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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장기미제 사건' 해결 류창수 경위 "범인 처벌 못해 안타깝다"

입력
2021.08.09 21:00
23면

지인 제보로 접하고 1년 9개월 수사
범인 찾았지만 시효 지나 처벌 못해
"피해자 시신 못 찾아 유족들에 미안"

전북경찰청 류창수 경위. 전북경찰청 제공

전북경찰청 류창수 경위. 전북경찰청 제공

"살인범을 찾아도 공소시효가 지나서 처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진실을 밝히고 싶어서 수사를 포기할 수 없었다."

1997년 2월 서울에서 사라진 20대 여성이 남자친구에게 살해돼 암매장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영원히 묻힐 수 있었던 사건이 24년 만에 베일을 벗게 된 것은 전북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류창수(46) 경위의 사명감과 집념의 결과다.

2004년부터 강력부서에서 잔뼈가 굵은 류 경위는 반신반의하는 팀장을 설득하면서 1년 9개월간 혼자 수사한 끝에 살인 용의자를 찾아내 뒤 자백까지 받아내는 뚝심을 발휘했다.

류 경위가 사건에 뛰어든 건 우연한 제보 때문이었다. 2019년 11월 평소 알고 지내던 후배가 "지인이 과거 살인에 가담한 것 같다"는 얘기를 류 경위에게 전한 것이다. 류 경위는 곧장 전북 익산에 사는 후배의 지인을 만났다. 입을 굳게 다물던 후배의 지인은 3개월에 걸친 류 경위의 설득 끝에, 1997년 벌어진 살인사건에 대해 입을 열었다.

후배의 지인은 서울의 한 동네에서 선후배로 지냈던 형과 여자친구, 자신과 친구까지 넷이서 차를 타고 익산까지 내려오던 중 형이 여자친구를 살해했다고 털어놓는 것을 들었다. 담배를 피우러 간 사이 여성이 죽어 있었고, 형이 웅덩이에 시신을 암매장했다는 사실도 기억해 냈다.

류 경위는 "그는 형의 여자친구를 그날 처음 봤다면서도 이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며 "살해된 게 맞다면 그 충격 때문에 이름을 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류 경위는 피해자 나이 등 기본 정보를 전혀 몰랐지만, 사건을 해결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사건을 추적해 갔다.

류 경위는 피해자에 대한 신원 조회부터 시작했다. 1990년대만 해도 종이를 코팅해서 주민등록증을 발급하던 시절이었다. 피해 여성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조회해 주민등록증 사진이 교체돼 있으면 제외해 나갔다. 사진이 종이 코팅된 채로 남아 있던 여성 1명을 찾아냈다. 여성의 출입국 기록과 휴대전화 개통 여부, 신용카드 개설 내역 등을 확인해보니 기록이 없었다. 제보를 들은 지 9개월 만인 지난해 8월 피해 여성의 신분을 확인하고, 본격 수사에 돌입해 1년 만에 미제사건을 해결했다.

류 경위는 "수사를 하면서 수차례 유족들을 만나고 연락을 취했다"면서 "단순히 사망 확인 사실만 알리고 '사체도 못 찾고 범인을 처벌도 못 한다'는 점을 얘기할 때 가장 힘들고 미안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자 유족들이 시신을 꼭 찾아달라고 부탁해서 12일쯤 마지막 발굴 작업을 벌일 예정"이라고 했다.



전주 최수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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