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부역 '백살 노인' 재판 앞둔 독일 "정의엔 유효기간이 없다"

입력
2021.08.03 18:00
10월부터 前 나치 강제수용소 경비원 재판
3년간 수용자 3518명 살인에 가담한 혐의 
"가해자·피해자 모두 고령... 사법처리 속도"

나치에 의해 폴란드 남부 오슈비엥침에 위치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갇힌 수용자들이 1945년 5월 나치 독일이 항복 선언을 한 이후 철조망 앞에 모여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2개월 후 독일에서 열리는 한 100세 노인의 재판에 유럽 국가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유대인 학살에 관여한 혐의로 법정에 서는 피고인이기 때문이다. 해당 노인은 고령이라 재판을 받기 힘들다고 주장했으나, 희생자 지원단체는 “정의에는 유효기간이 없다”며 단죄를 촉구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나치 강제수용소 경비원으로 일했던 독일 남성 A(100)씨의 재판이 10월부터 열린다고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A씨는 베를린에서 북쪽으로 30㎞ 떨어진 작센하우젠 수용소에서 1942~1945년 벌어진 수용자 3,518명 살인을 방조한 혐의로 지난 2월 기소됐다. 그가 근무한 작센하우젠 수용소에선 1936년부터 1945년까지 20만 명 이상의 수용자가 감금돼 강제노동과 생체실험, 학대 등을 겪었고,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A씨의 변호인은 “피고인이 워낙 고령인 만큼, 직접 재판에 참석하는 건 무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독일 사법부는 이를 일축했다. “A씨 나이를 감안해 하루에 2시간 30분씩만 재판을 진행할 것”이라며 법정에 출석하도록 한 것이다. 피해자 측 변호사와 검찰이 “고령인 수용자 생존자도 재판에 나간다”며 A씨 역시 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뜻을 고수한 덕이 컸다. 크리스토프 호이브너 국제아우슈비츠위원회 부회장은 이날 독일 주간지 슈피겔에 “강제수용소 생존자들한테 정의는 유효기간이 없다”며 “가해자들이 나이가 많더라도 조사가 끝나선 안 된다”고 말했다.

2차 대전을 일으킨 ‘전범 국가’ 독일은 패전 후 76년이 지났으나,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나치 부역자들을 끝까지 찾아내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고 있다. 나치 치하 폴란드에 있었던 슈투토프 강제수용소에서 비서로 일했던 96세 여성도 9월 말부터 재판을 받는다. 1만1,000명의 수용자 살해에 연루된 혐의다. 같은 곳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했던 95세 남성은 지난해 7월 이미 유죄(집행유예형) 판결을 받았다.

독일 검찰이 최근 들어 사법처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나치 부역자(가해자)와 희생자(피해자)가 모두 고령으로 사망을 눈앞에 두고 있다”며 “독일 당국이 단죄를 위해 시간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대인 인권단체 시몬비젠탈센터에 따르면, 2001~2018년 최소 105명의 나치 부역자가 북미 또는 유럽에서 유죄 판결을 받거나 추방당했다.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또 해방 이후 과거사 사건들의 진상 규명을 끝마치지 못한 한국 사회가 곱씹어 볼 대목이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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