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 반문 프레임에 갇힌 차기 대선 판국
이래서는 누가 되든 새 정치 기대 어려워
위기 상황 헤쳐나갈 시대적 어젠다 경쟁을
대단한 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다. 최근 코로나 피로와 백신 수급 문제로 다소 하락세여도 굳건하게 40% 이상이다. 전임들이라면 하나같이 숨이 턱에 찰 정도의 지지율로 탈당과 제명 요구, 심지어 탄핵으로 전전긍긍할 말년인데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초유의 현상을 두고 분석들이 다양하다. 지지자들의 결집, 세계적 재난 상황 속의 상대적 선방, 인척·측근 비리 별무… 못마땅한 이들이야 반박거리가 넘치겠지만 절반 가까운 국민이 지지를 거두지 않고 있는 건 현실이다. 이대로라면 야당의 가장 믿을 만한 무기인 정권심판론도 추동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레임덕 없는 대통령은 좋은 일이나 여야 모두 문재인에 기대는 상황이 됐다는 점에서 문제는 간단치 않다. 대선판 전체가 친문·반문 대결로 단순화한 점에서 그렇다. 미래를 여는 대선판이 곧 수명을 다할 체제에 대한 찬반으로 소모되고 있다는 건 비극이다.
여당 후보들은 문 대통령에 대해 털끝 하나 못 건드리는 상황에서 적통, 계승을 놓고 다툰다. 이건 잘못됐으니 개선하겠다는 말조차 존엄의 훼손이다. 여기에 다만 돈을 더 얼마나 풀겠다는 정도로 경쟁 중이다. 거슬러 가면 십 년도 훨씬 더 지난 노무현 다툼이다. 탄핵 가담 논쟁이 보여주듯 여전히 친노의 골품 다툼이다. 낡아버린 박정희 모델에 집착하던 이전 두 보수정권의 시대착오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이러면 누가 대권을 쥔들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이야 각자 내심 당선 후의 다른 구상을 할지 모르겠으나 쉽지 않을 것이다. 정권 초부터 지지자들에게 난타당해 국정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 노의 유지와 문의 뜻이 향후 5년을 또 관통할 것이라는 가정은 실로 끔찍하다.
더 딱한 건 오로지 반문 기치만으로 대선에 뛰어든 야당의 유력주자들이다. 문 정권이 무너뜨린 공정 정의를 세우겠다는 추상적 언명 외에 여태껏 도무지 잡히는 국정 비전이 없다. 그러다보니 반문의 대척점에 선 영남 지역주의나 철 지난 강경보수에 손 내미는 행보뿐이다. 논란 많은 이승만이 헌법가치를 가장 잘 지킨 대통령이라니.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그나마 가깝게 설명해주는 게 대안인물 부재론이다. 누군가 나라를 맡길 만한 인물을 상정하면 현 상황은 더 지겹고 마땅치 않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의 지지율을 받치고 있는 건 야당 주자들이다. 야심 차게 정치에 뛰어들 때엔 뭔가 다른 것을 기대했다. 안정적 보수의 힘과 상식 포용, 그리고 새 시대를 만들 국정 비전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저 분한 심정만으로 나섰음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이것 외에 가진 밑천이 별로 없다면 집권해도 다시 분열과 적대, 편 가르기 따위의 정치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다. 동전의 앞뒷면일 뿐 이 역시 또 다른 문재인 2기 정권이다.
다들 후반이 불행했어도 YS는 정치군인 척결과 금융실명제, DJ는 생산적 복지와 IT산업 시동, 노무현은 진보가치의 첫 실험 등 나름대로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오랜 경험과 깊은 시대적 성찰을 통해 자신만의 국정철학을 고심하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들이다.
안된 말이지만 지지율에 상관없이 문 대통령에게선 계승할 만한 가치나 업적이 별로 꼽히지 않는다. 차기정권이 달라야 할 이유는 그래서 차고 넘친다. 그러니 다들 문에게서 벗어나 희망적인 시대의 어젠다를 보여주기 바란다. 경제, 안보, 환경 등 한 치 앞도 가늠키 힘든 이 급변의 세계에서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이들이 퇴행적인 문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둬 뭐하자는 것인가. 잘했든 못했든 문 시대는 이제 곧 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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