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공깃밥 재활용·탕수육엔 꽁초... "장사 안 되니" 위생 손놓은 식당들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 최근 한식집을 찾은 A씨는 공깃밥 뚜껑을 열었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밥 틈에 누군가가 씹다가 뱉은 불고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손님이 먹다 남긴 밥을 '재활용'한 걸로 짐작되는 상황이었다. A씨는 즉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이를 신고했고, 식약처는 현장 점검을 거쳐 해당 식당에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 B씨는 평소 종종 갔던 중식당에서 탕수육을 먹다가 담배꽁초를 발견했다. 아연실색한 가운데 그 식당 주방에서 조리사가 흡연하는 모습을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식약처는 B씨의 신고와 목격담을 접수한 뒤 식당 내 위생 기준 위반 행위를 적발해 과태료를 물렸다.
# 지난달 기사식당에서 순두부찌개를 주문한 C씨는 우연히 식당 주인이 냉장고에서 꺼낸 순두부 포장지에 유통기한이 적힌 걸 봤다. 기한이 이미 한 달이나 지나 있었다. 단골 가게라 장사가 전혀 안 되는 사정은 알았지만, 차마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코로나 시대, 음식점 위생 상태에 경보가 울리고 있다. 오물이 들어간 요리를 만들고, 먹던 음식을 다시 내놓고,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재료를 쓰는 일이 빈발하면서 소비자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집합금지·영업제한에 따른 매출 저하, 비대면 주문 배달 수요 증가, 느슨해진 당국 단속이 겹친 결과로 풀이된다. 맨발을 담근 대야에 무를 씻은 '방배동 족발집', 깍두기 반찬을 재사용한 '부산 돼지국밥집', 수백 명을 식중독으로 내몬 '성남 김밥전문점'과 '부산 밀면집' 같은 충격적 사례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한국일보가 12일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식약처의 외식업소 단속 자료는 심각한 비위생 조리 실태의 일단을 보여준다. 해당 자료엔 식약처가 올해 부정·불량식품 신고센터를 통해 접수한 음식점 관련 신고 534건 가운데 현장 점검을 통해 위생 기준 위반을 확인한 44건의 사례가 담겼다.
우선 '공깃밥 재활용'처럼 기본적 위생 수칙을 간과하다가 식약처 제재를 받은 음식점이 수두룩했다. 한 업소는 남은 음식을 랩으로 싸서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그대로 꺼내서 다른 손님에게 내놨다. 다른 업소는 위생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으로 김밥을 싸서 제공했다.
'담배꽁초 탕수육'처럼 음식에 이물질이 든 사례도 여럿이었다. 국물에 머리카락이 떠있는 건 예사였고, 어떤 가게는 곰팡이가 핀 면으로 냉면을 만들어 팔았다. 한 신고자는 감자탕을 먹다가 먼지와 머리카락, 수세미 조각이 한데 엉킨 정체불명의 오물을 발견하기도 했다.
신고자들은 위생 불량을 신고하면서 복통, 설사, 메스꺼움 등 신체 이상을 호소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배우자와 함께 돼지고기를 먹었다가 새벽 내내 구토를 했다거나, 상한 음식을 먹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다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지방자치단체 단속에선 유통기한이 경과한 재료를 쓴 음식점이 대거 적발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매출이 급감하자 재료값을 아끼려는 심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도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은 지난 5월 면적 150㎡ 이상 음식점 360곳을 단속해 89곳의 위법 행위를 적발했는데, 여기엔 △유통기한이 4개월 지난 돈가스 소스 △유통기한이 2년 4개월 지난 통후추 등을 사용한 업소가 포함됐다. 한 프랜차이즈 돈가스 전문점은 유통기한을 넘긴 등심으로 돈가스를 만들어 팔다가 적발됐는데, 팔다 남은 등심육만 150인분(23㎏)에 달했다. 부산 특사경 역시 이달 2일 유통기한이 한 달 넘게 지난 수입 갈빗살을 보관하고 있던 식육식당을 적발했다.
유통기한을 어기는 음식점이 많아지는 현실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식약처가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식품 유통기한 경과·변조'로 신고된 건수는 1,938건으로, 코로나19 유행 이전인 재작년(1,845건)보다 5%가량 늘었다. 최근 5년간(2016~2020년) 신고 건수가 가장 적었던 2017년(1,556건)과 비교하면 25%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위생 불량 음식점이 속출하는 이유로는 코로나19로 인한 외식업계 침체가 먼저 꼽힌다. 방역 규제에 따른 손님 감소로 매출이 떨어지면서 음식의 질과 청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외식업소 위생 점검의 1차 책임을 진 기초자치단체들이 방역에 매진하느라 음식점을 상시 단속하기 힘든 점도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서울에서 25년째 생선요리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정모(59)씨는 "식탁에 내놓지 못해 무더기로 버려야 할 생선을 보고 있자면 '이걸 그냥 팔까'라는 나쁜 생각이 스칠 때도 있다"면서 "위생 상태 때문에 비난받는 식당들을 보면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고 토로했다.
그렇더라도 건강과 직결되는 식품 안전을 후순위로 미룰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형주 장안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음식점들이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다 보니 기본적인 위생 관리에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당국이 식품 안전만큼은 원칙에 따라 철저히 조사하고, 외식업 종사자들도 스스로 위생 지침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