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돈 안 된 집엔 언제나 낚싯대가 있다?

입력
2021.08.13 22:00
23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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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바쁜 일상을 보낸 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충전하는 주말을 꿈꿔본 적이 있는가? 하지만 휴식을 취하겠다는 부푼 기대감이 무색하게도 물건들이 널브러져있는 거실, 설거지가 쌓여있는 싱크대를 보면 당장 집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휴식은커녕 앉아있을 자리조차 없으니 말이다! 가장 급한 집안일부터 마무리하고 나면 어느새 저녁시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오늘 하루를 서둘러 마무리한다. 결국 꿈꾸었던 휴식 대신 밀린 집안일을 하며 주말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맞벌이 가정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생활 패턴일 듯하다.

10여 년의 정리전문가로 활동하는 동안 맞벌이 부부 고객의 의뢰 빈도가 특히 증가하였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에서조차 일을 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점점 늘어나는 물건 탓에 정리는 더욱 힘들어지는 것 같다. 편히 쉴 수 있는 집을 꿈꾸며 귀가하지만,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쉽게 극복할 수 없는 듯하다.

오래전 남편 몰래 휴가를 내고 정리 의뢰를 한 고객님이 계셨다. 대략 어느 정도인지 사진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는데, 방문을 살짝 열고 찍어주신 게 아닌가! "고객님~ 방에 있는 물건과 구조를 알 수 있게 문을 활짝 열고 찍어주시겠어요?" 이런 요청이 부끄러우셨는지, 한참을 망설이시다 "방문이 안 열려요…"라고 고백하셨다. 대략 집안이 어떤지 짐작을 하고 평수에 비해 많은 인원을 투입했다. 남편분이 6시 5분에 도착하시니 그 전에 꼭 마무리를 해달라고 하시며 안절부절못하시는 모습에 우리도 덩달아 조급해져 부지런히 정리했다.

예상대로 물건의 양은 엄청 났는데, 소파가 앉는 기능을 상실해버릴 정도였다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지 않는가? 베란다 정리를 하던 남자 선생님이 한쪽 구석에 놓여있던 고가의 낚싯대와 낚시찌를 보며 부러움이 섞인 감탄을 뱉었다. 그 말을 들은 고객님은 깜짝 놀라셨다. 남편분이 취미활동을 위해 저렴하게 구입했다고 하신 모양이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우리는 모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크게 당황했고, 상황 판단을 했을 때는 이미 늦은 듯했다. 고객님의 얼굴은 굳어갔고 남편이 올까 불안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남편이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계셨다.

정리가 마무리될 때쯤 남편분이 도착했고, 낯선 사람들을 보며 당황해하셨다. 상의 없이 진행된 일이라 화가 나셨는지 밖으로 나가버리셨다. 부부싸움이라도 하실까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데, 웬걸! 정리가 된 집이 너무 좋은데 아내 앞에서 표현하기는 부끄러우시다며 우리가 나올 때까지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6년이 지난 지금도 그 고객님과 SNS로 소통하고 있는데, 정리를 하고 나서 가족 간의 대화가 많아지며 사이도 좋아지고, 무엇보다 충동구매가 줄었다는 말씀에 한 가정을 살린 듯 뿌듯함을 느꼈다.

집이라는 공간은 나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며,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어야 한다. 물건으로 가득 쌓여있는 집 대신 자연을 벗삼아 시간을 보내는 남편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정리가 안 된 집에 낚싯대가 있는 것 같다. 밖으로 나가는 취미보다는 집에서 물건을 정리하며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떤가?



김현주 정리컨설턴트·하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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