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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업 쓰레기 방치가 어민들 탓? 둘 곳도 버릴 곳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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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사지 않을 권리]<16>폐어구 처리
기후위기와 쓰레기산에 신음하면서도 왜 우리 사회는 쓸모없는 플라스틱 덩어리를 생산하도록 내버려 두는 걸까요. '제로웨이스트 실험실'은 그동안 주로 소비자들에게 전가해온 재활용 문제를 생산자 및 정부의 책임 관점에서 접근했습니다.
비난하기는 쉽다. 미세플라스틱에 오염된 바다 문제가 대두될 때면, 폐어구를 함부로 버려온 어민들을 지탄하는 목소리가 늘 뒤따랐다.
그러나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이 어촌 현지를 찾아 확인한 결과, 폐어구를 일반 쓰레기로 내놓을 수 없는 시스템의 부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염분이 있는 쓰레기는 소각시설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 지방자치단체에서 수거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환경부는 "어업 쓰레기도 일반 쓰레기로 내놓아도 된다"는 현실을 모르는 말만 하고 있다. 현실과 괴리된 해양폐기물 처리 시스템으로 인해 어민들은 쓰레기를 처리하기가 쉽지 않고, 정부의 해양 쓰레기에 대한 무지는 문제를 키워왔다.
바다에 인접한 일부 지자체에서는 전문업체에 별도로 돈을 주고 바다 쓰레기를 처리하고 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일부일 뿐이다. 어민들은 폐어구를 대체 어디에 버려야 할까. 어업 폐기물 처리 시스템의 부재를 짚어봤다.
“이 끈이오? 양식장에서 (채취) 작업할 때 (끈까지) 칼로 잘려서 나온 거죠.”
지난달 23일 경남 통영시 선촌마을의 한 해변. 오전인데도 벌써 31도의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떠밀려온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부서진 스티로폼 부표, 조각난 그물과 밧줄 등 어구에서 나온 잔해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플라스틱 병과 비닐, 먹다 남은 양파와 고추까지 눈에 띄었다. 이 쓰레기들은 어디서 왔을까. “양식장에서 작업하다가 쓰고, 먹고 버렸을 거예요.” 주민 이미자(63)씨의 설명이다. “정화 활동을 하다 보면 신발, 장갑도 나오고 페트병도 굉장히 많이 보여요.” 이씨가 덧붙였다.
우리나라 해양 쓰레기의 60%는 해상에서 유입된다. 대부분이 유실된 폐어구 등 어업 쓰레기로 추정되지만, 선박이나 양식장에서 나오는 일반 쓰레기도 많다.
해양 쓰레기는 열심히 주워도 어떻게 처리할지 난감하다. 폐기물관리법을 관할하는 환경부는 ‘해양폐기물은 해양수산부 업무’로 돌리며 현장의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는 “폐어구가 시행규칙으로는 사업장 폐기물이지만, 시행령상 1일 300㎏을 넘지 않는 경우 생활쓰레기로 배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생활쓰레기 처리는 지자체 재량에 맡겨져 있으며, 만약 어민들이 종량제 봉투를 이용해 어업 쓰레기를 버린다면 지자체가 처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설명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어민들은 장갑이나 그물 조각 같은 소량의 해양쓰레기도 생활쓰레기로 버리기 어렵다고 말한다. 지자체가 자체 운영하는 폐기물 처리시설은 대부분 해양 쓰레기를 반입해 처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염분 때문에 소각 중 오염물질이 발생할 수 있고, 발열량도 높아 폐기물 소각시설이 고장날 수 있다는 이유다. 같은 이유로 일반 쓰레기라 할지라도 어민이 작업 중 쓰거나 해수욕장에 버려져 바닷물이 닿았다면 기피 대상이다.
“육지 쓰레기와 바다 쓰레기를 모아 놓으면 수거를 안 해 가죠. 바닷가 경계의 마을들은 그런 어려움이 있습니다.” 정정옥 선촌마을 부녀회장의 설명이다.
현행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상 어망과 부표, 패각(굴·조개 등의 껍데기) 등은 사업장 폐기물이다. 원칙대로라면, 폐어구를 사용한 어민은 사업장 폐기물 전문업체에 위탁해 처리해야 한다. 폐기물관리법 18조상 ‘사업장에서 발생한 폐기물을 스스로 처리’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는 적정 처리시설이 갖춰진 경우에만 해당한다.
대부분 개인 어업을 하는 상황에서 이 또한 현실과 동떨어진 규정이다. 김정규 통영시 해양관리팀장은 “해양 쓰레기를 개인이 민간 폐기물 처리시설에 위탁 처리하려면 톤당 단가가 40만 원이 넘는다"며 "법대로 처리하는 어민들은 10%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무게가 가벼운 어구를 개별 어민이 톤 단위로 모으는 것부터 쉽지 않다. 더욱이 어구 폐기물은 진흙이나 따개비가 붙는 등 손상이 심하다 보니 처리 비용은 심할 경우 100만 원에 육박한다. 그러니 보는 눈을 피해 바다에 어구를 투기하는 경우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통영ㆍ거제 등 해양도시들은 폐기물 방치를 막기 위해 예산을 들여 해양 쓰레기 처리시설을 갖춘 민간 업체에 이를 맡기고 있다. 하지만 예산과 인력이 부족한 대부분의 지자체, 특히 도서지역은 여전히 어업인이 직접 처리하도록 지도하는 실정이다.
해수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9년 말 뒤늦게 해양폐기물 전처리 시설 설치를 결정했다. 염분과 진흙, 따개비 등을 제거하고 소각, 재활용 절차까지 각 지자체에서 처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는 것. 현재 경남권(통영)과 충남권(태안)에 한 곳씩 설치를 추진 중이지만 지역 주민의 반대가 심해 준공 목표인 2022년까지 사업 완료는 요원한 상황이다.
해양폐기물의 복잡한 처리구조는 영농폐기물의 경우 생활쓰레기로 분류돼 농민이 직접 분리 배출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것과 상반된다. 김경신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부연구위원은 “현행 폐기물관리법은 현실과 동떨어진 데다 시행령과 시행규칙 간 상충돼 지자체의 해양폐기물 관리 사각지대가 커질 수밖에 없다”며 “어업인이 직접 해양 쓰레기를 분류ㆍ배출할 수 있는 처리 지침과 적정 시스템이 갖춰져야 수거비용도 덜 들고 재활용률도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에서 쓰레기와 폐어망이 많이 나오는데 수거하는 장소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둣가 앞에 두다 보니 해안가가 더러워 질 수밖에 없죠.” (이지준 목포근해유자망협회장)
해양 쓰레기를 보관할 장소가 없다는 것도 어민들의 공통된 호소다. 당장 처리하진 못하더라도 어딘가 모아두기라도 해야 할 텐데 그조차 어렵다. 보관장소가 뭐 그리 중요한가 싶지만 폐어구는 수분이 많고 부패하기 쉽기 때문에 침출수 배수구 등을 갖춘 곳에 보관해야 한다.
실제 해수부가 이 같은 시설을 갖춘 해양 쓰레기 육상 집하장을 설치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지난해부터다. 정부의 해양 쓰레기 대응이 한참 뒤늦은 것이다. 그전에는 어촌 한구석에 쌓아두는 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육상 집하장은 지난해 52개가 생겼고 올해 계획상 30개가 더 지어진다. 하지만 지역별 어민 협동조합인 어촌계 수가 2,000여 개인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어구 중 유난히 부피가 큰 스티로폼 폐부표도 한때 보관조차 어려운 골칫덩이였다. 통영에서 굴 양식을 하는 어민 박모(62)씨는 “10년 전만 해도 다 쓴 부표는 부피는 큰데 둘 곳도 없어 바다에 방치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다 폐부표가 2011년부터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대상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지자체가 생산기업이 낸 EPR 분담금으로 폐부표를 수거하고 전용 처리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스티로폼 부표의 EPR 분담금은 ㎏당 19원으로, 가전 포장이나 생활용 완충재로 쓰는 스티로폼 분담금(㎏당 3.5~8원)보다 높다. EPR 제도상 폐부표의 재활용 책임은 지자체에 있는 만큼 지자체는 재활용한 양만큼 분담금을 받을 수 있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폐부표는 다른 스티로폼 폐기물에 비해 손상도가 높아 생산량의 절반도 회수하기 어렵다. 정부가 지자체에 제시하는 양식용 부표의 재활용 의무율이 29.1%로 낮게 책정된 것도 이 때문이다.
폐부표 회수량을 늘리기 위해 시행하는 의무회수제도 지지부진하다. 의무회수제는 지자체가 친환경 부표를 구매하는 어민들에게 싸게 살 수 있도록 보조금을 지급하고 기존 폐스티로폼 부표의 일정량을 가져오도록 하는 제도이다. 일부 지자체는 수거에 드는 작업비나 운송비도 지원해 준다.
하지만 아직까진 친환경 부표의 부력이 스티로폼보다 낮아 어민들이 선호하지 않는 데다 친환경 부표 공급을 하는 지자체별 예산 규모에 따라 시행수준이 천차만별이라 회수율은 40%도 안 된다. 이 같은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해수부 차원에서 올해 시작하려 했던 어구·부표 보증금 제도(반납 시 보증금 지급)는 내년 도입으로 미뤄졌다.
사실 스티로폼 부표뿐 아니라 폐그물·로프 등 다른 어구도 자원순환이 가능하다.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인 폴리에틸렌(PE) 재질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폐그물로 재활용 원사 등을 생산하는 스타트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다만 부표보다 더 깊은 바다에 들어가는 그물은 진흙 등 이물질 전처리가 더욱 까다로운데 이를 위한 시설도 없다. 폐그물과 로프가 EPR제도에 편입되지 않은 이유다.
어민들은 달라지고 있다. 무심코 버린 쓰레기가 어장 파괴로 돌아오는 것을 체감하고서다. 폐어구 투기도 옛날 일이 됐다는 게 관련 연구자와 정책결정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박문옥 전라남도 의원은 “최근에는 어민들이 먼저 ‘대형 포대만 지원해주면 보상 없이도 바다 정화를 위해 노력해보겠다’고 나서서 목포수협을 통해 포대 2만 개를 제작했다”고 말했다.
통영 선촌마을에서 해변을 청소하는 주민들도 불과 몇 년 전까지는 바다에 쓰레기를 버렸다. 2018년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과 함께 정화활동을 시작한 뒤로는 180도 달라졌다. 유재순(83)씨는 “우리도 어업을 했지만 (바다에서) 뭐가 걸려 올라오면 그냥 던져버렸는데, 이 정화활동을 하고부터는 절대 그래 안 해요”라고 말했다.
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환경오염이, 어민들의 마음에 와 닿은 것이다. 이제 주민들은 작은 조각 하나도 바닷물에 들어가지 않게 조심한다. 수년 전만 해도 스티로폼 조각이 수십㎝씩 쌓이던 해변은 이제 관광객들의 칭찬을 받을 정도로 깨끗해졌다. 보호대상 해양생물종이자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해양식물 '잘피'의 숲도 복원됐다.
어민들의 인식이 변하더라도, 현실과 동떨어진 폐기물 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해양 쓰레기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지욱철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은 “어민들이 미세플라스틱의 온상인 스티로폼 부표를 굴이나 김 양식에 쓰기 시작한 건 과거 정부가 보조금까지 줘 가며 이를 장려했기 때문”이라며 “해양 쓰레기에 대해 어민 탓을 하기에 앞서, 정부의 정책에 잘못된 것은 없었는지 같이 고민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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