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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한 번, 명함 한 장 못 가져본 제가 부끄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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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 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저는 4세, 6세 두 아이를 키우는 30대 전업주부입니다. 20대 때 오랜 시간 준비하던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 바로 결혼을 했는데, 이러다 영영 사회생활을 하지 못할까 봐 불안함과 두려움이 큽니다.
아이 엄마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유독 제가 사회로 나가려 애쓰고 초조해한다는 것을 느껴요. 그들은 이미 사회의 쓴맛을 경험하고 경제적 독립도 해 봐서 그런지 큰 미련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한 것을 제외하고는 명함 한 장 없이, 직업 한 번 없이 결혼해 사회생활에 대한 갈망과 동경이 있습니다. 이런 스스로가 가끔 부끄럽고 수치스럽기까지 해요.
저는 과거 6년간 의학전문대학원을 준비했어요. 아무 성과 없이 이 시간을 날려버린 데 대해 후회가 큽니다. 특별한 동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사회적 지위가 좋아 보여 의사에 대한 꿈을 키웠습니다. 대학은 자연계열이었지만 문과 성향이라 공부를 따라가는 게 버거웠어요. 실력은 늘 같은 자리였습니다. 부족한 재능은 노력으로 채우면 되는데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 부족한 자신감으로 실력을 키우기는커녕 더욱 악순환의 늪에 빠지게 했습니다. 저를 믿어 줬던 가족들에게, 당시의 남자친구인 제 남편에게 늘 미안한 마음입니다.
의전원 공부를 하던 시절은 꼭 고2, 3 때 데자뷔 같았어요. 저는 학교에서 주목받는 모범생이었습니다. 임원도 하고 성적도 우수해서 부모님과 선생님, 친구들에게 인정받으며 보냈습니다.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성적이 잘 나왔어요. 그런데 대학 진학에 중요한 시기인 고2 때부터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만만했던 학교생활은 이때부터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추락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아 창피하고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리더십 전형을 바라고 있었는데 성적이 떨어지면서 지원조차 할 수 없게 됐고 결국 원하지 않는 대학에 가게 됐습니다. 어느 날 자다 문득 그 시절을 생각하면 농도만 조금 옅어졌을 뿐 씁쓸하고 아픈 기억은 여전해요.
저도 저지만 어머니가 통탄해 하셨어요. 어머니는 본인의 유년 시절이 매우 가난해 삶에 제한이 많았고, 그래서 제 공부에 관해서는 적극적으로 뒷바라지를 해주셨습니다. 기대도 크셨고요. 어머니는 "네가 그 대학에 가서 많이 울었고 너한테 드는 돈도 많이 아까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다 작년부터는 특정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나이 들어서 내가 갈 곳, 나를 받아줄 수 있을 만한 곳이 공무원이더라고요. 시험 과목이 일반직보다 적어서 아이를 키우며 준비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시험을 준비하면서 예전의 실패가 계속 제 마음을 어지럽힙니다. 또다시 실패로 남을까 도전이 꺼려지고 두려워요.
6년간 익숙해진 패배 의식에, 낮아진 자존감에, 속이 곪아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취미도 없고 아직도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게으른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어서 완벽한 것을 원하지만 그리 할 수 없으면서 욕심만 부리다 혼자 나가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걸까요. 어떤 마음으로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유지연(가명·38·주부)
지연씨, 많은 분들이 지연씨 사연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비추어 읽을 것 같아요. 누군가는 대학 입시의 관점에서, 또 어떤 사람은 취업 문제나 육아의 어려움 측면에서, 누군가는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 측면에서 지연씨 이야기에 공감할 것 같아요. 저는 지연씨 사연을 들으면서 '열심히, 잘 산다'의 의미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 싶었어요.
지연씨가 생각하는 '열심히, 잘 산다'는 결과가 좋은 것을 의미해요. 지연씨는 상당히 결과중심적, 성취지향적인 사람으로 보입니다. 지연씨의 '잘'은 지나치게 결과에만 초점이 맞춰진 경향이 있어요. 중간 과정과 노력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런데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는 지연씨는 본인의 그 중간 과정과 노력도 지연씨 기준에 차지 않습니다. 비장한 마음을 먹고, 쓰러질 만큼, 코피를 쏟을 정도로, 엄청 열심히 한 것 같지도 않은 거예요. 과정도 결과도 다 마음에 안 들고 걸리는 거죠.
만일 고등학생이 학교를 빠지지 않고 잘 나가고, 수업도 열심히 듣고, 친구들하고도 잘 지내고, 학교 규칙도 잘 지키고, 급식도 잘 먹습니다. 그런데 공부는 상위권이 아니에요. 그럼 이 학생은 학교생활을 '잘'하지 못하는 걸까요. 지연씨는 이걸 잘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성적이 떨어져도 시험 때는 끝까지 앉아 있고, 어려운 문제도 끝까지 풀어보려고 했고, 그러면 잘했고 열심히 하고 있는 게 맞거든요. 그런데 지연씨는 시험 결과가 나쁜 것 자체에 상처를 받는 사람이에요. 성공적인 결과가 아닌 것은 자기가 열심히 살지 못한 거고, 자기가 무능한 거고, 이런 자신이 부끄럽고, 죄책감까지 생깁니다.
지연씨 어머니는 딸이 행복하기를 원하셨어요. 지연씨를 잘 키우고 싶어했고 그래서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그런 사랑과 기대를 받은 만큼 지연씨는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성적이 떨어지는 경험을 하는 사람은 굉장히 많습니다. 단 하루 시험으로 결정되는 수능을 망친 사람도 많고요. 당연히 당사자나 그걸 지켜보는 부모는 너무 속상할 거예요. 그래도 어떤 부모는 이렇게 말합니다. '요즘은 대학이 다가 아니니 네가 좋아하는 과로 가서 많이 배워라' 또는 '그래도 그 과정에서 네가 실력이 좀 늘었잖아' 혹은 '네가 임원 일을 할 때 보면 리더십이 있더라.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 꼭 좋은 대학을 나와야만 하는 거는 아니더라'라면서요.
그런데 지연씨 어머니는 이런 말 대신 딸에게 '너무 아깝다'고 그럽니다. 뭐가 아까울까요. 남들 눈에 좋아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남들의 기준입니다. 지연씨도 이런 영향으로 자기 자신의 적성이나 성향을 고려한 기준이 아니라,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기준으로 삼아요.
지연씨는 특히 '거짓 자기(False self)'와 '참 자기(True self)'의 간극이 큽니다. 인간의 삶에서 '참 자기'와 '거짓 자기'의 간극이 없는 사람은 아마 찾기 어려울 거예요. 거짓 자기란 스트레스나 좌절에 대한 방어 기전이자 다른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모습이면서 타인의 기대에 따르는 행동의 가면입니다. 지연씨는 거짓 자기가 너무 비대해져 있고 여기에 맞춰야만 성공한 삶이라는 기준이 강해요. 지연씨가 살면서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았던 상황은 대체로 임원을 하고, 공부도 잘하고, 밝고 명랑해 친구도 많은 모습들이었어요. 그러나 그렇지 않은 모습도 괜찮고 좋은 거거든요. 지연씨는 언제나 이런 '라벨'이 달린 모습으로 있을 때만 사람들이 좋아해 주거나, 인정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게 강해요. 그러니까 그렇지 않은 진짜 자기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 주거나 라벨 없는 모습으로 인식되는 게 상당히 불편하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거예요. 모든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다들 사회적 시선을 고려해서 진로를 정하지 않나요? 맞습니다. 그런데 지연씨 사례와는 조금 차이가 있어요. 예를 들어 공부를 굉장히 잘하는 학생이 있어요. 그래서 주변에서 학생에게 '이렇게 공부 잘하니 의대를 가라'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 학생이 공부는 잘하는데 수학과 과학은 영어나 사회에 비해서 잘 못하고, 피를 무서워해요. 그러면 아이들은 스스로 다른 진로를 찾아보는 방식으로 이 계획을 수정해 나갑니다. 지연씨는 이 과정을 제대로 겪지 못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이해해 나가면서, 허구의 자기와 진정한 자기의 갭이 커졌을 때 이를 줄여나갑니다. 하지만 지연씨는 그걸 줄여나가기보다는 실망을 하면(갭이 커지면), 더 높은 기준을 설정해 버려요. 그런데 그 목표는 자기 자신의 적성과 성향을 고려하지 않은 다른 사람의 기준이기 때문에 그것을 꾸준하게 해 나가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니 삶에 대한 만족감이 떨어지는 겁니다. 지연씨가 무능해서가 아니에요. 그리고 지연씨는 이 갭이 벌어질수록 불안해하다, 아예 놓아 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지연씨의 고민은 보통 전업 주부들이 미래를 위해서 혹은 경제적으로 생활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뭐라도 좀 해야 되지 않을까요' '뭐라도 직업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고민과는 좀 결이 다른 거예요. 지연씨는 그 일이 의사나 공무원처럼 사회적으로 누가 봐도 인정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지연씨가 허세나 과시, 겉치레가 심한 사람은 아니에요. 그저 지연씨는 내면에 이제까지 경험했던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들로 인한 구멍들이 있고, 그 내면이 자기만의 기준으로 채워져 있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
지연씨는 지금 '직업'을 선택할 게 아니라 자기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이 직업은 싫어' '이 직업은 좋아'가 아니라, 자기의 기준이 뭔지부터 생각해 봐야 해요. 엄마 눈에 자랑스러운 딸,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인정하는 자신을 기준으로 목표를 설정하는 게 아니라요. 직업을 고민하는 건 '나는 일이 좀 고되도 상관없는데, 돈을 적게 받으면 싫다' '나는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명예가 없거나 가치 없는 일은 못 한다' '나는 먹고 싶은 거 먹고, 사고 싶은 거 살 정도의 수입만 있는 일이면 된다' 이런 솔직한 내면의 기준이 정해진 다음의 일입니다.
'나'를 구성하는 요소는 큰 포도송이의 포도알처럼 굉장히 다양한 각각의 부분들이고 '나'는 이 부분들의 합인 큰 포도송이이지요. 자기에 대한 탐구를 더 해보세요.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것을 싫어하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자기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인생에서 진짜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목표를 자꾸 정할 거예요. 성취와 결과만을 좇는 삶은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고등학교 때 성적이 떨어진 것과, 엄마가 아깝다고 표현하는 대학을 간 게 지연씨의 인생에서 결코 실패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지연씨는 지금도 충분히 인생을 '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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