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만 국민통합, 당선 후는 진영 정치
진영대립 쪼개진 나라 갈등과 투쟁만 남아
그렇다고 갈라져 살 수는 없지 않은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국민통합과 경제민주화를 내세우고 당선됐다.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도 국민통합을 가장 큰 목소리로 내세웠다. 그러나 두 대통령은 임기 내내 진영 정치에 몰입했고, 나라는 완전히 두 쪽이 나고 말았다. 두 사람 모두 국민통합이란 자신들의 공약을 헌신짝처럼 버렸으니 결과적으로 국민을 속인 셈이다.
대통령 선거는 각 후보가 속한 정당의 지지세력 밖에 존재하는 스윙 보터(swing voters)에 의해 좌우된다. 2012년에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스윙 보터 중 많은 사람들이 2017년에는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를 지지했을 것이다. 국민통합을 약속한 후보라면 당선된 후에도 자기를 찍지 않은 유권자들의 마음도 헤아려야 하는데 박근혜, 문재인 두 대통령은 자신을 찍은 스윙 보터마저 무시해 버리는 지독한 진영 정치로 일관했다.
그리고 우리는 또다시 대통령을 선출하는 시간을 맞고 있다. 나는 이번 선거에선 후보들이 국민통합을 입에 올리지 않았으면 한다. 지키지도 못할 거짓말을 하느니보다 상대방 진영을 궤멸시키겠다고 약속하는 게 보다 솔직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라는 온탕·냉탕을 모두 경험해 보고 실망한 스윙 보터들은 이번 선거에서 기권을 하거나 그래도 덜 나쁘다고 생각되는 후보를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새 정부가 태어나도 두 정당의 고유 지지층은 상대방을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새 정부 역시 진영 논리에 갇혀 버릴 것이다. 임기 내내 진영 간의 갈등과 투쟁으로 하루도 나라는 편안하지 않을 것임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대통령제 정부는 대통령이 너무나 큰 권력을 갖고 있어서 이것을 장악하고 또 지키기 위해 각 정파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게 된다. 대통령이 갖고 있는 권력이 너무 크기에 승자완점(勝者完占)의 치열한 제로섬 게임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대통령제 정부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도 최근의 트럼프 정부의 경우에서 보듯이 진영 정치의 부작용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민통합을 약속하고 당선됐지만 미국은 이미 두 쪽이 난 나라라서 그런 노력도 한계가 있다.
최근에 오리건주의 캐스케이드산맥 동쪽의 공화당 성향의 보수적인 농촌지역 5개 카운티가 자신들과는 성향이 너무 다른 포틀랜드, 유진 등 민주당 성향의 캐스케이드산맥 서쪽 지역이 주도하는 오리건주에서 탈퇴하고 자신들과 정치적 문화적으로 비슷한 아이다호주로 편입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서서 주목을 사고 있다. 워싱턴 주의 시애틀과 오리건의 포틀랜드를 잇는 캐스케이드 서쪽의 해안지역에선 ‘캐스케디아 공화국’으로 독립하자는 운동이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만일에 트럼프가 재선됐더라면 민주당을 지지하는 태평양 연안의 주민들 사이에서 캐스케디아 공화국 독립 논의가 다시 나올 만도 했다. 근래에는 텍사스에 살던 진보 성향 주민들은 캘리포니아로 이주하고, 캘리포니아에 살던 보수 성향 주민들은 텍사스로 이주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사실 한 나라 안에서 갈등과 이질감이 크다면 억지로 한 국가로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체코슬로바키아가 농업지역인 보수적인 슬로바키아와 도시적인 진보성향의 체코 공화국으로 갈라진 것을 보더라도 헤어지면 서로가 행복해짐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캐스케이드산맥을 두고 동서로 갈라진 미국 북서부만큼이나 분열상이 심각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체코와 슬로바키아처럼 갈라설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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