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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을 향한 혐오와 멸시, 그 한복판에 불화살을 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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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 에 연재됩니다. 한국일보>
올림픽을 보고 있다. 개막일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시대에 지구촌 스포츠 축제를 열고 즐긴다는 게 인간의 이기심인 것만 같아 개막식 중계도 피했는데, 첫 금메달을 딴 양궁 혼성팀의 경기를 보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올림픽 경기 일정과 내 일정이 동기화되어 있었다. 양궁으로 시작해 탁구를, 수영을, 태권도를, 여자 배구를, 여자 농구를, 체조를, 높이뛰기를, 클라이밍을 보며 최선을 다하고 마음껏 기량을 펼치는 선수들에게서 또 하루를 살 힘을 얻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을 보면서 감동한 순간만큼이나 화가 나고 답답한 순간들도 많았다. 보통 올림픽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 때문에 그랬다. 지난 며칠 사이 가장 많이 화가 났던 순간 중 하나는 여자 탁구 단체전 때다. 정확히는 단체전 경기 때가 아니라 관련 기사를 보면서였다. 포털의 댓글창에 중국에서 귀화해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로 뛰고 있는 전지희 선수를 향한 혐오 발언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몇몇 댓글에 "조선족이 나라를 망친다"라든가 "귀화를 가려 받아라"라는 식의 혐오 표현이 있었다고 한다. 모든 혐오와 차별은 사회의 공동선을 해치지만, 특히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 동포를 향한 오해와 혐오는 대중문화와 미디어를 통해 크기를 키워왔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전지희 선수를 향한 맹목적이고 근거 없는 비난은 중국 쪽에서도 있었다고 한다. 귀화했다는 이유로 과거의 출신지와 현재 국적의 국가 양쪽에서 비난을 받는 마음이 어떨지는 상상조차 어렵다. 그렇다면 또 한번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사는 세상과 그 속에 살아있는 인간을 보는 수밖에 없겠다.
'킹덤: 아신전'은 조선 땅에 살았으나 조선 민족도 아니었고, 떠나온 만주의 여진족도 아닌 채로 이방인으로 살았던 번호부락의 성저야인, 아신(전지현)의 이야기다. 성저야인들은 압록강 이남 함경도 변방에 모여 살면서 조선 사람들이 천하다고 여겨 손을 대지 않는 일을 하며 겨우 생계를 유지한다. 이들이 주거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북방 여진족 무리의 동향을 살펴 조선에 알리는 밀정짓을 해야 했는데, 아신의 아버지이며 성저야인들의 우두머리인 타합(김뢰하)이 조선의 명에 따라 여진족 파저위가 사는 지역에 거짓 소문을 퍼뜨리기 위해 떠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버지가 없는 사이 어머니의 병이 악화하자, 어린 아신(김시아)은 사람의 출입이 통제된 폐사군 지역에서 우연히 발견한 생사초를 구하러 가고 그사이 파저위가 나타나 부락민들을 몰살한다. 가족도 동족도 모두 잃고 혼자가 된 아신은 군관 민치록(박병은)을 찾아가 무슨 일이든 할 테니 복수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성내의 궂은 일을 하는 동시에 몰래 무술 실력을 쌓아가며 어른이 된 아신은, 어느 날 자신이 겪은 비극에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 진실을 발견한 아신은 누구에게도 부탁하지 않고 자신의 손으로, 세계 전부를 파멸시킬 복수를 시작한다.
두 시즌 동안 이어져 온 '킹덤'을 통해 세계가 사랑하고 기다리는 이야기를 펼쳐 온 김은희 작가는 '킹덤: 아신전'에서 두 가지 미션을 풀어야 했다. 죽은 사람을 되살리지만, 좀비로 만드는 식물인 생사초가 어떻게 조선 땅에 퍼지게 되었는지, 그 시초를 찾아 알려주면서 시즌2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 아신을 소개하는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여러 장치에도 불구하고 결국 왕족이 민초를 구하는 이야기로 남아있었던 '킹덤'의 두 시즌이, 또 다른 장으로 넘어가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신이 어디의 누구인가는 정말 중요하다. 시즌2까지, '킹덤'의 세계는 말 그대로의 조선이라는 왕국이었으며 세자 이창(주지훈)이 의녀 서비(배두나)의 도움을 받아 좀비로부터 민초를 구하는 이야기로 전개됐다. 나라를 집어삼키려는 해원 조씨 가문이라는 공적이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조선과 세자를 위해 목숨을 거는 충신들이 있었다.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좀비가 아무리 새롭다 한들, 이 구도는 특별할 게 없었다.
하지만 아신이 어디의 누구도 아닌 존재이며, 무엇보다 세자가 구하고자 한 조선 백성조차 아니기 때문에 '킹덤'의 세계는 확장되고 전복될 기회를 얻게 된다. 계급 사회의 꼭대기에 있는 남성이 '나의 나라'를 구하는 이야기가 가장 낮은 계급의 여성이 '나를 제외한 모두의 세계'를 파멸시키려는 이야기와 만난다. 여기서 이야기는 또다시 시작될 수 있다. 단순히 드라마 속 배경 세계만 물리적으로 범위를 넓힌 것이 아니라, 세계를 지탱하던 가치관이 바뀐 것이다. 더 크고 긴 이야기를 이미 준비해 놓은 작가만이 할 수 있는 방향 전환이며 과감한 확장이다. 처음부터 북방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김은희 작가의 큰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을 기다리게 되는 이유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 마침표를 찍는 건 전지현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이다. 압도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에서 좀비가 사람을 먹고 찢어 죽이는 끔찍한 화면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다음 화면을 기다리게 되는 것은, 곧 전지현의 아신이 나올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진실을 알게 된 아신은 불처럼 폭주하지도, 얼음처럼 차갑게 변해버리지도 않는다. 가장 잔인하고 확실한 파멸을 바라며 조선 땅을 지옥으로 만들기로 한 아신의 결정은, 몇 마디 대사 없이도 표정과 눈빛으로 연기하는 전지현을 통해 설득된다. '킹덤'의 앞선 두 시즌을 따라잡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전지현의 연기를 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킹덤: 아신전'에 시간을 투자할 가치는 충분하다. 하지만 전지현이 연기하는 아신의 이야기를 보기 위해서 좀비들 사이의 먹고 먹히는 싸움을 봐야 하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사람이 아닌 존재가 되었다고 약속했지만, 여전히 사람의 꼴을 갖추고 있는 좀비들이 사지가 찢기고 서로를 잡아먹으며 고깃덩어리로 취급되는 장면을 스펙터클로 소비하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인지 또한 고민해 본다면 좋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엇 때문에 이 이야기가 시작되었는지를, 다시금 되짚어보고 싶다. 애초에 아신은 왜 생사초를 찾아내야 했던 것일까? 어머니가 아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원을 부르면 되지 않는가? 하지만 의원은 번호부락에 오지 않는다. 조선 땅에서 성저야인은 살려야 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진족의 복식을 입고 그 문화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들은 여진족이 아니다. 조선 땅에 살고 조선 말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확히 반대의 이유로 이들은 조선 사람 또한 아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그래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이방인을 향한 멸시와 혐오가 이 이야기를 싹틔웠다. 아무 죄도 없는 내 가족, 내 이웃이 우리의 존재를 외면한 거대한 두 세계의 이해관계 때문에 도륙되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아신은 같은 방식으로 세계를 끝장내기를 선택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생사초를 세상에 풀어 인간을 좀비로 만들고, 이들이 서로를 죽이게 하는 방식이다.
이쯤이면 다들 눈치를 챘겠지만, 아신이 당하는 차별과 혐오, 폭력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이민자를 차별하고, 타국의 국적을 가진 채로 한국에 거주하는 이들을 차별하고, 이들도 인종과 국적에 따라 다시 차별하고, 차별하면서 혐오하는 일이 만연하다. 그들의 국적과는 상관없이 대한민국의 국가대표인 전지희 선수에게 혐오 발언을 쏟아낸 사람들에게는, 아신이 겨눈 활이 어디로 향했는지를 꼭 알려주고 싶다. 아신은 인간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고 세세히 급을 나누어 차별하며 멸시하고 괴롭혀온 사람들, 특히 젊고 가진 것 없는 여성을 향한 폭력을 당연하게 여겼던 권력과 남자들의 세계 한복판으로 불화살을 쏘았고, 모두 불태웠다. 다시 시작된 '킹덤'의 이야기에서, 나는 아신의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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