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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이 오늘 대한민국에 살았다면

입력
2021.08.16 00:00
수정
2021.08.17 11:16
22면

편집자주

21세기 당파싸움에 휘말린 작금의 대한민국을 200년 전의 큰어른, 다산의 눈으로 새로이 조명하여 해법을 제시한다.


21세기는 AI와 데이터 대항해의 시대
과거에만 매달리는 나라는 희망 없어
혁신가 다산의 눈으로 현실 직시해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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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세종대왕은 부왕이 휘두른 피의 후광으로 튼튼한 왕조의 기반 위에 선정을 펼 수 있었고 집현전을 두어 젊은이들로 하여금 창의력을 발휘하게 했다. 그리고 장영실이라는 '조선의 다빈치'를 배출했다. 반면,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정치세력, 노론 벽파의 견제로 살얼음을 걷는 심정에 내몰렸다. 그래서 참신한 정치를 위해 규장각을 설치하고 서학에 밝은 정약용을 발탁하게 된다. 하지만 벽파가 주도했을 가능성이 있는 정조의 갑작스런 서거로 '제2의 다빈치', 다산은 강진으로 유배당했고 18년간 자유롭지 못한 몸으로 509권의 책을 통해 사회 혁신의 메시지를 남겼다.

조선의 두 다빈치, 장영실과 정약용은 탕평을 외치는 국가 지도자의 배려로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었고 그것은 혁신의 씨앗이 되었다. 그러나 세종과 정조에 의해 시도된 인재발굴 작업은 그들이 사망하자 흔적도 없이 소멸되면서 기득권 세력에 의해 다시 원위치로 회귀해버렸다. 그리고 백성이 아니라 당파가 우선인 망국의 세도정치는 일본강점기로 이어진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는 국민의 창의적 도전을 격려하는 제도를 부국의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행복을 결정하는 힘은 다름 아닌 제도에 있다는 것이다. 지난 50년간 우리는 원료를 제품으로 만드는 '하드파워'의 힘으로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 그러나 세계는 상상을 혁신으로 만드는 '소프트파워 시대'를 열고 있다. 세계 상위 20개 기업 중 존슨앤드존슨 하나를 제외하고 19개는 상상을 혁신으로 만드는 소프트파워 기업이다. 덴마크 정부는 실리콘밸리의 글로벌 기업들에 디지털 대사를 파견할 정도로 자국 산업과의 연계를 도모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스라엘은 워싱턴 대사관보다 세계혁신경제의 수도, 샌프란시스코 영사관에 더 많은 인력을 지원하고 있다. 서부개척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디지털 영토를 개척하는 말들이 더 빨리 달리게 해야 하는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지금은 ‘데이터 대항해시대’다. 데이터의 바다를 건너는 AI라는 배는 근육의 힘이 아니라 두뇌의 힘으로 움직인다. 빛의 속도로 견주는 글로벌 경쟁에서 정치 리스크로 고삐를 늦추는 순간 역동성은 현저히 떨어지게 마련이다. 앞을 보고 달리기에도 벅찬데, 뒤를 돌아보며 달리는 나라에서 빛의 속도를 따라가야 하는 처연한 경제다. 코로나19의 창궐로 디지털 경제라는 새로운 질서가 열리는 순간에 이스라엘은 ‘수석과학관실’을 ‘혁신경제실’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태국에서는 ‘정보통신부’를 ‘디지털경제부’로 전환한 지 오래다.

우리는 지난 60년간 각고의 노력으로 장영실을 통해 세종이 꿈꾸던 기술 본위의 세상을 완성해 가고 있다. 이제는 '2서1표'(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를 통해 창의적 도전을 격려하는 포용적 제도를 제시했던 정약용의 꿈을 생각해보자. 편 가르기의 처절한 희생자였던 다산의 눈으로 이 절박한 시기에 상상을 혁신으로 바꾸는 21세기 실학정신을 되살려 보자. 21세기 경제 기적을 일군 이스라엘, 경상도 면적의 국토에서 세계 2위의 농업수출 국가를 만든 네덜란드, 단위 인구당 세계 최고의 창업밀도를 자랑하는 에스토니아, 580만의 인구로 아시아 최고의 대학을 배출한 싱가포르의 국가경영을 보라. 아프다고 누워 있던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벌떡 일어나 절박한 심정으로 겁 없이 방아쇠를 당기게 하는 새로운 길이 보일 것이다.

다산의 실학정신을 오늘의 대한민국에 되살린다면 부러움을 뛰어넘어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지긋지긋한 당파싸움의 고난에서도 굴하지 않고 큰 울림을 남기신 큰어른, 다산이 보내는 메시지다.

윤종록 한양대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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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록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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