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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2020년 도쿄올림픽을 통해 본 미디어 이벤트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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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수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올림픽이라는 스포츠 드라마의 매력
평소 스포츠 관전을 즐기지는 않지만, 올림픽 중계는 슬금슬금 찾아보게 된다. 세계적 수준의 운동 선수들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광경을 관전하는 흔치 않은 기회다.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에 감탄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패가 갈리는 냉정한 현실에 한탄도 한다. 선수들의 뛰어난 신체 기량과 집중력, 진지한 도전 정신에 무엇과도 대체불가한 매력을 느낀다. 개인적으로는 연출된 TV 프로그램에 대한 호감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준다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조차 과장된 연출로 빈번하게 구설에 오르고, ‘재미를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으로 가식을 정당화한다. 거짓과 위선이 TV의 암묵적 문법이 되었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낀다. 그에 비하면 올림픽 경기는 ‘찐’이다. 전 세계의 고수들이 몇 년, 때로는 몇십 년 동안 끊임없이 노력해 온 결과가 가감없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둘도 없는 스포츠 드라마를 보기 위해 TV 앞에 앉고 마는 것이다.
올림픽 중계를 보면서 몰랐던 경기를 배워 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가라테, 서핑, 3대3 농구, 스케이트보드, BMX(자전거 모토 크로스) 등은 이번 올림픽에 공식 종목으로 입성했다. 팬층이 두터운 야구나 축구 등과 달리,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개중에는 젊은이들의 위험한 장난질 정도로 평가 절하되어 왔던 종목도 있다. 특히 젊은이의 공론장인 일본의 소셜 미디어에서 이들 종목이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올림픽 중계 방송을 보고 스케이트보드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젊은이도 있는 것을 보니,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이들 종목의 존재감이 한층 커질 것이 틀림없다. 다양한 인터넷 플랫폼에서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콘텐츠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시대에도 올림픽의 뿌리칠 수 없는 매력을 실감한다.
◇미디어 이벤트의 모순이 고스란히 드러난 2020 도쿄올림픽
일본에서도 올림픽 중계의 시청률은 고공 행진 중이다. 개회식의 시청률이 56. 4%에 달해, 무려 반세기 전 도쿄올림픽(1964년)의 개회식 시청률 (61.2%)에 육박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일본 국내에서 개회식에 대한 평은 전반적으로 좋지 않은 듯하다. 일본인 지인 중에 미디어 종사자가 많은데, 전문적인 식견에서 볼 때에 이번 개회식은 콘셉트부터 진행까지 하나같이 서투르다는 혹평 일색이다. 영화업계에 종사하는 한 친구는 일본 문화에 대한 자긍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렇다고는 해도, 막상 경기 중계가 시작되자 시청률은 잘 나온다고 한다. 도쿄를 비롯한 일본 주요 지역에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긴급사태가 선언 중이다. 외출 대신 집에 머물면서 스포츠 관전을 택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역시 ‘미디어 이벤트’(media event)로서 올림픽의 저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미디어 이벤트란 매스 미디어에 의해 기획, 편성된 대규모 행사를 뜻한다. 지상파 방송의 사회적 영향력이 절대적이던 시절에는, 이른바 황금 시간대에 ‘특별 방송’이 편성되면 전파 권역 내의 거의 모든 시청자가 주목했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글로벌한 스포츠 제전은 비일상적인 즐거움과 각별한 해방감을 안겨주는 강렬한 미디어 이벤트다. 동영상 소셜 미디어, 구독형 스트리밍 서비스(OTT) 등 다양한 플랫폼이 공존하는 인터넷 시대에 들어서면서 미디어 이벤트의 형태도 의미도 달라지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은 지구촌 전체를 들썩이게 만드는 미디어 이벤트로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미디어 이벤트는 대중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전달하는 긍정적 역할도 있지만, 왜곡된 집단적 연대감을 부채질하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 베를린올림픽(1936년)은 세계 최초로 스포츠 경기의 TV 중계를 실현했다. 이 당돌한 미디어 이벤트는 독일인의 신체적 우월감을 교묘하게 강조함으로써 인종차별적 국가주의를 정당화했다. 전쟁 상황이 TV로 생중계된 걸프전(1990년)에서는 적국의 시가지를 향하는 미사일의 폭격 장면이 마치 게임 속 스펙터클한 신처럼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매스 미디어가 전쟁 장면을 미디어 이벤트의 소재로 활용하면서 대학살의 현장을 일종의 볼거리로 전락시킨 것이다. 한편, 스폰서 기업의 광고로 수익을 올리는 매스 미디어의 ‘기획 상품’인 만큼, 고질적인 상업주의에 대한 우려도 크다. 예를 들어, 일본 정부는 거센 비판 여론을 거스르면서까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도쿄올림픽을 강행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대회를 중지할 경우 스폰서 기업과의 계약, 동영상 중계권 계약 파기로 인한 막대한 해약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가 있었다. 또 고온다습한 여름으로 악명이 높은 도쿄가 개최지임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더위와 싸워야 할 것이 불 보듯 뻔한 7~8월이 개최 기간으로 낙점을 받았다. 이 역시 북미와 유럽의 주요 스포츠 리그의 오프 시즌을 노려야 글로벌 시청률이 높고 스폰서 유치가 수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선수와 시민의 건강보다 장삿속을 우선시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겠지만, 어떻게 보면 상업주의야말로 미디어 이벤트의 본질이기도 하다.
개회 직전, 올림픽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대해 질문을 받은 스가 총리는 “TV 중계가 시작되면 분위기가 바뀔 것”이라고 답했다. 국가 권력과 거리가 가까운 미디어 이벤트의 본질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그의 발언에 적지 않게 놀랐다. 지금 일본을 방문 중인 해외의 올림픽 선수단에는 정해진 장소와 동선 이외에는 이동이 금지되는, 엄격한 ‘버블 방역’ 시스템이 적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내 감염자가 급증하는 것은, 올림픽이 대중적 관심을 독차지하면서 방역과 위생에 대한 시민 사회의 위기 의식이 느슨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스가 총리의 단언처럼 올림픽 중계가 시작되면서 여론이 극적으로 호전되는 기색은 없지만, 대대적으로 전개되는 미디어 이벤트가 시민 사회에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근대 이후 올림픽은 예외없이 국가 혹은 자본 권력에 충실하게 봉사했다. 평등하고 공정한 스포츠 정신을 외치면서도 시민 사회보다는 권력적 이데올로기와 친근하게 동행한 전력이 있다. 어떻게 보자면 팬데믹 와중에 강행하는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그 본질적 모순이 한층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내셔널리즘을 부추기는 올림픽 중계, 한국 사회도 미디어 이벤트는 진행 중
한국에서도 올림픽 중계는 인기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 다양한 플랫폼을 향했던 대중의 관심이 모처럼 TV로 집중되고 있다. 필자처럼 스포츠 그 자체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역시 대한민국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관전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대표팀이 선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겠느냐마는, 오로지 우리 편의 승리만을 기원하는 것이 스포츠 정신은 아니다. 모든 중계 채널이 일색으로 한국 선수의 출전 시합만 보여주니, 다양한 스포츠 종목을 관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은 어긋나기 일쑤다. 한국 선수가 출전하지 않은 종목은 중계 편성조차 성사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술 더 떠 해설자는 한국 선수가 메달을 따느냐 마느냐, 무슨 색 메달을 따느냐는 등 옹졸한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어 경기를 중계한다. 한일전이라도 있으면 분위기는 더 과열된다. ‘일본에 지고 싶지 않다’는 속마음이 있을지언정, 해설자가 앞장서서 보편적 스포츠맨십을 무시하고 내셔널리즘을 부추기는 발언을 하니, 모처럼 스포츠를 즐길 마음으로 TV 앞에 앉아도 편하지가 않다.
올림픽은 국가 대항전이기 이전에 다양한 종목에 출전한 운동 선수들이 서로의 기량을 겨루는 스포츠 대회다. 스포츠 본연의 사명을 지키려는 매스 미디어의 노력이 없이는, 국가 권력과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좌지우지되는 미디어 이벤트의 비뚤어진 민낯을 드러낼 뿐이다. 2020 도쿄올림픽의 개최지는 일본이지만, 한국 역시 올림픽이라는 미디어 이벤트가 성대하게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다. 그 부정적 작용이 가시화될 수 있는 리스크는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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