진은 직원이 119구급대 도움으로 나가려 하자 피해자들이 막아서고 있는 모습. 원다라 기자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머지플러스 본사에 환불을 요청하고 있는 피해자들이 몰렸다. 사진은 직원이 119구급대 도움으로 나가려 하자 피해자들이 막아서고 있는 모습. 원다라 기자

13일 오전 10시, 40평 남짓한 서울 영등포구 머지플러스 본사 사무실에 고객 300여 명이 한꺼번에 뛰어들면서 일대 소란이 벌어졌다. 자신이 구매한 포인트를 현금으로 환불받으려고 줄을 서서 대기하던 이들 중 일부로, 담당 직원이 사라져 환불이 중단됐다는 현장 소문에 흥분해 난입한 것이었다.

이날 오전 머지플러스가 입주한 건물 5층의 계단부터 건물 밖 1㎞ 거리까지 환불 신청을 하려는 이들이 장사진을 쳤다. 이 회사가 이틀 전 공지를 통해 결제 플랫폼 '머지포인트'의 포인트 판매를 중단하고 대형마트·편의점·커피전문점 등 200개 브랜드가 넘던 포인트 사용처를 음식점으로 한정한 것이 사달의 시작이었다. 특히 신청자에겐 보유 포인트의 60%를 환불해주겠다던 회사가 전날 "환불 업무가 지연되고 있다"고 공지하자, 불안을 느낀 고객들이 전날 밤부터 대거 회사로 몰려들어 즉석에서 환불해달라고 요구했다.

하나씩 사라지는 직원에 열받은 고객들

밤샘 줄 서기에도 비교적 평온하게 유지되던 대기줄이 이날 오전 급격히 흐트러진 건 회사가 환불 업무를 흐지부지 끝내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당초 환불 업무는 직원 4명이 정해진 양식의 환불신청서를 제출받아 엑셀 프로그램에 내역을 입력한 뒤 고객 계좌로 입금하는 절차로 이뤄졌는데, 오전 9시쯤부터 담당 직원들이 "아침을 먹고 오겠다"면서 한 사람씩 사라졌다는 게 목격자들의 말이다.

결국 혼자 남은 직원은 "신청서를 놓고 가면 처리해주겠다"고 입장을 바꿨고, 실제 접수 처리됐는지 공개하라는 요구에 "(업무에 사용하던)노트북 중 한 대가 사라져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마지막 환불이 이뤄진 것이 오전 5시 접수분이란 사실이 확인되자 일부 대기자들이 사무실에 들이닥친 것이다.

박모(43)씨는 "오전 6시 신청서를 내고 입금 확인 후 가려고 했는데 오전 10시까지 입금되지 않았다"면서 "인질(직원) 1명만 남겨두고 회사 측은 다 도주한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 난입 소동이 벌어진 직후 남자 직원 1명만 남아 사무실을 점거한 고객들을 응대했다. 일부 고객들은 공기청정기, 청소기 등 사무실 내 비품을 들고 현장을 떠났다.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머지플러스 본사 앞에서 환불신청서를 내려는 피해자들이 줄지어 서 있다. 원다라 기자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머지플러스 본사 앞에서 환불신청서를 내려는 피해자들이 줄지어 서 있다. 원다라 기자


사무실에 수백 명 난입… 방역 우려

한때 현장엔 119구급대와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혼자 남은 직원이 고객 항의를 받다가 고열을 호소한 것이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코로나19 의심환자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 왔다"고 말했고, 사무실을 점거한 이들은 "실제 환불이 이뤄지는 것이 확인되고, 환불 결정 권한이 있는 직원이 오면 길을 터주겠다"고 막아섰다. 해당 직원은 결국 사무실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잖았다. 한 고객은 "코로나가 옮을까 봐 너무 걱정된다"며 "환불받을 수 있는 절차만 확보된다면 여기 더 있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환불 과정에서 또 다른 피해 우려도 제기됐다. 온라인에 개설된 '머지포인트 피해자 모임 카페'엔 환불 대리 신청을 요청하거나 제안하는 글이 다수 게시됐는데, 자칫 남의 돈이나 개인정보를 가로채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박모(47)씨는 “본사를 찾아가 계정, 이름, 계좌번호, 전화번호를 써서 냈더니 환불을 해줬고, 본인 확인이나 잔액 확인은 없었다”고 말했다. 지방에 거주하는 이모(41)씨는 "신청서를 대필해주겠다는 글을 보고 개인정보를 보냈는데 돌연 해당 글이 사라졌다"면서 "몇 시간 후 연락이 왔지만 실제 접수 여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라고 불안해했다.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머지플러스 본사에서 피해자들이 환불신청서를 적어 쌓아두고 있다. 원다라 기자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머지플러스 본사에서 피해자들이 환불신청서를 적어 쌓아두고 있다. 원다라 기자


"아이 기저귀 사려 했을 뿐인데…"

머지포인트는 제휴 가맹점에서 포인트로 결제하면 20% 할인 혜택을 무제한 제공한다면서 많은 고객을 유치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이들 다수는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아껴보려고 서비스를 이용했다"고 말했다.

오전 6시부터 사무실을 찾았다는 30대 남성은 "아기 기저귀를 사려고 포인트를 구매했던 건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면서 혀를 찼다. 초등학생 자녀를 등교시키고 왔다는 여성은 현장에 구비된 환불신청서 양식이 떨어지자 아이 알림장에서 뜯은 종이에 직접 그려 만든 신청서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는 "생필품을 구입하려 85만 원 정도를 넣어뒀다"면서 "(실구매액 기준으로) 48%만 환불된다지만 그나마 건지러 온 것"이라고 말했다. 포인트 220만 원어치를 구매했다는 50대 여성은 "한 푼이라도 아껴보려다가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피해도 예상된다. 회사가 포인트 사용처 축소를 공지한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런 공지를 모른 채 계속 포인트를 받는 업체에 대한 정보가 공유됐다. 한 자영업자는 "튀기지도 않은 돈가스를 30만 원어치 구입하고 머지포인트로 결제한 사람이 있었다"면서 "상황이 이런 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원다라 기자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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