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비는 100% 노동자에게'... 중간착취 근절한 원청은 어디?

입력
2021.08.27 11:0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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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
⑫전북도의 민간위탁 사업 중간착취 근절
1999년 조례 만들어, 노동자에 지급 안 되면 회수

전북도청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북도청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원청이 책정한 노무비는 모두 노동자에게 준다.' 이 간단한 명제 하나를 지키지 않아 수많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중간착취에 신음한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중간착취 문제를 광범위하게 취재하면서, 파견·용역업체의 잔인한 중간착취 실태에 놀라고, 또 이를 방관하는 원청에 한 번 더 놀라곤 했다. 아무리 법이 부재하더라도 원청의 권한으로 '노무비를 노동자에게 전부 주지 않고 가로챌 경우, 그 금액을 회수하고 계약을 해지한다'는 내용의 파견·용역 계약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원청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유일하게 이런 원칙을 시행하고 있는 곳을 겨우 한 곳 파악할 수 있었다. 전북도청이었다. 사실 공공기관은 그 힘이 막강하기 때문에 이런 원칙을 시행하는 곳이 많을 줄 알았지만 전북도가 유일했다.

공공기관 민간위탁 업체·단체는 2만2,700여 곳(2018년 고용노동부 자료)에 이르고,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19만5,700여 명의 임금은 세금으로 지급된다. 민간위탁 사업의 87%는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데, 한국일보가 확인한 16개 광역 지자체 중에서 사업계획에서 책정한 노무비가 전부 노동자에게 임금으로 지급되는지 확인하는 지자체는 전북뿐이었다.

전북도는 지난해 기준 36개의 민간위탁사업에 예산을 투입했다. 1개 사업(관광마케팅 종합지원센터 운영)은 노무비 전용계좌를 운영해 노무비 중 직원 임금으로 지급되지 않은 돈은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감시했다. 또 노무비 전용계좌가 없는 35개 사업은 많게는 월 1회, 적어도 연 2회에 걸쳐 직원들 개별 계좌를 일일이 확인해 실제 지급된 인건비를 합산하고, 이를 노무비와 비교하는 검증 절차를 거쳤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잔액은 모두 도청으로 반환하도록 했다. 전북도청은 이를 통해 지난해 총 16개 사업장(총 노무비 88억3,100만 원)에서 2억5,300만 원을 회수했다.

전북도청이 이처럼 노무비 잔액을 돌려받아 온 기간은 20년이 넘는다. 전북도 관계자는 “워낙 오래전부터 노무비 잔액을 회수해왔기 때문에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전라북도 사무의 민간위탁 기본 조례’가 제정된 1999년 이후부터는 이 제도를 시행해 왔다”고 밝혔다. 2019년 마련된 정부의 ‘민간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은 '노무비를 100% 노동자에게 지급하라'는 규정이 없어서 중간착취 근절에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지만, 전북도는 그보다 훨씬 앞서 이 문제를 해결해온 것이다.

이 때문에 전북도 위탁사업을 맡는 업체나 단체 등은 노무비를 100%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있으며, 회수된 노무비도 중간착취 금액보다는 운영상에서 발생한 경우가 많다.

전북도에서 지난해 노무비 회수금액이 가장 컸던 사업은 ‘장애인복지관운영사업’으로, 총 27억8,200만 원의 노무비 중 1억5,600만 원이 도청으로 돌아왔다. 해당 사업을 담당하는 도청 관계자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직원들의 시간 외 수당이 당초 계획만큼 지급되지 않았고, 육아휴직자와 퇴직자 등도 발생해 노무비 잔액이 생겼다”며 “업체도 이를 도청에 반납하는 걸 당연한 수순으로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수한 노무비는 전북도의 세입으로 처리돼 이듬해 도 예산에 반영된다. 주민 세금을 사용하고 남은 금액을 다시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활용하는 것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만약 중간착취 등의 부당한 이유로 노무비가 전달되지 않았고 이를 도청이 인지하게 된다면, 도청과 업체가 사전에 맺은 협약서 내용에 따라 최고 계약 파기까지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었다”고 설명했다.

아쉬운 부분은 있다. 전북도는 아직 '노무비 전용계좌를 개설해 운영한다'는 내용의 조례를 마련하지 않았다. 전북도 관계자는 “추후 관련 조례 반영의 타당성, 적합성 등을 검토해 추진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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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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