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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추왓추] ‘귀여운 여인’ 원제는 ‘3000’… 당신이 잘 아는 영화의 비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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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고 넘치는 OTT 콘텐츠 무엇을 봐야 할까요. 무얼 볼까 고르다가 시간만 허비한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긴 시대입니다.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가 당신이 주말에 함께 보낼 수 있는 OTT 콘텐츠를 넷플릭스와 왓챠로 나눠 1편씩 매주 토요일 오전 소개합니다.
영화 ‘백 투 더 퓨처’(1985)는 흥행작이다. 보통 흥행작이 아니라 할리우드를 한동안 들썩이게 했던 메가히트작이다. 제작비는 1,900만 달러. 전 세계 흥행 수익은 3억8,880만 달러를 기록했다. 들인 돈에 비해 20배 넘은 수익을 올렸으니 ‘가성비’가 이보다 좋기도 어렵다.
큰 상업적 성공에 관계자들은 환호했지만, 제작 과정은 신산했다. 스튜디오는 큰 돈 벌기 어려운 영화란 이유로 제작비를 삭감했고, 촬영 중 주연배우가 교체되는 수난을 겪었다. 감독은 로버트 저메키스. 지금이야 명감독 수식이 따르지만, 당시 실패만 거듭하던 무명 영화인이었다. 짧게 열거한 사연만으로도 ‘백 투 더 퓨처’ 제작 과정에 호기심이 생길 만하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무비: 우리가 사랑한 영화들’ 시즌2는 ‘백 투 더 퓨처’ 등 1980~90년대 할리우드 흥행 지형도를 새롭게 그렸던 유명 영화 4편의 영화 같은 제작 뒷이야기를 전한다.
저메키스는 전도유망한 영화학도였다. 남캘리포니아대학(USC) 재학 당시부터 재능을 인정 받았다. 학생 때 만든 영화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눈에 띄었다. 영화 ‘죠스’(1975)로 돈과 명예를 거머쥔 스필버그는 저메키스를 적극 지원했다. 저메키스의 장편 데뷔작과 두 번째 영화의 제작을 맡았고, 각본도 함께 썼다. 하지만 흥행은 신통치 않았다. 저메키스는 낙심했고, 고향을 찾았다. 그는 우연히 아버지 고교 졸업 앨범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젊은 시절 아버지가 자신과 똑 닮아서다. 그는 부모님이 고교를 졸업할 무렵으로 시간이동을 할 수 있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를 시나리오로 옮긴다.
과거로 돌아가 아버지, 어머니와 삼각관계를 형성한다는 내용은 발칙하면서도 발랄했다. 스튜디오는 관심을 보였으나 몇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제작비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간다는 것, 저메키스가 흥행에 성공한 적이 없다는 점 등 때문에 제작이 계속 미뤄졌다. 마냥 기다릴 수 없었던 저메키스는 ‘로맨싱스톤’(1984)을 연출했고, 흥행 맛을 처음 보게 된다. ‘백 투 더 퓨처’ 제작의 길이 넓게 열렸다.
제작 확정 후에도 우여곡절은 이어졌다. 하이틴 스타 마이클 J. 폭스를 주인공 마티로 캐스팅하려는데, 폭스는 인기 TV시리즈 출연 때문에 짬이 나지 않았다. 에릭 스톨츠를 기용했는데, 그는 시나리오가 품은 정서를 납득하지 못했다. 시간 이동 장치는 냉장고였다가 스포츠카 드로리언으로 바뀌었다. 갈매기 날개 같이 여닫히는 문이 상상을 더 자극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스튜디오는 ‘백 투 퓨처’라는 제목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명왕성에서 온 우주인’을 제시했다. 마티와 브라운 박사(크리스토퍼 로이드)가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오려고 할 때 에너지원은 핵폭탄 실험에서 얻는 것으로 설정 돼 있다가 예산 문제 때문에 번개를 활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가장 큰 난관은 캐스팅이었다. 스톨츠는 너무 진지하게 마티를 연기했다. 저메키스는 영 못마땅했다. 촬영 개시 1달이 넘은 후 결단을 내렸다. 무리를 해서라도 폭스로 배우를 교체키로 한 것. 폭스가 역할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마티는 엄숙한 모범생에서 해맑은 고교생으로 변모했다. 신의 한 수였던 셈. 정작 폭스는 낮에는 TV드라마, 밤에는 영화 촬영을 하며 잠을 제대로 못 자 자신이 연기를 제대로 했는지 늘 의구심을 가졌다고.
로맨틱 코미디의 역사를 바꿨다는 평을 듣는 ‘귀여운 여인’(1990) 역시 기막힌 사연을 지니고 있다. ‘귀여운 여인’의 원작 시나리오 명은 ‘3000’이다. 시나리오 작가 J. F. 로튼이 무명 시절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대로에서 살며 만난 ‘거리의 여인’이 소재였다. 당시 윤락을 두고 오가던 금액이 3,000달러라서 제목을 ‘3000’으로 지었다.
TV 코미디로 명성을 떨친 게리 마셜 감독은 로튼의 시나리오에 푹 빠졌다. 영화화는 쉽지 않았다. 마셜 감독이 TV 쪽에선 유능한 연출가였지만, 영화 쪽에선 검증이 안 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어두운 기운이 감도는 시나리오 역시 스튜디오에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월트디즈니컴퍼니가 성인 영화 제작을 위해 세운 터치스톤이 관심을 보였다. 마셜 감독은 신예 줄리아 로버츠를 캐스팅하고, 리처드 기어를 끌어들이는 데 공을 들였다. 하지만 그는 출연에 부정적이었다. 로버츠가 뉴욕에서 기어를 만나고 있을 때 마셜 감독이 전화를 걸어 출연 여부 확답을 들려달라고 했다. 로버츠가 ‘제발 ‘네’라고 해주세요’(Please Yes!)라는 메모를 포스트잇에 적어 기어에게 건넸다. 기어는 환하게 웃는 로버츠 얼굴과 메모를 보고선 “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었다. 로맨틱 코미디의 새 역사가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로버츠는 현장에서 비비안 그 자체였다. 옷에 따라 분위기가 급변했다. 로버츠가 입은 붉은 드레스는 원래 검정 드레스였으나 의상 담당이 절묘한 선택을 했다. 개봉 후 전 세계에 유행한 땡땡이 드레스는 의상 담당이 할리우드 의상실을 뒤져 찾아낸 옷이었다. 촬영은 순조로웠으나 제목이 문제였다. ‘3000’으로는 영화의 성격이나 내용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당시 디즈니 임원이었던 제프리 카첸버그가 후반 작업할 때 제목을 제시했다.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이었다. 디즈니의 성인 영화 ‘귀여운 여인’은 제작비 1,400만 달러를 들여 4억6,340만 달러를 벌었다.
다큐멘터리에선 ‘쥬라기 공원’(1993)과 ‘포레스트 검프’(1994) 제작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쥬라기 공원’은 컴퓨터그래픽(CG)의 신기원을 이룩한 영화로 평가 받으나, 시작 단계에선 공룡을 CG로 만들 생각이 없었다. 당시 컴퓨터 기술로는 공룡의 세세한 모습을 스크린에 구현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스톱애니메이션과 애니메트로닉스(사람이나 동물 모형을 만들어나 전기나 유압기술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기술)를 활용해 공룡들을 만들어낼 생각이었다. 공룡 몸동작이 부자연스러워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조지 루커스 감독이 설립한 CG회사 ILM의 한 디자이너는 생각이 달랐다. CG 공룡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상사 몰래 짧은 분량 공룡 CG를 만들었고, 제작사 관계자들이 ILM을 방문했을 때 의도적으로 노출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루커스 감독 앞에서 공식 시연회가 열렸고, 두 사람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둘은 주저하지 않았다. 당시 특수효과 분야 대세였던 스톱애니메이션이 종말을 고하고, CG가 한층 각광 받게 되는 순간이었다.
‘포레스트 검프’의 경우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야’라는 영화 속 명대사처럼 여러 우연과 행운이 겹치며 만들어진 영화다. ‘포레스트 검프’ 시나리오는 흥미롭다고 스튜디오의 관심을 처음부터 끌었으나 구체적으로 기획되지 못한 채 오랜 시간 상자 안에 처박혀 있었다. 한 프로듀서가 업무 일환으로 묵은 시나리오를 검토하다가 빛을 봤다. 원래 유니버설이 보유한 시나리오였으나 운 좋게 파라마운트에 팔리면서 영화화 됐다. 제작비 5,500만 달러인 ‘포레스트 검프’는 6억8,310만 달러를 벌었고, 아카데미영화상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색상을 가져갔다.
할리우드는 시스템이 지배하는 곳이다. 시장 조사를 바탕으로 영화를 기획하고, 캐스팅을 해 흥행을 시킨다. 흥행 결과는 또 다른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지표로 활용된다. ‘꿈의 공장’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중의적이다. 대중에게 환상을 심어줄 만한 영화들을 만들어내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으면서도 공산품 만들 듯 영화를 ‘제조’한다는 경멸이 깃들어 있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에는 언제나 우연과 행운과 실수가 있기 마련. 할리우드에서는 개인의 의지가 시스템을 돌파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다큐멘터리는 스튜디오의 관행, 선입견 등을 뚫고 성취를 이뤄낸 사람들의 감동적인 사연을 그려낸다. 영화가 다른 산업보다 흥미로운 건 남다른 뒷이야기가 담겨 있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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