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만 아는 사람, 정답밖에 모르는 사람

입력
2021.08.15 22:00
23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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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돌 던졌잖아.”

대학원 입학시험 때 면접관 교수가 불쑥 그런 말을 던졌다. 이른바 운동권 아니었느냐는 얘기다. 학부에서 데모질이나 하던 놈이 어찌 감히 대학원을 노리느냐는 뜻이었으리라. 나를 바라보는 교수의 표정은, 딱 “한심한 놈”이었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놈이 독재타도니 호헌철폐니, 남 걱정이나 하고 있으니 딱도 했을 법하다.

그런 표정을 다시 만난 것은 대학원에 들어가서였다. 대학원 사회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80년대 중후반의 학부 세계가 시끌벅적한 공사판이라면, 대학원은 뭔가 거창한 미래를 꾸미는 어느 회사 중역실이었다. 시위 현장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선배들, 사회의 아픔을 애써 외면해온 대학원생들이, 다 안다는 듯, 다 이해한다는 듯, 초연한 표정으로 연구실 창 밖 후배들의 시위 현장을 내다보았다.

스물여섯 나이에 늦깎이 대학생이 되기 전, 정규교육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해결한 탓이다. 이른바 독학을 했다는 얘기인데 알다시피 독학이란 타인의 도움 없이 혼자 공부한다는 뜻이다. “독학으로 고시 합격,” “독학으로 자수성가,” 독학을 거론할 때마다 흔히 나오는 얘기들이나 실제로 독학은 성공, 합격보다 실패, 오답, 낙오와 더 관계가 깊다. 이끌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떤 것이 맞는 답인지 알 도리가 없고, 이 때문에 여기저기 오답의 숲을 헤매고 다녀야 한다. 스무 살 즈음, 인쇄소에 다니며 하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적이 있다. 야근, 철야 작업이 많은 탓에 학원 갈 능력도 공부할 시간도 부족했지만, 1년 후쯤 혼자 모의고사를 치렀을 때 평균점수는 사지선다형 확률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난 그 길로 시험 준비를 그만두었다.

엘리트란 그 정반대의 개념일 것이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출세와 치부라는 일생일대의 목표를 향해, 부모와 스승이 제공하는 정답을 받아먹으며 좌고우면하지 않고 달려온 사람들. 세상을 몸이 아니라 머리로만 배우고 익힌 사람들… 그들에게 민주화운동 따위는 인생의 걸림돌이자 오답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답이 없으면 정답도 없다. 오답을 모르면 정답도 정답이 될 수 없다. 내가 보기에 엘리트의 한계는 성공이라는 이름의 정답밖에 모른다는 데 있다.

지난번 국정농단 사태에서도 그랬지만, 요즘 대선 국면에서 또다시 엘리트들의 민낯을 보고 만다. 명문가문, 일류대학 출신이라는 인재들의 언행에는 양심이나 염치는커녕 기본적인 합리성도 상황판단 능력도 없어 보인다. 제 능력(?)을 최대한 가동하여 남들보다 높은 성취를 이루었으니 자신감이야 하늘을 찌르겠지만, 그 자신감, 확신에 비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도덕성, 상황판단, 현실인식은 그야말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소외, 가난, 폭력, 차별 같은 오답을 본 적도 없고 겪은 적도 없으니 왜 아니겠는가. 저들에게 대통령은 성공을 향한 또 하나의 정답일 뿐이다.

경쟁이 곧 공정인 사회에서 내가 잘나서, 내가 노력해서 성공하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느냐만은 다만 대통령이나 고위관료가 되려는 사람은 달랐으면 좋겠다. 그 자리는 내가 이만큼 잘났다고, 내가 이만큼 부자라고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못 갖춘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 경쟁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사람들… 요컨대 오답만 잔뜩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까지 챙겨야 하는 자리가 아닌가.




조영학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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