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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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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 때 나의 꿈은 고교 야구선수 박노준의 마누라가 되는 거였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사이는 때로 아득하게 멀다. 실은 유년기부터 운동장의 스타가 되기를 소망했다. 야구 복싱 달리기 축구에 두루 빠져서 비료 포대 접어 만든 글러브를 끼고 동네 오빠들과 야구놀이를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100m를 18초에 끊었던 친구 남희를 닮고 싶어서 아침마다 동네 앞 신작로를 전력 질주했다. 사뿐사뿐 달려가 도약한 후 자기 어깨 높이 대나무 장대를 배면뛰기로 넘어버리는 규호에게, 나도 너처럼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몇 번이나 애원했다.
하지만 잘못 만들어진 목각인형처럼 삐거덕거리는 나의 육체는 안쓰러운 열망에 단 한 번도 적절한 보상을 해주지 않았다. 고교야구 스타와 결혼하겠다는 꿈은, 질긴 선망과 좌절 사이에서 싹을 틔워 수줍게 존재를 드러낸 야생초 같은 것이었나 보다. 1981년 8월 26일 제11회 봉황기 고교야구 결승전에서 경북고와 맞붙었던 선린상고 박노준이 경기 초반 홈으로 뛰어들다 발목이 뒤틀려 들것에 실려 나간 후, 복숭아뼈와 인대를 다쳐 한국병원에 입원한 그를 보기 위해 서울의 소녀팬들이 울며불며 병원 앞에 진 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이후 말끔하게 뽑혀나간 걸 보면 말이다.
대신 나는 좋아하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체육 필기시험을 봤다. 축구의 발상지라든가 근대5종경기 종목을 묻는 시시한 객관식 문제들 뒤로 주관식 문제가 나왔다. ‘1964년 동경올림픽에서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맨발의 마라토너는?’ ‘아베베 비킬라(참고로 그는 6·25 때 에티오피아 군인으로 참전했으며 동경올림픽 직전인 로마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땄음. 동경올림픽에서 세운 신기록은 2시간12분11초2. 1973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사망).’
체육 선생님은 매우 흡족해하셨다. 25년간 남고·여고를 돌았지만 나만큼 스포츠 이론과 역사를 잘 아는 제자는 못 봤다면서, 아예 스포츠 평론가 같은 걸 해보라고 독려하셨다. “얼마 전 ‘비밀의 커튼’이라는 프로에 나온 그 여자처럼 말이야.” 여성 최초 스포츠 평론가로 소개되었던 이향렬씨를 말하는 거였다. “아니에요, 선생님. 저는 아마추어리즘을 존중해요. 순수한 스포츠 애호가로 남을 거예요.” 더는 헛물켜고 싶지 않았던 나는 무심결에 내뱉었고, 그 말이 스포츠와 나의 관계를 규정하는 선이 되었다. 소박한 스포츠 애호가로서 편애하는 선수들의 플레이를 반복해 보고, 나만의 ‘시크릿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건 지극한 행복이었다.
평창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낯뜨겁게 불거졌던 일본의 치졸한 속내를 낱낱이 기억하면서도 도쿄올림픽이 무사히 치러지기를 바란 건 그 때문이다. 다행히 첫날부터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선수를 만났다. 끊임없이 “파이팅!”을 외쳐대는 고교생 김제덕 옆에서 들뜨지도 움츠러들지도 않는 눈빛으로 과녁을 응시하던 선수 안산. 어깨높이로 활을 들어올린 후, 군더더기 없이 과녁을 향해 시위를 놓는 안산의 플레이 스타일은 가슴이 뻐근해질 만큼 매혹적이었다. 오래전 그토록 소망했으나 끝내 실현하지 못한 내 꿈이 딱 저런 모습이었으리라.
한 발 또 한 발, 그가 시위를 당길 때마다 내 몸에서는 엔도르핀이 솟구친다. 멋쟁이 안산 선수여, 롱런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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