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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법을 창조해내는 정치인들의 놀라운 능력

입력
2021.08.15 10:00
21면
척 슈머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10일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예산결의안 통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척 슈머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10일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예산결의안 통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주 화요일 미국에서는 2개의 중요한 법안이 연방상원을 통과했다. 먼저, 바이든 대통령이 요구한 인프라 확충 법안이 1,150조 원 규모로 통과해서 하원으로 송부되었다. 공화당 의원들 다수의 지지를 받는 모양새를 갖추면서 바이든 정부의 큰 성과로 기록될 전망이다. 하지만 공화당과의 협상과정에서 법안 규모가 대폭 축소되고 몇몇 정책은 아예 빠져 민주당내 진보파의 불만이 컸다. 그래서 인프라 확충 법안에서 빠진 것들과 바이든의 다른 사회정책을 합친 4,025조 원의 ‘예산결의안(budget resolution)’도 같은 날 상원에서 통과했다.

‘예산결의안’은 추후 ‘예산조정안(reconciliation)’에 포함될 내용을 정하면서 각 상임위원회가 법안 형태로 입안할 것을 지시하는 결의안이다. 그런데 ‘예산결의안’과 ‘예산조정안’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예산안이 아니다. 예산이 필요한 정책을 상원의 필리버스터를 우회해서 통과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편법'이다.

미국 정부의 정규 예산안은 13개 상임위원회별로 나뉘어서 2단계로 처리된다. 정책별 승인(authorization) 과정을 먼저 거친 후 별도의 예산배정(세출, appropriation) 과정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이 두 과정 모두 법안 통과의 형태를 띄어야 하기 때문에 정당, 상임위, 그리고 개별 의원들 사이의 협상과 조율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최종 통과된 세출법안(appropriations bill)은 규모도 애초보다 커지게 되고 마감시한도 못 지키게 된다. 임시예산안(continuing resolution)과 추가경정예산안(supplemental appropriations bill)이 빈번히 사용되는 이유이다. 또, 연방정부의 역할이 급격히 커진 1960년대 이후에는 재정적자도 더불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특히 재정적자는 유권자들에게 인기가 없어서 이를 줄이기 위한 방안도 생겨났다. 1974년 예산법을 제정했는데, 1차 예산결의안에서 정부 전체의 세입과 세출 규모를 정하면, 이를 바탕으로 각 상임위원회가 정책별 승인과정과 예산배정과정을 진행하게 했다. 그리고 2차 예산결의안을 통해 세출법안의 삭감 규모를 정한 후, 예산조정안으로 최종 세출을 확정하도록 했다.

물론 예산을 삭감하는 '조정' 과정이 쉽지 않았는데, 1980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재정적자를 줄이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 1, 2차로 나뉘어진 예산결의안을 하나로 합친 후 전체 세출법안을 예산조정안의 형태로 통과시켰다. 이후, ‘예산조정안’이 더 이상 “조정”된 예산안이 아니게 되었고, 개별 정책의 승인, 예산배정, 그리고 예산조정까지 모두를 원샷으로 처리하는 법안이 되었다.

그 후 한동안은 연방예산이 보통 때 세출법안 형태로, 재정적자 감소가 특히 필요한 경우에(총 27번) 예산조정안이 추가되는 형식으로 통과되었다. 하지만 공화당이 1999년 세금감면을 하기 위해 예산조정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그 성격이 탈바꿈했다. 민주당이 결사반대하던 상황에서 예산결의안과 예산조정안은 필리버스터를 할 수 없도록 한 의사규칙을 이용한 것이다. 2017년까지 총 6번의 세금감면법안이 모두 예산조정안 형태로 통과했다.

민주당도 상원 다수당이 되었을 때 다르지 않았다. 2010년 오바마 케어 법안을, 또 올해 초 코로나19 대처 법안을 이 방식으로 통과시켰다. 지난주 통과된 예산결의안도 같은 맥락이다.

필리버스터가 정치 양극화의 무기가 되더니, 이 무기를 피해가려고 이제는 재정적자의 감소를 목적으로 고안된 ‘예산조정안’ 제도까지도 악용되는 양상이다. 정치인들은 어디나 참 창조적이다.

박홍민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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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민미국 위스콘신주립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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