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불안이 국민 잘못인가

입력
2021.08.10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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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 8일 오후 남산 서울타워 아래로 정부의 집값 고점 경고에도 불구하고 가격 상승세가 꺾이지 않는 아파트 단지들이 펼쳐져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일 오후 남산 서울타워 아래로 정부의 집값 고점 경고에도 불구하고 가격 상승세가 꺾이지 않는 아파트 단지들이 펼쳐져 있다. 연합뉴스

‘안 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데 지금 부동산 정책이 딱 그렇다. 정부가 양도세 중과와 보유세 인상 등 세금으로 옥죄고 주택 공급 신호를 강조하며 곧 떨어질 테니 매수에 신중하라고 경고를 날려도 집값은 계속 오른다. 지난해 하반기 전격 도입한 ‘임대차 3법’은 전세 품귀와 전세의 월세 전환을 가속해 전·월세 시장까지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큰 틀의 수정은 없고 전진뿐이다. 아, 다주택자 규제와 투기 차단에 주력했던 정책 기조가 지난해 ‘8·4 대책’부터 조금 달라지긴 했다. 올해 들어서도 ‘2·4 대책’을 내놓고 ‘공급 폭탄’이라고 자부했지만 정작 시장 반응이 신통찮은 게 문제다.

8·4 대책의 핵심인 신규 택지는 사전 의견 수렴이 부족했던 탓에 속도가 더디다. 정부과천청사 일대 4,000가구 공급은 지자체와 주민 반대에 막혀 과천지구 자족용지 등 대체지로 방향을 틀었다. 계획 수정이란 선례를 남겨 서울 태릉골프장, 용산 캠프킴도 목표한 공급량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공공재건축은 사실상 흥행 실패다. 5년간 5만 가구 공급이 목표지만 현재까지 사업 의사를 밝힌 단지는 2,200여 가구에 불과하다. 2·4 대책 역시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이 그나마 호응을 얻고 있지만 당면한 공급 부족 해소에는 도움이 안 된다. 2·4 대책의 성격 자체가 2025년까지 주택을 공급할 부지 확보다.

집값은 거침없는 상승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지난 2일 기준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0.37%로 2012년 5월 주간 통계를 작성한 이래 최고 기록이다. 서울 아파트값은 0.2% 올라 2019년 12월 셋째 주(0.20%) 이후 1년 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보였다. 통계 산출 기간에 진행된 수도권 공공택지 사전청약도 집값 상승을 억제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아파트 전셋값 역시 수도권은 0.28%, 서울은 0.17%의 주간 상승률을 이어갔다. 지난해 7월 말 임대차법 시행 이후 수도권 전셋값은 한 번도 내려가지 않고 계속 올랐다. 전세가격 상승이 매매가격을 밀어 올리는 악순환도 현실이 됐다.

혼돈의 부동산 시장에 백약이 무효한 상황인데 이제 정부는 대책 부재에 빠진 듯한 모습이다. 26차례나 대책을 내놨어도 시장이 요지부동이자 6월 초부터는 기회만 있으면 추격 매수를 자제하라는 경고만 되풀이한다. 지난달 28일 부동산 관계부처 장관들의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란 담화문도 마찬가지였다. 반전을 꾀할 방안은 없었고 시장 불안 책임을 국민의 불안 심리와 불법 거래로 돌리는 뉘앙스에 오히려 역풍이 불었다. 담화문 발표 자리에 김창룡 경찰청장이 참석한 것도 의미심장했다.

그래, 국민이 잘못했을 수도 있다. 이참에 부동산 자산을 키우려는 이들이 분명히 있을 거다. 하지만 집값이 계속 오르는 게 불안해 구축 아파트라도 ‘영끌’을 하고, 청약은 가점이 한없이 모자라니 ‘줍줍’이나 추첨제 물량에 달려드는 서민은 어쩌란 건가. 어떤 정책도 통하지 않고 ‘불장’은 계속되고 있다. 정부의 고점 경고를 콧등으로도 듣지 않는 국민의 잘못인가. 4년간 “집값 떨어진다” “부동산은 자신 있다”고 공수표만 남발해 신뢰를 잃은 정부의 잘못인가.

김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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