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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파)이팅'도 준비된 심리전술, 국대 '멘털 갑'도 훈련에서 나와요"

입력
2021.08.10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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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선임연구위원 인터뷰


10년째 양궁 국가대표팀의 심리기술 훈련을 맡고 있는 김영숙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선임연구위원이 6일 서울 노원구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며 "'절대 실수하면 안 돼'보다는 '실수해도 돼. 실수하고 나서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더 중요해'라고 생각하면 긴장하지 않고 경기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왕태석 선임기자

10년째 양궁 국가대표팀의 심리기술 훈련을 맡고 있는 김영숙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선임연구위원이 6일 서울 노원구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며 "'절대 실수하면 안 돼'보다는 '실수해도 돼. 실수하고 나서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더 중요해'라고 생각하면 긴장하지 않고 경기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왕태석 선임기자

올림픽을 앞둔 선수들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실수하면 어떡하지' '나 때문에 팀이 지면 어떡하지' 같은 걱정과 불안이 마음을 짓누른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실력이고 경기의 일부다. 김영숙(47)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선임연구위원(스포츠심리학 박사)이 "심리도 기술처럼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세계 최강 양궁 국가대표팀을 만든 숨은 공신이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10년간 양궁 국가대표팀의 심리 기술 훈련을 전담해 왔다. 이번 올림픽에서 대역전극을 쓴 펜싱 여자 사브르 국가대표팀의 김지연, 윤지수 선수도 그가 2012년부터 심리 지원을 맡아 왔다. 6일 그를 만나, 패색이 짙은 경기에도 포기하지 않는, 단 한 발로 메달 색이 바뀌는 순간에도 담담히 활시위를 당기게 하는, 그 '멘털 갑'을 만드는 비결을 물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생각도 습관이라서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강한 멘털도 연습으로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는 "양궁 여자 선수들도 올림픽 전에 '내가 못해서 우리 팀이 9연패를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컸다"며 "상담하면서 계속해서 '내가 못하면 동료가 잘해줄 거고, 동료가 못하면 내가 잘해주면 된다'고 불안감을 낮추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그는 "메달, 병역 면제, 포상금처럼 자기가 어찌할 수 없는 '결과'를 생각하면 긴장감만 높아지고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할 수 없다"며 "그보다는 준비해 온 '과정'과 경기 중 자신의 기술 포인트에만 집중하도록 돕는 게 심리 기술 훈련"이라고 설명했다. 경기 중 '내가 최고다' '할 수 있다' 같은 '긍정적인 혼잣말'로 자신감을 끌어올리게 하는 것도 심리 기술 훈련에 포함된다.

양궁 국가대표 김제덕 선수가 지난달 24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혼성 단체전 16강 방글라데시와의 경기에서 파이팅을 외치며 들어서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양궁 국가대표 김제덕 선수가 지난달 24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혼성 단체전 16강 방글라데시와의 경기에서 파이팅을 외치며 들어서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경기가 잘 안 풀리거나 실수했을 때는 빨리 털어버려야 한다. 그래야 만회할 기회도 온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오진혁(남자 양궁) 선수한테 8점 쏘면 무슨 생각하냐고 물어봤더니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다음 발을 준비한다고 하더라"며 "선수들에게는 8점을 쏘고 나서도 바로 10점을 쏠 수 있는 마음가짐, 회복 탄력성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남자 양궁 김제덕 선수의 '빠(파)이팅'도 실은 훈련된 심리 전술이었다. "연습 경기를 관찰해 봤더니 파이팅을 한 세트에서 더 좋은 슈팅을 하더라고요. 다른 팀원들(오진혁, 김우진)도 파이팅을 하면 긴장을 덜 하는 것 같다고 해서 '루틴(습관적인 행동)'으로 만들었죠."

김영숙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선임연구위원이 윤지수 선수에게 도쿄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 경기 전날 보낸 2016년 리우올림픽 연습일지의 한 페이지. '나를 믿는다' '한 판 한 판 게임에 집중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김영숙 박사 제공

김영숙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선임연구위원이 윤지수 선수에게 도쿄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 경기 전날 보낸 2016년 리우올림픽 연습일지의 한 페이지. '나를 믿는다' '한 판 한 판 게임에 집중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김영숙 박사 제공

특히 이번 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10점이 뒤져 있을 때 무려 11점을 따내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윤지수 선수와의 인연은 각별하다. 윤 선수는 마음 고생이 심했다. 올림픽 직전인 6월 무릎 수술을 받았고, 개인전에서는 16강에서 탈락했다. 여자 에페, 남자 사브르, 남자 에페가 단체전에서 모두 포디움에 올라 압박감도 상당했다고 한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단체전 전날, 보관해 뒀던 윤 선수의 2016년 리우올림픽 연습 일지 한 페이지를 전송했다. "지수야, 너 이렇게 열심히 했어 알지? 너만큼 열심히 준비한 선수는 없을 거야. 준비한 거 어디 안 간다"라는 말로 마음을 다잡게 했다. 선수와 오랜 시간 신뢰를 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윤 선수는 경기 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쿠크다스 멘털'을 단단하게 만들어주신 박사님(김 선임연구위원)"께 감사를 표했다.

윤지수 선수가 지난달 31일 일본 마쿠하리메세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 동메달 결정전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10점으로 벌어진 점수차를 좁힌 뒤 환호하고 있다. 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메달을 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쿄=연합뉴스

윤지수 선수가 지난달 31일 일본 마쿠하리메세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 동메달 결정전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10점으로 벌어진 점수차를 좁힌 뒤 환호하고 있다. 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메달을 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쿄=연합뉴스

꿈의 무대인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올림픽에 출전했던 한국 국가대표 선수는 232명. 메달을 따거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선수는 소수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기대에 못 미친 결과에 낙심하고 있을 선수들에게 조언을 전했다.

"원인을 '심판의 오심' '상대 선수가 너무 잘해서'처럼 외부에 두기보다는 '기술 분석을 못했다' '긴장을 제대로 풀지 못했다'처럼 내 안에서 원인을 찾고 보완할 방법을 고민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나를 토닥토닥 해주세요. 자책하기보다 내가 이번 대회에서 잘한 점을 찾고 그 장점을 유지해 나가는 거죠. 아직 끝난 게 아니잖아요." 아시안게임은 내년 중국 항저우에서, 올림픽은 3년 뒤 프랑스 파리에서 다시 열린다.

김영숙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선임연구위원이 6일 서울 노원구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김영숙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선임연구위원이 6일 서울 노원구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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