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들의 성평등 철학을 듣고 싶다

입력
2021.08.11 00:00
26면

대선 후보 과도한 사생활 보도
성평등 철학과 비전은 뒷전으로
안전, 지속가능 위한 메시지 있어야


청와대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청와대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게티이미지뱅크


20대 대통령을 뽑기 위한 경주가 시작되었다. 벌써부터 후보들의 사생활이나 가족, 배우자들이 여론의 타깃이 되고 있다.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이야기들이 유튜브에서 인터넷 포털로, 주요 일간지와 방송으로 떠돌고 있다. 그 대부분은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일방적인 폭로거나, 거듭된 해명과 사과에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하이에나식의 공격이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사적인 문제를 투명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후보자들에게 물어야겠지만,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소문 정도의 기사를 끊임없이 쏟아내는 미디어의 무책임성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세간의 관심이 잘못된 수로를 따라 흘러가는 데는 후보들의 철학과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성평등 정책의 맥락에서 보면, 후보들이 가진 성평등에 대한 문제의식과 관점, 미래 방향과 정책 수단에 대한 이해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성평등 철학을 묻는 이유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폭발하고 있는 청년집단의 젠더 갈등과 노동시장의 성별 격차, 가족 돌봄을 둘러싼 성역할 갈등 등 산적한 과제들이 있고, 이것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사회의 안전과 지속가능성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발언을 통해 후보들의 인식을 추정해 보면, 안타까움이 앞선다. 가장 위험한 대목은 ‘건강한 페미니즘론’이다. 사상과 이념의 정치적 올바름을 국가가 판단하겠다는 검열의지인데, 이런 의지의 천명자가 지닌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는 빈약하기 그지없다. 두 번째는 ‘120시간 노동론’이다. 기업의 경영자로서는 필요할 때 더 일하고 쉴 때 쉬면 된다는 입장이겠지만, 가족을 돌보는 노동자로서는 이런 사회는 생존이 불가능한 곳이다. 아이를 키우고 노인을 돌보는 일은 한꺼번에 몰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탈원전 비판’도 걱정스럽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때 한국의 어머니들이 방사능 낙진이 포함된 비를 걱정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 했던 것이 불과 십년 전이다.

대선철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 중의 하나가 ‘보육, 돌봄은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발언과 함께 어린이집이나 산후조리원을 방문해 찍은 사진이다. 그런데 정작 궁금한 것은 수십 년 동안 들어온 이 약속이 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지에 관한 것이다. ‘여성들을 위해 이런저런 일들을 하겠다’는 깨알 공약을 끝없이 나열하는 후보는 그가 어떤 선거에 도전하고 있는지를 잊게 만든다. 정부부처의 국장이나 과장이 할 이야기를 대통령 후보의 입에서 듣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또 다른 사진은 후보 부인들의 ‘조용한’ 봉사, 유권자들 속으로 파고든 ‘내조’에 관한 것이다. 후보의 부인으로서 당연한 행보이고 전략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쯤 남편의 일뿐 아니라 자신의 일도 소중하다는 후보의 부인, 유세장으로 나가는 남편을 배웅하며 자신의 일터로 출근하는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백 마디의 말보다 이런 한 장의 사진이 여성들에게 더 많은 메시지를 주지 않을까? 당신의 일터와 당신의 가족, 당신의 삶 모두를 지키겠노라는.

마지막으로 보고 싶지 않은 사진이 있다. 대선 후보 부부들의 로맨틱한 모습이 연출된 사진이다. 바바리코트를 걸치고 안개꽃을 바치는 후보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라는 미소를 띤 부인의 모습. 상투적인 선거전략이지만 이런 사진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상처를 줄지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 우리는 연예인이 아니라 대통령과, 평등하게 살아가는 그의 배우자를 보고 싶을 뿐이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ㆍ전 한국여성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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