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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추왓추] ‘나이키의 아이콘’은 어떻게 의혹의 중심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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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짧다. 1964년 미국 오리곤주에서 설립됐다. 아디다스나 푸마, 아식스 등보다 후발주자다. 하지만 짧은 기간 독보적인 스포츠 브랜드가 됐다. 기술력과 더불어 남다른 마케팅이 힘을 발휘했다.
나이키의 뿌리는 육상이다. 운동선수와 코치 출신이었던 공동 설립자는 육상을 주목했다. 경기력 향상을 위한 육상화 개발을 통해 입지를 다졌고, 여러 종목과 세계로 세력을 넓혔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짙기 마련. 다큐멘터리 ‘나이키 스캔들’은 나이키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 알베르토 살라자르를 통해 나이키 성장의 빛과 그림자를 살핀다. 더불어 현대 엘리트 스포츠가 빚어낸 음습한 풍경을 전한다.
나이키는 1970년대 조깅 붐과 더불어 급성장했다. 나이키는 지치지 않고 뛰는 이미지를 마라토너 스티브 프리폰테인을 통해 형상화했다. 하지만 프리폰테인은 자동차 사고로 75년 요절했다. 나이키는 후계자가 필요했다. 오리곤대학 출신 알베르토 살라자르(63)가 적격이었다.
살라자르는 실력이 출중했다. 데뷔전이었던 80년 뉴욕 마라톤에서 우승했다. 데뷔전 미국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후 뉴욕 마라톤을 내리 2번 더 우승했다. 82년엔 보스턴 마라톤까지 제패했다. 강인한 인상 역시 무기였다. 지칠 줄 모르고 목숨을 던지듯 내달리는 모습이 대중을 사로잡았다. 나이키는 후원자로 적극 나섰고, 살라자르의 이미지는 나이키를 널리 알리는 데 큰 힘이 됐다.
양측의 인연은 살라자르 은퇴 뒤에도 이어졌다. 살라자르는 코치로도 성공적인 길을 걸었다. 하지만 미국 육상 중장거리는 침체에 빠졌다. 아프리카 군단이 세계 육상 중장거리를 휩쓸었다. 2000년대 초반 살라자르는 나이키의 후원으로 미국 중장거리 되살리기에 나섰다. ‘나이키 오리곤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성과는 곧 나타났다. 살라자르는 자신만의 독특한 훈련 방식으로 선수들의 실력을 향상시켰다. 첨단장비가 필요하면 나이키에 요청했고, 나이키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선수들은 올림픽과 세계 대회에서 성과를 냈고, 살라자르의 명성은 높아졌다. 선수들은 나이키 육상화를 신고 뛰었으니 나이키의 광고 효과도 커졌다. 세계 유망주들이 나이키 오리곤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줄을 섰다. 살라자르와 나이키의 위상은 동반 상승했다. 하지만 2019년 세계반도핑기구는 살라자르에게 4년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나이키이 아이콘은 위기에 처했고, 나이키 역시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살라자르는 약물 사용 의혹을 부정했다. 아들에게 테스트테론 실험 등을 했을 뿐 선수들은 특히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선수들 역시 약물 사용을 한적이 없다고 극구 부인했고, 반도핑기구은 선수들과의 연계성을 찾진 못했다. 의혹은 단지 살라자르 개인 문제에 불과할까. 나이키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까.
살라자르는 혹시 누군가 선수의 팔 등에 몰래 약물을 발랐을 때 발생할 문제를 고려해 실험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육상계 안팎 사람 모두가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건 아니다. “코치가 최악의 실수를 저질렀는데, 선수들은 아무 잘못도 안 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살라자르에게 지도를 받았던 한 여자선수는 금지 약물을 복용해 보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다른 여자선수는 살라자르에게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받았다고 언론에 토로하기도 했다.
반론을 제기하는 자도 있다. 살라자르는 승부욕이 강하지만, 약물 복용 같은 꼼수를 쓸 사람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울트라 마라톤을 뛰면서까지 체중 관리를 위해 물 한 방울 안 마신, 자기관리에 엄격한 살라자르가 그럴 리 없다는 거다. 나이키 역시 살라자르의 주장을 적극 옹호하고 있다.
현대 엘리트 스포츠는 욕망덩어리다. 세계 최고가 되면 돈방석에 앉는다. 육상도 예외가 아니다. 20세기 후반 선수들은 규제 허점을 파고 들어 약물을 복용했다. 금지약물이 생기자 다른 식으로 경기력 향상을 꾀하고 있다. 규정은 욕망을 제어하려 하나 언제나 뒷북이다.
약물만의 문제는 아니다. 살라자르는 나이키 오리곤 프로젝트로 육성한 선수들이 마라톤 경기에 출전할 때 꼼수 아닌 꼼수를 썼다. 선수들이 집어들 물병에 냉각기능을 갖춘 모자를 함께 비치했다. 규정을 파고들어 경기력을 향상 시킬 방법을 찾은 것이다. 경기 공정성을 따지자면 약물 사용과는 또 어떻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나이키는 경기력을 4% 향상시킬 수 있는 육상화 ‘베이퍼플라이’를 2017년 공식 발표했다. 나이키는 이 육상화 시제품을 2016년 미국 올림픽 마라톤 선발전에 출전한 나이키 오리곤 프로젝트 선수들에게만 제공했다. 여자 선발전 1, 2, 3위는 이 육상화를 신은 선수들 차지였다. 육상화가 이들 성적에 큰 영향을 끼쳤다면 경기 결과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약물 복용이 야기할 수 있는 공정성 저하만 문제일까. 어느 육상 관계자는 이를 두고 “기술적인 도핑”이라고 비꼰다. 다큐멘터리는 약물 복용 의혹과 더불어 선수들과 스포츠 브랜드의 유착관계에 의문을 던진다.
알베르토 살라자르라는 육상계 유명 인사를 통해 엘리트 스포츠의 어둠을 들춘다. 살라자르가 약물을 선수들에게 권했는지, 선수들이 약물을 복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그가 나쁜 일을 저질렀는데, 아직 구체적으로 내용이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다. 다큐멘터리는 살라자르에 대한 의혹을 통해 선수와 코치와 스포츠 브랜드의 공생관계를 파헤친다. 약물 복용이라는 명백한 잘못을 넘어, 육상계 커넥션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도 짚는다. 카메라는 육상, 특히 중장거리에 초점을 맞추지만, 다른 스포츠라고 이 논쟁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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