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보다 베짱이를 우대하는 배달앱

입력
2021.08.02 22:00
27면
서울 시내에서 배달 라이더가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 시내에서 배달 라이더가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뉴시스


요즘 내게 카톡과 문자를 가장 많이 보내는 사람은 애인도 가족도 아닌 쿠팡이츠와 배민이다. 쿠팡이츠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접속하면 보너스를 준다 하고 하루 10건 이상 배달하면 평점도 올려주겠다고 문자를 보낸다. 배민도 지난달 31일부터 8월 2일까지 11시~2시 사이에 6건 이상 배달하면 7,000원을 준다고 한다. 가끔 ‘박정훈님에게만 드리는 특별한 혜택’으로 시작하는 문자를 받기도 하는데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뛴다. 오후 2시부터 3시까지 한 건 이상 배달하면 4,000원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설마 나한테만 보냈을까 했는데, 프로모션 문자를 못 받은 라이더도 있었다. 프로모션 조건과 금액도 라이더마다 다르다. 쿠팡은 최대 16만 원, 5만 원, 2만6,000원으로 각각 다른 프로모션 금액을 라이더에게 발송했다. 노동의 대가인 배달료가 복권이나 경품처럼 지급되는 것이다. 로또는 추첨방송이라도 하는데, 프로모션은 기준을 알 수 없다. 라이더들이 자체 조사를 벌인 결과 최근에 일한 기록이 없는 사람일수록 높은 프로모션 문자를 받았다는 게 밝혀졌다. 플랫폼 배달기업들은 프로모션과 상관없이 매일 접속해서 개미처럼 성실하게 일하는 라이더들에겐 프로모션을 조금 주고, 가끔씩 일하는 베짱이 같은 라이더에게 프로모션을 많이 줘서 앱에 접속하게 만드는 전략을 사용한다. 성실하게 땀 흘려 일한 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전통적인 노동윤리의 붕괴다.

우리는 여기서 플랫폼이 이야기하는 자유로운 노동의 본질을 알 수 있다. 생존을 위해 일해야 하는 사람들에겐 로그아웃할 자유가 없다. 낮은 가격에라도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한다. 배민과 쿠팡은 실시간으로 배달료가 바뀌는데, 가격이 떨어지면 로그아웃을 하는 게 아니라 한 건당 소요되는 배달시간을 줄이고 노동시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벌어도 그만 안 벌어도 그만인 사람들만이 배달료가 오를 때까지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않을 자유가 있다. 애초에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배달노동자가 될 가능성이 적다.

플랫폼은 프로모션으로 앱에 접속하는 노동자를 늘려 장기적으로 개별 노동자들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대기하는 노동자들을 활용해 단건 배송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 물론 포기해야 할 게 있다. 시장을 지배적으로 장악하기까지 막대한 돈을 지불해야 한다. 돈을 푼다고 회사에 충성하는 라이더를 확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낚시하듯 필요할 때만 높은 배달료를 지급하고, 필요 없을 때는 2,500원에서 3,000원의 배달료를 주는 회사를 믿고 일할 수 없다. 라이더들은 실시간으로 변하는 배달료와 프로모션에 따라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유리하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움직이는 시장에서는 사장님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노동윤리’가 생길 수 없는 역설이 발생한다.

안전도 문제다. 라이더들은 배달료가 비교적 높은 한여름과 한겨울에 바짝 벌어야 봄과 가을을 견딜 수 있다. 덕분에 최근 사고 소식이 늘었다. 폭염에 집중력은 떨어지는데 프로모션 달성을 위해 무리해서 일한다. 플랫폼 배달기업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비트코인이나 복권처럼 배달료를 지급하는 구조가 장기적으로 산업의 안정적 발전에 도움이 될까? 이 질문에 노사가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할 때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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