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어떻게 살렸는데, 절대 못 보내”… 구급대원들 마음의 소리

입력
2021.08.10 17:00
수정
2021.08.10 17:40
25면

[내가 살린 환자, 나를 깨운 환자]<24> 임재만 소방위

편집자주

의사라면 평생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명을 구한 환자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준 환자일 수도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연과 매일 마주하는 의료종사자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내가 살린 환자, 나를 구한 환자] 이번 주에는 특별히 119 구급대원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구급대원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최일선 의료 관련 종사자들입니다. 앞으로 의사, 간호사, 구급대원 등 다양한 의료관련분야 종사자들의 생생한 경험을 전달할 예정입니다.



‘구급대원’ 하면 어떤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릴까. 아마도 잔뜩 긴장하고 구급차에서 심폐소생술을 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 구급대원에게 심정지 환자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고, 심폐소생술은 구급대원이 심정지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응급처치다.

#1. 2018년 7월 9일 아침. 나는 소방서에서 식사를 하며 '9시 퇴근'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끼리 종종 '제 시간에 식사를 마치면 그날 할 일의 절반은 한 것'이라고 얘기하곤 한다. 역시나! 출동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우리 팀은 박차고 일어나 구급차로 달렸다. 상황실에서 온 지령서에는 ‘심정지’라는 단어가 선명했다. 구급차 2대와 6명의 구급대원이 동시 출동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30대 남성이 거실에 누워 있었다. 환자 어머니 말에 따르면 그는 출근 준비 중 갑자기 쓰러졌다고 한다. 의식, 호흡, 맥박 등 아무런 생체징후가 없는 전형적 심정지 환자였다. 우리는 곧바로 가슴압박을 시작하고, 심장충격기를 부착해 심전도를 확인했다. 무수축이었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옆으로 반듯하게 그려지는 파형이다. 기도 확보, 인공호흡, 가슴압박, 정맥혈관을 통한 수액 투여 등 구급대원이 시행할 수 있는 모든 처치가 순식간에 이뤄졌다. 이제는 환자의 몸이 반응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환자 자신의 몫이다.

약 5분 후, 심전도가 무수축에서 심실세동으로 변하고 있었다. 심실세동은 전기충격을 통해 환자의 소생을 기대할 수 있는 파형이다. 우리는 곧바로 환자의 가슴에 전기충격을 시행했다. 얼마 후 환자의 심장이 스스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얼마 후 환자는 스스로 숨을 쉬기 시작했고 이어 의식을 회복했다. 현장에서 심장을 되살렸으니 1단계는 성공적이었다.

이제 환자를 구급차로 옮겨야 했다. 그런데 환자는 100㎏가 넘는 거구였고, 더구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이었다. 들 것을 쥔 손은 힘이 빠지고 비틀린 자세 탓에 허리도 끊어질 듯 아팠지만 참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겨우 환자를 구급차에 태우고 아파트 단지를 나와 도로에 들어서는 순간, ‘아!’ 하는 탄식이 나왔다. 오전 8시 20분, 교통정체가 극심한 월요일 아침이었다. 우리는 겨우 살려놓은 심장이 다시 꺼질까 조마조마하면서 평소보다 두 배나 많은 시간을 도로에서 보낸 후에야 응급실에 도착했다.

그 시간 환자는 다행히 잘 견뎌줬고, 의사소통이 가능할 만큼 회복됐다. 환자는 두려움에 “무슨 일이에요? 가슴이 아파요. 저 괜찮아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난 속으로 외쳤다. “그래 괜찮아. 우리가 너를 어떻게 살렸는데, 절대 그냥 안 보내.”

며칠 후 환자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했더니, 그는 3일 만에 퇴원했고 지금은 갈비뼈 골절에 대해 통원 치료 중이라고 했다. 골절은 아마도 우리 팀이 ‘당신은 아직 젊습니다. 살아날 수 있습니다'라고 속으로 말하면서 가슴압박을 매우 강하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2. 2020년 2월 26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출동이었다. 환자는 59세 여성으로 클리닉에서 위내시경 검사를 기다리던 중 의식을 잃고 쓰려졌다. 구급차 2대가 동시 출동했다. 먼저 도착한 다른 구급차 대원들이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생체징후가 전혀 없는 상태로 한눈에 심정지 환자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 팀은 환자 가슴에 심장충격기를 부착했고 심실세동이 확인되어 두 번의 전기충격을 시행했다. 그러자 환자의 심장이 반응했다. 혈압이 낮아 맥박이 뚜렷하지는 않았지만 심전도는 정상에 가까운 파형을 보였다. 우리 팀은 기도에 튜브를 삽입하고 정맥혈관에 약물(에피네프린)과 수액을 투여했다. 구급차가 현장을 출발할 무렵 환자의 심전도와 호흡, 맥박은 정상이었다.

그런데 응급실로 달리던 중 환자의 심장이 다시 멈췄다. 우리 팀은 구급차를 길가에 세웠다. 다시 환자의 가슴에 전기충격을 시행하고 정맥혈관에 약물을 추가로 투여했다. 말 그대로 생사의 기로였다. 환자의 심장은 죽었다 살았다를 반복했다. 구급차가 응급실에 도착할 무렵, 환자의 심장과 호흡은 겨우 회복됐다.

환자를 응급실 의료진에게 인계한 후, 긴 한숨이 나왔다. 환자를 소생시켜 응급실에 도착했다는 것, 구급대원으로서 할 수 있는 건 다했다는 것, 만감이 섞인 긴 한숨이었다. 열흘 후 환자가 일반병실에서 잘 회복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살아있음은 그 자체로 눈부시게 아름답다. '호텔 캘리포니아'의 노랫말처럼 이 말을 전하고 싶었다. “이승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구급대원들 사이에는 '심정지 환자가 되살아나려면 환자와 구급대원의 궁합이 잘 맞아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환자는 소생 가능한 상태여야 하고, 구급대원의 응급처치도 정확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심정지 환자는 어머니 몸에서 태어날 때 못지않은 어려움을 거쳐 되살아난다.

환자의 생과 사에 관여한다는 건 숨 막히는 부담이다. 그래도 현장에서 심정지 환자를 되살린다면 구급대원에겐 말할 수 없는 감격이다. 심정지 환자를 소생시킨 공로로 우리 팀원은 나란히 하트세이버 인증을 받았다. 하트세이버를 받으려면 병원도착 전 환자의 심장을 되살려야 하고, 환자가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회복되어야 한다. 이제라도 그 환자분들께 인사드린다.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전대덕소방서 119구급대원

대전대덕소방서 119구급대원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을 갖고 계신 의료 관련 종사자라면 누구든 원고를 보내주세요. 문의와 접수는 opinionhk@hankookilbo.com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선정된 원고에는 소정의 고료가 지급되며 한국일보 지면과 온라인뉴스페이지에 게재됩니다

.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