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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밥맛 떨어지는 얘기들

입력
2021.08.04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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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광주 북구의 모교 광주체육중고등학교를 찾은 안산 선수가 양궁부 후배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광주=뉴스1

3일 광주 북구의 모교 광주체육중고등학교를 찾은 안산 선수가 양궁부 후배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광주=뉴스1

“이런 밥 팔아 똥 사먹을 놈아.”

그 귀한 밥을 팔아다 그 쓸데없는 똥을 사먹다니. ‘이밥에 고깃국’이 한때의 유토피아였던, 반만년 정주농업의 역사가 깃든 대한민국 땅에서 이처럼 준엄한 꾸짖음이 또 있을까. 항문기가 지난 지 한참인데, 그럼에도 똥 얘기는 그리도 재미난지 아이들은 허리를 젖히며 웃어댔다.

모두가 롯데자이언츠 팬이던 부산 어느 학교의 수학 시간. 투수 최동원이 몇 년도 무슨 경기에서 누구를 상대로 무슨 구질로 몇 구째를 어떻게 던졌는지 생생하게 묘사할 순 있지만, 간단한 수학공식 하나는 절대 외우지 못하는 녀석들에게 내지른 선생님의 절규였다. 그러거나 말았거나 밥은 최동원이지, 수학공식 따위가 무슨.

요즘 도쿄올림픽에도 밥 팔아 똥 사먹는 류의 얘기들이 넘친다. 개최국이 일본이라고 일단 이죽대고 시작하는 게 영 거슬리더니, MBC 개회식 방송의 각국 소개가 스타트를 끊었다. 신세대들에겐 ‘원한에 찬 내셔널리즘’ 따위가 없어 당당하게 경쟁 그 자체를 즐긴다는 류의 얘기가 나온 게 대체 언제 적인데 아직도 저러나 싶더니, 아뿔싸 그보다 한 수 위가 있었다. 안산 선수의 쇼트 컷 얘기다.

개인적으론 이런 현상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아선지 엄청난 분노나 실망보다는 뭐랄까, 얕은 한숨만 나올 뿐이다. 이 세상엔 밥 팔아 똥 사먹는 소리를 해대는 이들은 늘 다양하게 있어 왔고,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게 있을 예정이다. 하지만 굳이 저딴 게 왜 화제가 돼야 할까, 뭐 그런 생각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던 2016년 미국 사람들도 그랬던 모양이다. 그래서 휘트니 필립스라는 학자는 ‘미디어는 어떻게 허위 정보에 속았는가’(한국언론진흥재단 펴냄)라는 연구서를 내놨다. 요점만 간단히 추리자면 극우 정치인과 그 지지자들이 내뱉는, 말 같지도 않은 얘기들이 디지털 시대 언론 보도 덕택에 널리 퍼지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구서 원제가 ‘증폭하는 산소(The Oxygen of Amplification)’다. 실제 세계에서는 입 밖에 내기 어려운, 낸다 한들 ‘쟤 뭐래?’라는 반응밖에 못 얻을 바보 같은 소리가 디지털 시대 SNS에 오르내리고, 언론이 이를 보도하면서 활활 불타오른다는 얘기다.

물론 언론이 의도한 바는 아니다. 정반대다. 저런 헛소리까지 보도해야 하나 무시하기도 하고, 디지털 시대에 나 하나 보도 안 한다고 달라질까 싶어 일정 수준에서 타협하기도 하고, 차라리 그런 얘기를 끄집어내서 화끈하게 비판해주기도 하고 그랬다. 이 모든 고민이 무색하게도 결과론적으론 되레 부추긴 꼴이 됐다는, 허탈한 얘기다.

지난달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준석(왼쪽) 국민의힘 대표가 양준우 대변인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준석(왼쪽) 국민의힘 대표가 양준우 대변인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뉴스1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트럼프가 정치인으로 거론되기 훨씬 전부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미국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 경향을 분석하면서, 그 원인 중 하나로 비정상적인 극우를 극우라 내치지 못하고 얼렁뚱땅 보수라 부르는 세태를 꼽았다.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자유, 시장 이런 말만 읊조리면 아무 말 대잔치를 벌여도 자동적으로 '새로운' 혹은 '젊은' 보수라는 상표를 척척 가져다 붙여 주니 말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헛소리는 헛소리일 뿐, 그런 것은 보수가 아니라고 정치권이 먼저 나서서 선을 확실하게 그어주면 어떨까. 그게 진짜 젊고 새로울 것 같다.

조태성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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