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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루, 오솔길, 나비… 공공화장실 올림픽답다

입력
2021.08.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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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야구·일본 재단 '도쿄화장실 프로젝트'
안도 다다오·반 시게루·쿠마 켄고 등 참여
올해 시부야구 내 공공 화장실 17곳 설계

편집자주

떠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여행이 있습니다. 세계 건축을 통해 각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살펴봅니다.

일본 건축 거장 반 시게루가 도쿄 시부야구 내 요요기 후카마치 소공원 내에 속이 다 보이는 '시스루 화장실'을 선보였다. 사토시 나가레·일본재단 제공

일본 건축 거장 반 시게루가 도쿄 시부야구 내 요요기 후카마치 소공원 내에 속이 다 보이는 '시스루 화장실'을 선보였다. 사토시 나가레·일본재단 제공


일본 건축 거장 쿠마 켄고는 도쿄 시부야구 나베시마 쇼토 공원 내에 삼나무 판자 240여 개를 활용해 다섯 개의 오두막 같은 화장실을 설계했다. 사토시 나가레·일본재단 제공

일본 건축 거장 쿠마 켄고는 도쿄 시부야구 나베시마 쇼토 공원 내에 삼나무 판자 240여 개를 활용해 다섯 개의 오두막 같은 화장실을 설계했다. 사토시 나가레·일본재단 제공


일본 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가 시부야구 내 진구도리 공원에 선보인 화장실. 진회색의 금속 루버 사이로 빛과 공기가 통과돼 쾌적하면서도 빛의 움직임을 잘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토시 나가레·일본재단 제공

일본 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가 시부야구 내 진구도리 공원에 선보인 화장실. 진회색의 금속 루버 사이로 빛과 공기가 통과돼 쾌적하면서도 빛의 움직임을 잘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토시 나가레·일본재단 제공

8일 폐막을 앞둔 도쿄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일본에서 또 하나의 색다른 올림픽이 막을 올렸다. 반 시게루(64)와 안도 다다오(80), 쿠마 켄고(67), 이토 도요(80), 마키 후미히코(93) 등 일본의 내로라하는 스타 건축가들이 총출동한, 이른바 ‘공공화장실 올림픽’이다. 도쿄 시부야구와 일본재단이 주최하는 이 올림픽은 세계적 건축가와 디자이너 16명이 각각의 기량을 발휘해 공공화장실을 짓는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Tokyo Toilet Project)’다. 올해까지 시부야구 내 역대급 공공화장실 17곳이 완공된다. ‘지저분하고 무섭다’는 편견을 깨고 성별과 연령, 장애에 상관없이 이용할 수 있는 공공화장실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다. 재단 측은 “프로젝트를 통해 포용적인 사회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일본 도쿄 시부야구 하루노오카와 공원에 들어선 반 시게루의 '시스루 화장실'. 사토시 나가레·일본재단 제공

일본 도쿄 시부야구 하루노오카와 공원에 들어선 반 시게루의 '시스루 화장실'. 사토시 나가레·일본재단 제공


반 시게루의 '시스루 화장실'

지난해 일찍이 등판한 선수는 ‘건축계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2014년 수상한 건축가 반 시게루. 그는 시부야구 내 작은 공원 2곳에 속이 다 비치는 ‘시스루(see-through) 화장실’을 선보였다. 마치 쇼룸처럼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이 화장실은 사람이 들어가 문을 잠그면 불투명하게 변한다. 사용자가 있는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데다, 바깥으로 나오면 내부가 공개돼 사용자들이 청결하게 쓸 수 있도록 유도한다. 설치 직후 안전 우려가 제기됐지만, 현재 도쿄 시민들이 애용하는 공공화장실로 자리매김했다.

도쿄올림픽 주경기장을 설계한 쿠마 켄고가 선보인 '오솔길 화장실'은 주경기장에서 사용한 삼나무를 활용했다. 사토시 나가레·일본재단 제공

도쿄올림픽 주경기장을 설계한 쿠마 켄고가 선보인 '오솔길 화장실'은 주경기장에서 사용한 삼나무를 활용했다. 사토시 나가레·일본재단 제공


쿠마 켄고의 '오솔길 화장실'

‘친환경’이 주특기인 건축 거장 쿠마 켄고는 ‘오솔길 화장실’을 지었다. 숲속 오솔길을 따라 작은 오두막에 들어가는 것처럼 공공화장실을 이용하게 한다. 나베시마 쇼토 공원에 들어선 5곳의 작은 화장실은 각각 긴 삼나무 판자들로 불규칙하게 둘러싸여 있다. 화장실 세면대와 벽면 등에도 삼나무 조각들을 붙여 자연친화적인 분위기를 강조했다. 각 화장실은 성별과 연령, 장애 여부에 따라 나뉜다. 쿠마 켄고는 “화장실을 분리해서 개방적이고 쾌적한 ‘공공화장실 마을’을 구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안도 다다오는 루버를 활용해 빛과 공기가 드나들 수 있는 화장실을 설계했다. 사토시 나가레·일본재단 제공

안도 다다오는 루버를 활용해 빛과 공기가 드나들 수 있는 화장실을 설계했다. 사토시 나가레·일본재단 제공


안도 다다오의 '빛 화장실'

‘빛의 건축가’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안도 다다오는 공공화장실 내부로 빛을 끌어들였다. 지난해 말 진구도리 공원에 문을 연 공공화장실은 진회색의 금속 수직 루버(공기와 빛이 통과하도록 한 얇은 판)로 이뤄진 원통 형태다. 촘촘하게 배치된 루버 사이로 외부의 빛과 바람이 화장실을 휘감아 돈다. 기존에 그가 주로 해 온 날카롭고 거친 콘크리트 건축물과는 180도 다르다. 루버를 따라 화장실 내부로 진입하다 보면 빛의 움직임에 따라 발걸음이 느려진다. 들어가는 것조차 꺼려지는 기존의 공공화장실과는 격이 다르다.

일본 건축의 거장 마키 후미히코가 도쿄 시부야구 내 에비수이스트 공원 내에 지은 화장실은 마치 나비가 내려앉은 듯 살랑이는 지붕이 특징이다. 사토시 나가레·일본재단 제공

일본 건축의 거장 마키 후미히코가 도쿄 시부야구 내 에비수이스트 공원 내에 지은 화장실은 마치 나비가 내려앉은 듯 살랑이는 지붕이 특징이다. 사토시 나가레·일본재단 제공


마키 후미히코의 '나비 화장실'

이번 올림픽 참가자 중 최고령자인 마키 후미히코는 1993년 일본에서 두 번째로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일본 건축계의 원로다. 그러나 에비수이스트 공원에 자리한 그의 공공화장실은 창조자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창의적이다. 여러 개로 나뉜 하얀 부스 위에 나비가 내려앉은 듯한 지붕을 살포시 얹었다. 지붕과 벽 사이로 빛과 공기가 드나들 수 있도록 해 밝고 쾌적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 외벽엔 세면대와 벤치 등을 설치하고, 각 부스들 사이로 길을 내어 화장실 기능에 한정되지 않고, 휴게시설로의 가능성까지 넘본다. 문어 모양 미끄럼틀이 있어 ‘문어공원’으로도 불리는 이곳을 아이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반영했다.

일본 도쿄 시부야구 요요기하치만역 인근 작은 신사 앞에 위치한 이토 도요의 공공 화장실은 둥근 지붕을 올려 숲속에 자라난 버섯을 연상시킨다. 사토시 나가레·일본재단 제공

일본 도쿄 시부야구 요요기하치만역 인근 작은 신사 앞에 위치한 이토 도요의 공공 화장실은 둥근 지붕을 올려 숲속에 자라난 버섯을 연상시킨다. 사토시 나가레·일본재단 제공

이토 도요의 '버섯 화장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쓰러진 소나무 등을 활용한 ‘모두의 집’ 프로젝트(2013년 프리츠커상 수상)로 유명한 이토 도요의 공공화장실도 지난달 말 베일을 벗었다. 시부야구 요요기하치만역 인근 도로에 옅은 분홍빛 모자이크 타일을 두른 원통형 화장실 세 곳이 들어섰다. 마치 버섯처럼 보이기도 하는 봉긋한 돔 모양의 지붕을 얹어 대중에 친근감을 불러일으키는 게 특징이다. 채광을 확보하고 공기를 내부로 유입시키기 위해 지붕을 살짝 띄웠다. 이토 도요는 “눈에 띄지 않는 디자인으로 누구나 편안하면서도 친숙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로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분홍색 버섯 세 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듯한 화장실 풍경은 멀리서도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일본 도쿄 시부야구 진구마에역 길가에 들어선 패션 디자이너 니고의 화장실은 오래된 집을 닮았다. 사토시 나가레·일본재단 제공

일본 도쿄 시부야구 진구마에역 길가에 들어선 패션 디자이너 니고의 화장실은 오래된 집을 닮았다. 사토시 나가레·일본재단 제공


일본의 스타 산업 디자이너 타무라 나오가 도쿄 시부야구 히가시 산초메의 좁은 삼각형 땅에 올린 화장실은 일본 전통 포장 방식인 오리가타에서 영감을 받았다. 사토시 나가레·일본재단 제공

일본의 스타 산업 디자이너 타무라 나오가 도쿄 시부야구 히가시 산초메의 좁은 삼각형 땅에 올린 화장실은 일본 전통 포장 방식인 오리가타에서 영감을 받았다. 사토시 나가레·일본재단 제공


일본 인테리어 디자이너 가타야마 마사비치가 도쿄 시부야구 에비수 니치 공원에 만든 화장실은 일본 고대 화장실 문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사토시 나가레·일본재단 제공

일본 인테리어 디자이너 가타야마 마사비치가 도쿄 시부야구 에비수 니치 공원에 만든 화장실은 일본 고대 화장실 문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사토시 나가레·일본재단 제공


‘집 같은 화장실’, ‘현대판 카와야’…신예들의 도전

촉망 받는 신예들의 실력도 만만찮다. 일본 전통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그러면서도 가장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화장실을 내놨다. 지난해 5월 이번 프로젝트 중 처음으로 공개된 패션 디자이너 니고의 화장실은 오래된 집을 닮았다. 기차역 인근 길가에 들어선 화장실은 박공 지붕을 얹은 전형적인 단층집 형태다. 도쿄 최대 공원인 요요기 공원 자리에 있던 1946년 미군 숙소 ‘워싱턴 하이츠’에서 영감을 받았다. 니고는 “화장실의 기능만 강조하기보다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며 “오래된 집 같은 느낌의 화장실을 두어 옛것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산업 디자이너 타무라 나오의 공공화장실은 강렬한 붉은색이다. 삼각형의 자투리땅에 지어진 화장실의 출입구는 날카로운 사선으로 마감돼 극적인 명암 효과를 낸다. 타무라 나오는 “국적이나 성별 등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환대하는 의미로 일본 전통 포장 방식인 ‘오리가타’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다”고 소개했다.

돌과 나무, 흙 등으로 만들어졌던 일본의 고대 화장실 ‘카와야’를 계승하는 ‘현대판 카와야’도 나왔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가타야마 마사미치는 15개의 콘크리트 벽을 무작위로 조합해 미로 같은 화장실을 만들었다. 그는 “특정한 건축물이 아니라 주변 공간에 흩어 놓은, 놀이 공간 같은 화장실이었으면 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17곳 중 10곳이 공개됐다. 일본 스타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와 애플 출신 산업 디자이너 마크 뉴슨 등이 설계한 화장실을 포함해 7곳이 연내 문을 연다. 로이터통신은 “일본이 공공화장실 프로젝트를 통해 공공 건축의 중요성을 전 세계에 알렸다”고 평가했다.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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